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강남.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사는 동네, 재화가 집중된 황금 시장,
그야말로 뜨거운 동네에 입성하게 되었다.
강남을 이야기하면서 전임자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다.
시작하기 전에 명백히 밝힐 것은 난 그분에 대해 조그마한 감정도 없다.
오히려 호의적이었다. 나름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산 사람이었다.
그는,
회사 3년 선배이며, 다섯 살 많은 서른셋, 두 직급 높은 대리였다.
남자답고 호방한 성격으로 후배들에게 자주 밥을 사주는 따듯한 사람이었다.
가수급 노래 실력에, 개그맨 같은 유머로 무장한 사내 인기인이었다.
영업만 빼고는 다 좋은 사람이었다.
인수인계는 일주일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N 대리는 무슨 영문인지 미적미적 시작을 안 했다.
첫날은 어느 대학교로 데리고 갔다.
학위 수여식이 있었다. 학부형 노릇을 시켰다.
N 대리는 석사 학위를 받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회사에 다니며 대학원 과정을 마친 것이다.
그것도 무려 전공이 경제학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3일을 그냥 까먹고
나머지 3일로 인수인계를 대충 마쳤는데 상상 초월이었다.
정상적인 거래처가 거의 없었다.
짐작은 했지만 기가 막혔다.
인수인계 중, 한 달 목표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반품이 나왔고
정리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거래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심하게 이미지가 나쁜 곳은 없었다.
특유의 유머와 노래 실력, 임기응변 등의
기발한 능력으로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N 대리는 어쩌다 저리 되었을까.
궁금했다.
한마디로 직장에 대한 태도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다른 목적을 위해 직장을 정거장 정도로 여기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매일 출장을 나가 몰래 대학원을 다니고
개인 일을 보면서 실적은 허위로 쌓아
결국 반품을 쏟아내는 등 정상적이지 않았다.
당연히 회사나 팀의 피해는 막대했다.
그 사람의 목표는 우리와 다른 곳에 있었다.
N 대리는 1, 2년 정도 더 회사에 머물다가
결국 퇴사를 했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소문으로는 지방 선거에 출마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적을 남겼다.
이러니 영업이 되었을 리가 있나.
선배들이 꺼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런 사람 뒤를 맡았다가는 망하는 수가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같은 초짜 천둥벌거숭이는 겁도 없이 뛰어들었고
선배들은 혹시 자기들에게 불똥이 튈까 구경만 하고 있었고...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N 대리를 위해,
탈 없이 안전하게 물러날 수 있게 마중물이 되어주었다.
그것도 기꺼이.
“사이드 N 대리”, 그의 별명이었다.
바로 사이드만 발달한 사람이었다.
난 미리 6개월 정도는 실적을 묻지 않겠노라
약속을 받은 터라 어느 정도 극복할 시간은 있었다.
‘여기서도 신규만이 살길이네. 기존 것은 버리자.’
강남에 와서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N 대리가 남겨놓은 뒷설거지도 함께 하면서 미친 듯이.
처음 1년 동안 고생한 경험을 믿었다. 확실히 경험은 중요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만큼 쉽게 상황이 개선되지는 않았다.
당황스럽고 겁이 났다.
강북에서 잘 먹혔던 품목이 강남에서는 도무지 먹히지 않았다.
허탕 치는 날이 많았다.
‘이러다 망하겠다.’
불안감이 몰려오고 당황스러웠다.
선배들이 사주는 술도, 따듯한 위로도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만 늘어 갔다.
그러던 와중에 돌파구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졌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