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그 시절엔
군대에서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편지뿐이었다.
지금이야 핸드폰도 가질 수 있고 인터넷도 쓸 수 있어서
언제든 안부 연락이 자유롭겠지만 옛날은 그랬다.
옛날 군인에게 있어서 요즘 풍경은 참으로 생경하다.
그렇지만,
갇힌 환경이 가져다주는 추억과 낭만은
요즘 군인들에게 없을 터,
편리함과 맞교환한 기분이 드니 손해는 아닌 듯하다.
난 훈련소에서부터 어머니께 열심히 편지를 써 소식을 알렸다.
서신 검열이 있던 시절이었으니 미주알고주알 다 알릴 수는 없었고 그저,
“장남, 잘 있다, 걱정하지 마시라.”가 전부였지만
잦은 아들의 편지에 만족하시고 안심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부지런히 소식을 알리다가
군대 생활이 길어질수록 편지가 줄어들게 되었다.
고참이 되면 몸도 마음도 느슨해지고,
밖에서도 으레 잘 지내려니 여길 것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편지를 얼마나 쓰고 있는지 감도 없었다.
입대하고 20여 개월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참모부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데
대장님 당번병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장님 호출이란다.
아무리 오성장군 병장이라지만 장교도 아닌 사병을,
부대의 왕인 대장님께서 직접, 막 부르시는 경우는 없었다.
이건 필시 큰일이 난 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일이 없었다.
‘이게 뭔 일이람.’
“멸공! 병장 아무개 대장님께 불려왔습니다!”
대장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군용 딸딸이 전화 수화기를 넘겨주셨다.
엉겁결에 받은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
“야! 임마!”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는 날카로운 여자분 목소리,
“통신보안,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나, 서** 중령이야!”
‘누구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멸공! 안녕하십니까! 병장 아무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높은 사람이니까 인사부터 했다.
이어지는 그 높은 중령님의 말씀,
“너, 왜 집에 편지 안 해!” “당장 해!”
그러고 나서 대장님 바꾸란다.
대장님은 수화기를 돌려받고 싱긋 웃으시며
몇 말씀 나누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그 날 난 대장님 실에서 깨알 같은 글씨로,
한 장 가득 빡빡하게 채워 쓴 반성문 같은 편지를
대장님께 검사를 받고 나서 겨우 풀려 나올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전화한 여성 중령님의 정체는
대구 통합병원 간호 부장님으로 어머니 고향 후배란다.
아들과 연락이 두절되니까
고민 끝에 어머니께서 그 분을 찾아가,
고향 언니의 파워를 이용해 압박성 부탁을 하신 모양이다.
깜짝 놀랐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때부터 얼마 남지 않은 군 생활 동안
사흘이 멀다 하게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대장님 왈, “또 전화 오면 영창 보내 버릴 거다!”
세상에...
그날 난 집에 편지 안 써서 말년에 영창 갈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