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문 거래처
첫 방문 거래처 은평구 연신내 이모 피부과.
교육을 막 마치고 나온
신입 영맨은 어쩔 수 없이 아는 게 별로 없다.
얄팍한 제품 지식에,
부족한 상황 대처 능력에,
툭하면 당황하고, 겁에 질려 안절부절못한다.
5분 이상 고객과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
그 이상할 수 있으면 이미 신입이 아니다.
당연히 고객 역시 신입 사원 냄새가 풍기면
귀찮아하거나 마지못해 만나줘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문전박대는 예사이고
대충 듣는 척하다가 쫓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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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내 이모 피부과.
왠지 선뜻 만나 주었다.
역시 배운 대로 팸플릿을 꺼내놓고
열심히 제품 소개에 열을 올렸다.
신입 영맨에게 원장님의 반응을 살필
여유나 능력은 애초에 없었다.
진땀을 흘리며 제품 설명을 이어갈 무렵,
우연히 원장님의 손을 보았다.
아...
가위로 내가 준 명함을 자르고 계셨다.
설명하는 내내, 명함을 잘게 부수고 있었나 보다.
재떨이에 잘린 잔해가 수북하다.
억장이 막히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내 살이 잘려나가는 느낌.
사나이 대장부 체면에 울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황급히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우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길 턱에 주저앉았다.
점심 먹을 시간이지만 배도 안 고프다.
군대 시절부터 한 먹성 하는 내가
밥 먹을 시간에 되어서도
배가 고프지 않다니, 별난 일이다.
그래도 오후 활동을 위해 뭘 먹기는 해야 할 텐데.
거리에서 파는 호두과자 한 봉지를 샀다.
이대로 집에 갈까.
나도 누구 집 귀한 아들인데 이게 무슨 일이야.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길가에 앉아 호두과자를 씹었다.
맛이 없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서울 가서 잘 살라고 송별회까지 받고 왔는데,
그냥 내려가다니,
그때 받을 자존심 상처는 어쩌란 말인가.
이건 아니다.
그래, 뻗친 걸음이다. 조금만 더 해보자.
그렇게 다짐해도 힘이 안 난다.
발걸음이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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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다른 거래처에서 타 제약사 선배를 만났다.
“자네는 왜 그렇게 어깨가 축 처져 있나?”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씩 웃는다.
“그 원장, 모든 신입사원에게 다 그래,
다른 뜻은 없고 장난기가 워낙 많아서 그래,
악의는 없어. 내일 또 가봐. 이젠 안 그럴걸. 힘내!”
그 말을 듣고 보니 좀 힘이 났다.
모두에게 그런다니.
좀 친해지면 역 장난을 쳐보라고 귀뜸도 해주었다.
잘 속아 넘어가고 잘 받아 주신단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분이니 잘 사귀어보라고.
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그런 장난에 걸려
필드를 떠난 친구들은 억울해서 어쩌나.
아무튼,
호되게 신고식을 치르고
원장님과는 오래오래 은퇴하실 때까지 잘 지냈다.
서로 장난을 주고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