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을 디딘 1987년, 스물일곱 살은 그렇게 지나고
스물여덟, 두 번째 해, 1988년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해엔 탄탄대로를 달릴 줄 알았다.
물려받은 거래처가 아닌 직접 개척한 거래처가 무려 70여 군데,
두려울 게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느닷없는,
아닌 밤중에 홍두께 같은 변수가 생겼다.
1987년, 팀 회식 자리에서 사고(?)를 쳐버린 것이다.
당시 우리 팀에게는 문제 지역이 있었는데 바로 강남구였다.
강남과 서초가 행정구역이 나누어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이며, 재화가 넘치는 동네.
내가 담당했던 지역보다 무려 5배나 많은 개원의가 있는 지역.
그러나 우리 회사는 헤매고 있었다.
담당자에게 문제가 있어서 교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이야기는 뒤에 다시 나오게 된다.)
후임은 누가 좋을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누가 강남으로 가주면 좋겠는데”
소장님의 간곡한 부탁에도 팀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술잔이 몇 차례 돌아도 선 듯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만 흘렀다. 분위기가 안 좋다.
조금 취했을까?
“제가 가겠습니다!”
내 한마디에 모든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진심인가?” 소장님의 밝은 목소리.
이런... 사고를 치고 말았다.
소장님은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다른 팀원들은 폭탄 돌리기에 걸리지 않았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냥 그대로, 일사천리,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1988년, 나는 정든 서대문, 은평, 마포, 용산을 떠나
강남 행 확정.
난 분위기에 취해 객기를 부린 바보 같은 녀석이 되었다.
미친 짓을 한 것이다.
가만히 있었으면 조금만 참았더라면
꿀과 기름이 흐르는 땅에서, 아...
다음 날 술이 깨고 나니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나는 왜 고생을 사서 하는가. 술이 원수다.
어쩌겠는가.
사나이 대장부 한 번 뱉은 말을 주어 담을 수는 없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인수인계를 준비했다.
내 앞엔 첫해보다 몇 배나 힘든 두 번째 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나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