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배치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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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뿐 4주간의 교육이 끝나갈 무렵,

모두가 고대하던 부서 배치를 위한 면담이 시작되었다.


언급한 바와 같이 나름대로 교육을 성실히 받은 결과,

최종 성적 1등을 차지했으며 학생장 봉사도 했으니

부서 배치에 대해 기대를 가져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연히 정든 고향 대구지점에서 근무하고 싶었고,

성적도 좋았으니 자리가 얼마가 나와 있든

발령의 우선순위는 내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역시 내게 탄탄대로는 사치였나보다.


동기 중에 고등학교 2년 선배가 있었는데,

교육 내내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배치 면담 전에 슬쩍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대구에 자리가 하나뿐이라는데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이제 막 결혼까지 해서 어쩔 수 없으니

네가 양보해 주면 좋겠다.”


정 거절하면 자기는 그만두겠단다.

거의 애걸복걸 수준이었다.


이런…….


넌 혼자이고 부모님도 두분 모두 계시니까

다음 기회를 보면 어떠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지만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해버렸다.

열심히 하면 또 기회가 있겠거니 하면서.


잠시 잠깐, 눈 딱 감고 거절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내내 두고두고 죄책감으로

마음의 짐이 될 것 같아서 빠르게 판단해 버렸다.


고백하건대 거절을 잘 못 하는 것은

나의 치명적 약점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의 부탁이란 부탁은

전부 들어줄 듯,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고 만다.

언제나 그랬다…….


덕분에 본부장 면담 때, 칭찬은 한없이 들었다.

멋진 놈이라고.

(젠장! 멋지면 뭐 할 거냐고!),

2년 후에 보내 주겠다는

약속만 남기고 황망하게 면담은 끝났다.

(물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입사 동기이자 학교 선배는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즐겁게 내려갔고

고달픈 나의 40년 서울 생활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원하는 고향행은 불발되었지만,

영업부로 배치받은 다른 동기들과 달리

공부 잘한다며 마케팅부로 발령을 냈다.

교육 주관부서이니까 똑똑해야 한다며.


휩쓸리듯 문을 연 1987,

나의 회사 생활은 마케팅부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누가 아는가.

변방으로 도망간 말이

또 한 무리의 말들을 잔뜩 데려올지도.


만사는 새옹지마라는데 , 젊으니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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