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에피소드 둘

스물일곱 신촌에서

by 신화창조
신촌 전경.jpg

1987년은 봄부터 뜨거웠다.

전두환 정권의 호헌 선언으로 대학가는 시위로 들끓었고

연세대, 이대, 서강대, 홍대가 있는 신촌 일대는

메케한 최루탄 냄새로 갈피를 잡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전투경찰의 검문검색은 신촌 지하철역에 집중되었다.

매일 같이 신촌 로터리에서 일을 시작하는 나로서는

이만저만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7년 전, 1980년 스무 살 시절, 이른바 민주화의 봄 시절,

모욕적이고 불쾌한 경험으로 검문검색이 너무 싫었다.

사람을 작아지게 하고 비굴하게 만드는 느낌.


당해본 사람은 안다.


매일같이 신촌역 개찰구 입구에서

쭈그려 앉아 가방을 쏟아야 한다니.

정말 고역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일곱 청년이

까만 007 가방 하나 들고 매일 같은 시간에

지하철에서 내리니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다.


대학생일까, 아닐까, 저 가방에서는 뭐가 나올까.


싫어도 어쩌겠는가. 얌전히 응할 수밖에.

하지만 영맨의 가방에서 나올 게 뻔하다.

그들이 기대한 이념 서적이나 선동 프린트물, 화염병 대신에

의약품 팸플릿에 판촉물, 샘플 같은 것만 쏟아져 나오니

실망한 표정들이다.


‘대학생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약장삽니당…….’


이렇게 가방 쏟는 일도 스무날 정도 지나니까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되어 프리패스 시켜주었다.

오히려 어떤 전경은 “수고하십니다.”하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들도 내일모레 제대를 하면

나같은 청년으로 돌아올 게 아닌가.

어쩌면 내 후배로 만날 수도 있겠다.

인사하던 그 전경 눈빛, 참 따듯했다.


아무튼, 뜨거운 여름이었다.


진한 최루탄 가스에,

언제 닭장차를 타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 분위기에

사람들 통행까지 줄어

신촌 일대의 개원가는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사실, 경쟁사 고참 담당자들은

신촌 근방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촌을 누비는 나를 비웃기도 했다.


“멍청이…….”하면서.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이렇게 환자가 없고 경쟁사가 보이지 않을 때가

나같이 가진 게 없는 신입에게는

다시 없는

절호의 기회의 공간이 아니겠는가.


4월부터 6월까지(6.29 선언이 종점이 아니었나 싶다)

석 달 동안 신촌 원장님들과

하루 두 시간씩 매일 시간을 보냈다.

최루가스로 눈물 흘리며

환자도 없는 의원을 지키시던 우리의 원장님들,

말씀으로는 딴 동네 가서 일 보라 하셨지만

매일 오는 신입이 싫지 않으신 듯했다.


석 달 동안 신촌에서 보낸 매일 두 시간이

1987 하반기 내 영업의 거름이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쨔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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