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강남.
첫해를 잘 해냈다는 성과만 믿고 겁도 없이
강남으로 힘차게 뛰어 들었으나
처음 몇 달은 기대했던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갈 곳은 많았으나 성과가 나오지 않는 나날이었다.
한마디로 죽을 쑤었다.
‘이게 뭐지? 왜 거래가 안 되지?’
의문만 늘어가고 답답하기만 했다.
어디 상의할 사람도 없었다.
너무 낙담한 나머지 살짝, 방황이라는 것도 해 보았다.
이렇게 헤매며 지내던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작년의 거래처, 마포의 한 원장님을 찾아갔다.
형님 같은 분이라 하소연해도 기꺼이 들어줄 것 같아서
현재의 상황을 터놓고 말씀드리고 의견을 구했다.
원장님 말씀,
“강남은 다를 것이야. 강북에서처럼 일하면 힘들 거야.
우선 강남의 특징을 연구해 봐. 부자들이잖아.
의대 동기 모임에서 강남 동기들 만나면 좀 재수가 없어.
아마 걔들을 대하는 방법이 잘못되었을 거야.”
그러면서 대치동에 개업한 대학 동기생 한 분에게
소개 전화를 해줬다.
“거래를 해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는 받아 줄 거야.
한 번 만나봐.”
“감사합니다!”
큰 소리로 인사하고 대치동으로 번개처럼 날아갔다.
배** 피부과 의원,
밀린 환자 다 보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렵사리 만난 원장님,
군더더기 없이 정말로 일 이야기만 하셨다.
마포 원장님 말씀처럼 좀 건조하긴 했지만
그게 뭐 어때, 일만 할 수 있으면 되지.
살아가는 이야기가 먼저인 강북 원장님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배 원장님을 통해서 내린 결론은 강남은,
1) 경쟁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하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
2) 강남에서 통하는 품목이 따로 있다.
뭔가 특별한 제품을 원한다. 비싸더라도...
3) 많은 사람이 오고가서 그런지 정을 잘 주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젠틀맨이다. 진상 고객이 거의 없다.
물론 나도 젠틀 해야 한다.
4) 대형 거래를 만들기 쉽지 않다.
대신 많은 거래처를 가져야 한다. 게으르면 도태된다.
5) 社主께서 강남 산다. 조심, 유의해라.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알려질지도 모른다.
첫해의 경험은 강남에서 정착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고정 관념으로 작용해서 방해만 됐다.
과감하게 첫해에 쌓은 경험치를 버리고
“새 맞춤 접근법”으로 고객을 대했더니
겨우 조금씩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이후,
오히려 강남이 편했다.
1989년까지 2년간 강남을 담당하면서,
거래처를 무려 140개나 가지게 되었다.
너무 많아 벅찰 지경이 되었다.
강남을 떠날 때는, 두 명의 후배가 투입되었다.
엄청나게 키웠다.
그때 처음으로, 회사가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