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根葉菜一級
예전에 봤던 詩 하나가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가슴 깊이 울림으로 다가와 따로 정리해 보관해 뒀던 글을 전합니다.
바로 김연대 시인의 ‘대근 엽채 일급(大根葉菜一級)’입니다.
(김연대 시인은 1942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한 원로 시인이십니다.)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도 모두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한번 옮겨보니 다들 나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大根葉菜一級
이순 지나 고향으로 돌아온 종제가
버려두었던 옛집을 털고 중수하는데
백부님이 쓰신 부조기가 나왔다.
을유 시월 십구일
정해 오월 이십일
초상 장사 소상 대상 시 부조기라고
한문으로 쓰여 있다.
60년 전 이태간격으로
내 조모님과 조부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추강댁 죽 한 동이 (秋江宅 粥 一盆)
지례 큰집 양동댁 보리 한 말 (知禮大家良洞宅 大麥一斗)
자암댁 무 열 개(紫岩宅 大根十介)
포현댁 간장 한 그릇(浦峴宅 醬一器)
손달댁 홍시 여섯 개(孫達宅 紅枾六介)
형님 이건 무엇이요?
거동댁 대근엽채일급? (巨洞宅 大根葉菜一級)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났다.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내 부조(父祖)와 이들 모두의
처절한 삶의 흔적
그건,
시래기 한 타래가 아닌가!
거동 댁은 大根葉菜一級 무 뿌리 잎사귀, 시래기 한 타래.
잘 살아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요즘보다 훨씬 인간적이죠.
얼마나 없으면 시래기 한 타래일까.
그것마저도 차별 없이 기록해 두는 옛사람의 마음 씀씀이를 느낍니다.
사람의 ‘格’을 느끼게 합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옛사람들은 격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5만원, 10만원 이런 것으로 등을 지기도 하는 後人들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게 바로 진짜 멋입니다.
후대에 전할 수 있는 격 높은 부조기(扶助記), 배려를 전하는 부조기.
어디 없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