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후 복학을 하고나서
3년 만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스물다섯.
우리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1년 먼저 복학한 그는,
이미 착실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제대하자마자 4학년이 된 나는 매사 허둥대기만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그 시절,
우리의 피할 수 없는 화두였다.
후회막심이었다.
괜히 미적대다가 남들보다 1년 늦게 입대하는 바람에
취업 준비 시간이 너무 짧았다.
몇 달 후,
2년을 준비한 그는 당당히 공기업에 취업을 했고
나는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결국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나는 서울에서, 그는 포항에서.
그리고 40년이 지났다.
각자의 세상에서 열심히 사느라고,
또 사는 곳이 너무 멀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간간이 서로 연락하며 지냈고
가끔 교육받으러 그가 서울에 오기라도 하면
밤새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그리스 조각상 같았던
그의 얼굴에도 주름이 지고
머리칼이 빠져 대머리가 되었지만
넉넉하고 사내다운 그의 품성은 변함이 없고
차비가 없어 수업도 빠지곤 하던
빈곤의 흔적은 깨끗이 사라졌지만
의리 있고 이타적인 마음만은 여전하다.
살면서 많은 친구를 앨범 속으로 보냈다.
연락을 못하면 고리는 끊기고,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들 모두 그런 인생을 살았다.
누구를 탓하랴.
슬픈 일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1년에 한두 번, 별일 없이 안부를 전해왔던
그 친구와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