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의약분업 초기 혼란은 태풍처럼 지나갔다.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 같은 태풍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간다.
그러나 그 태풍은 많은 것들을 남겨 두고 떠난다.
영업하는 방식이 바뀌었고 업계의 지각 변화도 컸다. 혼란기를 기회로 삼아 최선의 대처를 한 HM 약품은 중위권 이하에서 맴돌던 업계 순위를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신화를 써 뭇사람을 놀라게 했으며 몇몇 회사는 자신감을 잃고 문을 닫기도 했다.
...... 그렇게 되었다.
모든 것이 아쉬웠지만 우리도 최선의 방어는 했다.
한 단계 점프할 수 있다는 자신감 정도는 가졌다는 말이다.
왜 우리는 HM이 될 수 없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렇지만 일일이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 있다고.
정치 외도를 하느라 수년 동안 나 몰라라 자리를 비운 오너, 인프라 구축은 언감생심이었다. HM이 훨훨 날아오를 때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착잡했다. 모든 게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공부 안 하고 놀다가 대학 시험 떨어지는 애들 같았다. 그 사람 그 오너 그 회사.
HM 오너는 우리 오너의 절친한 후배였다.
회사 설립연도가 같고 늘 순위가 우리 뒤에 있었다.
의약분업을 기준으로 우리를 앞질러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저 멀리 꼭대기로 가버렸으니.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
그 순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자기는 정치했기 때문에 그이보다 낫다고 스스로 위안이나 하고 있었다.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고 공허한 큰소리나 뻥뻥 치고 있었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하늘은 결코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속 쓰리고 안타까운 시절이었다.
오너 이야기는 언젠가 한꺼번에 모아서 다시 하겠다.
어쨌든 우리도 매출이 대폭으로 늘었고 이익도 좋아졌으니 주어진 여건하에서 잘 대처했다고 자평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 시기, 개인적으로는 겨우 직원 4, 5명을 관리하던 팀장으로 있다가 4개 팀 30여 명의 직원을 관리해야 하는 중간 간부가 되었다는 것이 큰 변화였다. 사람이 많다 보니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의원영업부 지점장으로 2년을 근무했는데 다음 편에서는 이 시절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속도가 빨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