일약
영웅이 되어서 귀국한 홍수환 선수는
어머니와 함께 서울 시내를 카퍼레이드하고
대통령도 만나기도 했대요.
정말
열렬하고 대단한 환영이었어요.
그 장면은 고스란히 생중계되었는데
수경사 정복 차림으로 경례하는 우리의 홍 선수가 얼마나 멋있던지.
홍수환 선수
그 시절 모든 아이들의 우상이 되었지요.
중학교 1학년이었던 저에게도 우상이 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홍 선수의 귀국 인터뷰에서 아주 중요한 말이 나왔어요.
권투를 제 나이 열넷에 시작했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쾅하고
비수처럼 내 가슴에 꽂히더라고요.
‘권투를 해야겠다. 홍 선수처럼 열네 살에. 딱 좋은 나이야. 똑같이.’
바람이 나버린 거예요!
그런데 문제가 있더라고요.
체육관에 다녀야 하는데 돈이 없잖아요.
어머니께 말씀드렸다가는 야단만 잔뜩 맞고 끝날 것이고.
‘어쩌지?’
잠깐 고민했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말했어요.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신문을 돌리면 된다고 했어요.
어른만큼은 받을 수 없지만 그래도 일은 시켜준다고요.
그 친구와 난 당장 실천으로 옮겼어요.
우리 동네에서 돌리면 들킬 가능성이 매우 높아 다른 동네 가서 돌리기로 했지요.
한 시간을 걸어서 ‘대구 매일 신문 본사’를 찾아 갔어요.
생각보다 쉽게 허락해 주더라고요.
배당량은 하루 100부였고, 석간이니까 오후에 돌리면 된다고 했어요.
애니까 조금만 주는 거래요. 어른은 500부, 이렇게도 한 대요. “우와~~~”
너무 어려서 수금은 못하니까 집어넣는 것만 하기로 했어요.
일당은 어른의 70%쯤?
매일 왕복 두 시간을 걸어 2시간쯤 돌리는 거니까
꽤 힘들었지만 미래의 챔피언이 되기 위한 운동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어요.
“헛 둘!, 헛 둘!”
사나운 개에게 봉변도 당하고 신문 사절이라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어디 대수겠어요?
그렇게 꿈을 쌓아가고 있었는데,
아~~~~~~~~~~~~~!
우리 비밀 활동 정보가 새나간 거예요.
우리는 단 2주 만에 노발대발 어머니께 잡혀와 버렸어요.
며칠을 사정하고 투쟁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는 꿈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언젠가 내게 힘(?)이 생기면 다시 해보리라 굳게 결심했습니다만.
누가 알았겠어요. 제 꿈이 또 바뀔 줄은.
아마도
저는 꽤 산만한 아이였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