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사회로
제약회사에 입성하기 위해 나는 딱 두 번의 시험을 봤다.
1986년 스물여섯 가을의 이야기다.
첫 번째, 모 제약사.
00명 모집한다는데 1차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
인근 고등학교를 통째로 빌려야 할 만큼
엄청나게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지원자의 절반 이상을 걸러내는데, 1차는 운 좋게 합격했다.
2차는 면접이었다.
당시 그 회사에 다니는 知人으로부터
안경을 벗고 면접장에 들어가라는 충고를 받았다.
그 회사 오너가 안경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것이다.
합격하고 다시 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 잠깐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 게 어딨어. 안경도 내 몸의 일부인데
그런 회사라면 떨어지는 게 나아.’
면접장.
다섯 명씩 면접장에 들여보내는데
면접관들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아주 권위주의적인 분위기였다.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같이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안경을 떡하니 쓰고 있는
내게는 단 한마디의 질문도 없었다.
참고로 그 회사는 당시에는 제법 규모가 큰 회사였지만
지금은 업계에서 존재감 없는 미미한 회사가 되어있다.
나는 당연히 낙방했고
그 회사는 안경 쓴 龍 한 마리를 놓친 셈이었다.
두 번째,
내가 사원부터 임원까지 19년을 지낸 친정 회사.
창립하고 겨우 십여 년 밖에 안 된
소규모 회사답게 지원자도 70~80명뿐이다.
시험도 그냥 작은 사옥에서 본다. 고등학교도 안 빌리고.
한 번 떨어져 본 경험이 있어서였던지
긴장감도 없이 편하기만 했다.
‘붙고 떨어지는 것은 면접장에서는 늘 있는 법’
오전에 필기시험을 보고 바로 오후 면접이었다.
나는 고요한 면접 대기실에서부터 바빴다.
지원자의 거의, 대부분과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하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표정들이 수상했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냐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온 방을 헤집고 다녔다.
멀리까지 왔는데 추억이라도 쌓고 가야지 하는 심정으로.
가나다 순서로 면접장에 들어가는 룰 덕분에
제일 먼저 입장했다.
2번이었다. 면접자를 세 명씩 들여보냈다.
양쪽에 좌청룡 우백호(?) 같은
동료 1, 3번 지원자를 앉히고 난 가운데 끼어 앉았다.
면접관이 바로 앞에 있다.
엄청 가깝다.
얼굴에 주름까지 다 보인다.
이거 좋네.
우선 가장 마음씨 좋아 보이는
한 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마치 내게 ‘환영한다. 어서 와!’ 라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편했다. 처음 면접 본 회사와 너무 달랐다.
옆에 앉은 1번 우백호.
이건 면접이 아니다, 혼나는 분위기다.
성적 가지고 자꾸 뭐라고 그런다.
잠깐 훔쳐본 그의 대학교 성적은 최상위급이다.
‘이런, 다음이 내 차례인데,
나는 무슨 봉변을 당하려나.’
이런 생각이 들자, 우백호의 면접에 끼어들고 싶어졌다.
면접관의 말을 자르고 중간에 끼어들었다.
“실례지만, 이 친구 성적 좋은데 왜 자꾸 뭐라고 하시죠?
전 이 친구보다 성적이 좋지 않아요. 나갈까요?”
지금 생각해 봐도 미친놈이다. 남의 면접에 끼어들다니.
그러자, 갑자기 우백호의 면접을 끝내고
내 면접을 시작했다.
“공부 잘했네!”
‘헉, 이런 괴변이 다 있나?’
그다음부터는 면접이 아니라 환담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면접관이
내 페이스에 말려들어 버린 것이다.
5분으로 약속된 1조 면접 시간이
무려 30분으로 연장되어 버리고
난 재미있게 놀았다는 느낌으로 면접장을 나왔다.
면접장을 나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한 면접관이 말했다.
“저 녀석 때문에 오늘 면접은 다 꼬여버렸어!”
몰라....
그다음 날 집으로 합격 전화가 걸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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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우백호는
꼭 합격시키라는 거래처의 압력 전화가
부작용으로 작용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낙방을 했고
이듬해 내 후배로 입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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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40년을 한 편에 전부 쓸 수는 없으니까
다음 편에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