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의약분업

by 신화창조
카운터.jpg

2000년부터 시작된 의약분업은 제약업계 판도에 큰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의사는 처방만, 처방받은 약은 약국에서만 조제한다.’ 이것이 분업의 주요 골자다.

따라서 모든 유통은 약국을 통해서만 해야 했다.


당연히 큰 혼란이 생겼고 각 제약사는 우왕좌왕했다. 이웃 일본은 선택 분업을 채택해서 부작용을 최소화했다는데 우리는 바로 전면 분업을 해 버린 것이다.

의약분업을 길고 복잡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다.

오래된 이야기고 지금은 정착한 상태로서 모두 그리 관심도 없을 것이니까.


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당시 나는 종합병원부서 팀장으로 6년 동안 안정적으로 재미있게 일하고 있었는데 예고 없이 갑자기 의원부 지점장으로 발령이 났다. 의약분업을 완수하라...

당시 수도권 의원부는 본사, 안양, 영등포 등 3개 지점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이걸 하나로 통합해서 나에게 맡긴 것이다.


상황의 다급함으로 인해 내 의견을 반영시킬 여지는 전혀 없었다.

갑자기 남침을 당한 6.25 당시 정부 같은 분위기인데 무슨 의견이 필요할까.

그냥 판단할 틈도 없이 부임했다.

지점에는 동서남북 네 개 팀이 소속해 있었다. 다행히 팀장들은 절친한 후배들이었다. 그러나 모두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불안하기는 똑같았다.

하지만 나는 우두머리였다. 최대한 불안을 감추고 평온한 척 했다.


우선 제도 변화로 역할을 잃어버린 OTC 약국부를 통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힘든 일이었다. 당시 약국부는 독립된 부서로서 서울에 네 개 팀이 있었는데 팀장들은 거의 선배였다. 이 분들을 설득해서 지점으로 흡수해야 했다. 심지어 어떤 선배는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많았으니 그 분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한 분들도 아니었다.

내가 보장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선배라고 특별대우를 해주기라도 하면 나머지 직원들을 또 어떻게 지휘하나. 그야말로 천지개벽이 되었으니 따르라는 말만 가지고 그들을 만났다.


“형님, 같이 갑시다. 한 번 적응해 봅시다.” “싫어. 그만둘래.”


며칠을 씨름했다.

면담, 면담, 술자리.


사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회사 입장에서 그들은 그만 두어도 상관없다는 주의였다.

잘 정리하라.

그러나 나는 리더로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어려운 일이 산더미이며 이걸 함께 해결해야 할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을 함부로 대할까.

사람을 쉽게 버리는 리더를 누가 따를까.


힘든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 결과, 거의 대부분의 약국부 인원이 잔류를 선택했다.

다행히도.

아무튼 많은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큰 변화 속에서 탈 없이 회사를 연착륙시켰다.


벌써 26년이 지난 이야기다.

의사시위.jpg


이전 13화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