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은 내 영업의 황금기였다. 일하는 만큼 성과는 즉각 나왔으며 불운은 없었다.
종합병원 진입 초기 본부장과의 갈등 이후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척 좋았다. 회사 성장을 위한 의견 역시 비교적 잘 반영되었다.
회사 역시 나름대로 착실히 업계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았던 건 우리로 인해 회사가 틀이 잡혔다는 평판을 들었을 때다. 아주 작고 미미했던 회사가 경쟁사들로부터 두려운 상대로 인식되었다는 것이 우리를 고무시켰다. 그야말로 작지만 강한 회사, 영업력 하나만은 으뜸 회사가 된 것이다.
우리는 병원에서 처방을 늘리고 신약을 심는 일을 하나하나의 전쟁으로 받아들였다. 전쟁에서 지면 무엇이 기다리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기는 길뿐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지지 않았다.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는 원숭이가 된 것이다. 성과를 내는 만큼 대접도 융숭했다. 하와이 등, 인센티브 트립도 여러 차례, 기회가 올 때 마다 빠짐없이 다녀왔고 차장, 부장은 특별 진급으로 달았다.
비록 30대이고 평직원에 불과했지만 오너에게 자주 불려가 여러 사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의견은 잘 반영되었다. 나 이외에 누구도 그런 사람이 없었기에 질투와 견제도 숱하게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걸 의식하기에는 너무 젊었고 패기만만했기 때문이다.
내가 당당히 처신할 수 있었던 도덕적 배경은 출세에 대한 사심이 없었다는 데 있었다. 나의 본분은 전쟁하는 군인과 같다고 생각했다. 군인이 무슨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전쟁에 나가 이기면 다 되는 거지.
한마디로 난 단무지 기질을 가진 직원이었다.
단순무식한 반찬, 노란 단무지.
이런 나의 기질을 진즉에 간파한 오너는 아주 편하게 나를 대했고 또 잘 써먹었다.
문제는 너무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데 있었다. 신분상 오너이기도 했지만, 아버지뻘이라서 함부로 거역할 수도 없었다. 부르면 밤이고 낮이고 무조건 가야 했다. 그중에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건 한창 예민하게 마감 중일 때 부르는 거였다. 위로 지점장, 부서장, 본부장 다 있는데 나만 부르면 어디 간다고 말도 못 하고 빠져나가야 했다. 오너가 불러 나간다고 말하기라도 하면 다들 뭐라고 말은 못 하지만 일순 분위기가 싸해진다.
“회장님이 불러서…….”
그렇게 막상 만나보면 별 내용이 없다.
“그냥, 소주 한잔하자고.” 이런 식이다.
결국, 어느 날 말씀을 드렸다.
“조만간 저 쫓겨날 것 같습니다.”
“왜?”
“회장님이야 더 위로 높은 분이 없으시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층층시하가 아닙니까? 그분들 보기에 얼마나 얄밉겠습니까?”
씩 웃으며 이렇게 말씀 하신다.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맨 꼭대기에서 보면 모두 평평해. 뭐 자네가 힘이 든다니까 신경 써 보지. 하하.”
그러고 나서 한 며칠 부르지 않았지만 잠시뿐이었다.
오너와 나의 관계. 당신 말씀마따나 사회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그 이후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계속되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편하지만은 않았다.
IMF 이후 2000년대 약업계 대혼란기를 이야기하기 전에 오너와의 관계에 대해 배경 설명이 필요해 잠시 언급해 봤다.
그러나 막상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추억이 많이 떠올라 앞으로 종종 화제에 올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