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로터리 조모 피부과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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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연기와 격렬한 시위로 아스팔트가 뜨거웠던,

1987년 여름이었다.


신촌 로터리에 조모 피부과 의원이라고 있었다.

내가 담당하게 되었을 땐 거래가 이미 정리가 된 상태였고

과거에 많았던 거래의 흔적만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城은 허물어지고 빈터만 남은”

아버지의 18번 "황성 옛터"처럼, 흔적만 남은 거래처였다.


정리되었다는 뜻은 분명 좋은 사연는 아니었으리라 짐작해

굳이 방문하지 않아도 좋다는 거래처였다.

다만 제법 왕성한 거래였던데 왜 그렇게 정리 되었을까,

다시 살릴 수는 없을까,

한 젊은이의 호기심이 다시 방문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어서

오며 가며 들르기 좋은 위치도 방문 이유로 충분했다.


‘가보자. 잡아먹겠나.’


2층에 있는 의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간호사에게 허락을 구하고 원장실에 들어갔다.

아니다, 제대로 들어서지도 못했다.

문을 반쯤 열고 고개만 넣었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제약입니.......”


그 순간, 천둥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갓 !!!”


제대로 된 인사는커녕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고 말았다.


‘앗, 뜨거워라…….’


부정적인 반응을 각오했던 터라,

전편에 나왔던 연신내 이 피부과 개구쟁이 원장님의

가위 사건만큼 실망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꽤 놀랐다.

오히려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짧은 기간에 내공이 쌓인 덕분이었을까?


‘어떻게 하지?’


그날 저녁 하숙집으로 돌아와 나종순 대리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러저러한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꼭 거래 하고 싶니?”


“네”


각오 단단히 하고 하루걸러 한 번씩 가란다.

어떤 기대도 걸지 말고 일단 해보란다.

방문횟수가 쌓이면 반응이 올 거라고.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저 멘토의 말씀을 충실히 따랐다.

사실 큰 기대가 없으니 기분 나쁠 일도 없었다.

한 달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문 열고 들어가

욕 먹고 돌아 나오는 일이 전부였다.


욕도 매일 먹으니까 먹을 만했다.

욕 먹고 간호사들과 눈 마주치면 씩 웃어주고

돌아 나오는 것도 재미있었다면 재미있었다.


그렇게 하면서 두 달 가까이 지나자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반응이 왔다.

원장실에 발을 들여놓게 해 주신 것이다.


출입을 허락한 후,

원장실 안에 나를 세워놓고 전임자에 대한 비난을 퍼부으셨다.

비난이 끝나고 바로 다시 쫓겨났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기뻤다.

무려 원장실 안으로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다음 날 신나서 또 갔다.

원장님은 다시 비난을 퍼부은 후 내 말을 들어줬다.

“전임자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회사를 대표해서 사죄를 드립니다.”

다소 전형적인 말씀만 드리고 일단 후퇴.


다음날 또 갔다.

이젠 별로 드릴 말씀이 없다. 말할 틈이 생겼지만.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전에 무슨 약을 거래했었지?”

“이 약, 저 약입니다.” “그럼, 그대로 다시 보내.”


내가 따로 한 일은 없다.

모두 나종순 대리가 알려 준 대로

일이 되든 말든 죽으라 가고 또 가서

여러 날 욕 먹고 나온 일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나 대리의 경험이 놀라울 뿐이었다.


선배는 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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