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봄, 지구 작전(2)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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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장에 처음 나가고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그 동안 만들어 놓은 거래처를 돌고 또 돌았다.

배운 지식을 총동원해서 거래처에 제품을 소개했다.

절반 휴일인 토요일, 심지어 일요일에도 필드에 나갔다.

젊은 사람이 열심히 한다고 격려해 주시는 원장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다간 오래 못 간다고,

쉴 땐 쉬어야 한다며 걱정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쇼 하는 거냐고 비아냥거리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렇게 뛰어도 할당량은 까마득했다.


‘아~ 이렇게 폐를 끼치고 만단 말인가.’


정해진 시간의 절반이 지나가도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어두운 하늘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봄이 되면 전역 의사의 개업, 자격 취득 의사의 개업이 시작된다.

필드맨의 입장에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1년에 한 번뿐인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현수막이 붙고 나면 이미 늦다.

난다, 긴다하는 경쟁사 선배들을

나 같은 초짜가 어떻게 이길 수 있나.

인테리어 공사 단계, 그 보다 먼저 부동산중계업소 단계부터

누가 개업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난 이른바 정보전에서 이기기 위해

복덕방을 열심히 누비고 다녀 개업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불광동에 있는 모모 비뇨기과 의원이었다.

부동산을 통해 정보를 얻어서 인테리어 공사장을 찾아갔다.

원장님은 아직 제대 임박, 군의관이었다.

가르쳐 주지 않으려는 업자를 겨우 설득해 정보를 알아냈고

여러 번 방문 끝에 사모님을 먼저 만났다.

다행히 어떤 경쟁사도 찾아오기 전이었다.

그 후 어렵사리 원장님도 면담했고 신규 거래이자, 첫 주문을 받았다.

주문을 받고 보니 이게 웬일인가.

그 곳에서 할당량을 다 채워버렸다.

원장님의 덕담은 보너스였다.

열심히 했으니까 당연히 먼저 받아가는 것이라고.

이렇게 되면, 폐를 끼치는 신세가 아니라

동료와 팀을 도울 수도 있겠다.


기분 좋게 회사로 돌아왔다. 첫 목표 달성이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꼭 마가 끼게 마련이다.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원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주문 취소...”

“아니, 왜 그러십니까?”


경쟁사에 학교 후배가 있는 걸 몰랐단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에서 웅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길로 불광동으로 뛰어갔다.

병원 문이 닫혀 있었다.

사업자등록증에 나와 있는 집 주소로 원장님 댁을 찾아 나섰다.

물어물어 원장님 댁을 찾고 보니 벌써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아주 잠깐, 고민했다.


‘너무 늦었나?’


그러나 나로서는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원장님 댁은 주택이었다.

벨을 눌렀다.

“00제약입니다.”

파자마 바람에 나온 원장님은 약간 화가 나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앞뒤 가리지 않고 내 사정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난 이제 한 달된 초짜다. 사정이 이렇다.

나 좀 봐줘라.

그 후배님은 경험 많은 분일 테니 이번만은 저를 도와 달라.

애원하다시피 매달렸다.


원장님은 한참을 고민하시다가 말씀하셨다.


“알겠다. 오늘은 일단 집에 가라, 내일 아침에 전화 하마.”


구의동 하숙집에 돌아오니 11시가 넘었다.

저녁도 못 먹고 쓰러졌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지마자 원장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애초에 주문한 양을 훨씬 뛰어넘는 양이다.

거의 두 배의 금액이었다. 살았다...



나머지 이야기는 3편으로 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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