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제발 좀 도와줘....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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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사태가 터지자 회사는 긴급 노사협의회를 소집했다.

은행이 마비되고 원료대가 오르는 상황을 핑계로 종업원의 임금에 손을 대겠다는 것이다.

당장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당시 내 직급은 과장을 넘어 차장이었다. 사규 상 노사협의회 근로자 측 대표의 한계는 과장까지였다. 과장이었을 때까지는 나도 여러 번 대표로 참석했으나 차장 진급과 동시에 후배들에게 물려 준 상태였다.


회사의 속셈은 뻔했다. 비용 절감.

그것도 대폭으로.


대표로 나간 후배들은 당황했다.

세상 분위기가 그러니 무작정 강경하게 대할 수도 없었을 터. 그렇다고 덜컥 회사 안에 합의라도 한다면 직원들의 엄청난 원망을 감수해야 했다. 후배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끌고 있었다. 그대로 시간이 흐르면 회사의 생각대로 확정되고 말 것이다.


후배들이 내게 도움을 청했다. 간청이었다. “형, 제발 좀 도와줘....”


사규를 깨고 차장 직급을 가지고 동의 없이 마음대로 회의에 들어갔다.

떨떠름해 하는 사측에 양해를 구했다.


“곤경에 처한 후배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욕을 먹어도 선배인 우리가 먹고 싶다. 양해해 달라.”


모두 묵묵부답이다. 인사, 경리 부분 사측 대표 이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말을 해야 했다. 내게 발언 기회가 왔다.


마음 같아선 그냥 들이받고 싶었다. 별로 경영상 어려움도 없으면서 속이 빤히 보이는 짓을 하다니.

하지만 들이받기에는 사회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차분히 말을 했다.


“알겠다. 나라가 그리 되었으니 이해한다. 당신들이 어떻게 하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슬프다. 10년 전에 입사해 회사를 이만큼 키웠는데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라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스물세 살짜리 육군 소위 봉급 받고 다녀야 하는가. 어떻게 되더라도 회사를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전처럼 인생의 모든 것을 회사에 걸지는 못 할 것 같다. 마음대로 하시라. 어쩌겠는가.”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누구도 쉽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말을 잇지 못한 채, 어색한 시간이 한참 흘렀다.


사측 대표가 말했다.


“잘 알았다. 너희가 종업원이면 우리도 종업원이다. 사주에게 보고하고 결과를 알려주겠다.”


그렇게 각자 한 마디씩만 하고 회의는 끝났다. 회의실 문 앞에서 모 임원이 내 어깨를 치며 말했다.


“연설 잘 들었어. 명분을 줘서 고마워.”


결론,

급여 삭감, 상여금 보류 전부 취소되었다.

다른 비용을 최소화하기로 하고 급여는 손대지 않기로 했다. 우선은.


힘든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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