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왜 이러십니까?”(2)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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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운명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마무리가 마음에 걸린다. 뭔가 더 할 말을 남긴 것 같다.


우린 모두 정해진 운명을 살아간다는 것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운명을 맞이하고 함께, 불화 없이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운명이 지나간 자리, 지금 닥쳐 있는 자리, 내일.

바라보기만 해도 힘들고 고통스럽다.


운명에 말한다. “나는 불행하다.”

운명 대신 달마가 답한다. “그 불행을 가져오라.”


살펴보면 행복과 불행은 경계가 없다.

힘들었던 순간들은 모두 일상의 자취에 불과했다.

공연히 스스로 경계를 지어서 울고 웃고 했었다.

내가 울 때 곁에 있는 사람도 함께 힘겨워했었다. 폐를 끼쳤다.

경계 없는 것들 때문에 함께 있는 사람만 힘들게 했다.

운명의 신은 그저 모두에게 겪으며 살라 했을 뿐인데 말이다.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뿐 아니라 누구나 아픔을 안고 산다.


밤하늘의 별을 별답게 바라보고 스치는 바람을 바람답게 느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저 들의 사자처럼 어떤 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으며 연꽃처럼 더럽혀지지 않는 그런 영혼을 가져야겠다.


운명을 맞는 자세가 이럴진대 행복과 불행에 대해 무슨 구분이 필요하며 두려울 게 무엇인가.


달마가 다시 말했다.

“불행이여. 오너라. 내 즐겨주리라.”

편안한 하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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