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부서, 마케팅부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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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갑작스럽게 마케팅부장으로 부임했다.

꿈에서도 마케팅 업무를 할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고정 관념, 뭐 이런 것이 없어서 편했다.

당연히 지나간 사람들을 따라 할 생각도 없었다. 이미 난 부장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막 의약분업 초기라 기존의 패러다임이 깨지고 새삼 정책과 전략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기라 선입관을 갖지 않는 게 더 나았다. 한마디로 나 같은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도 대접받을 수 있는 아주 짧고 희귀한 시절이었다. 패러다임은 나에게 맞게 다시 세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부장이라고 특별대접을 받을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기왕에 일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었다.

회사의 기대가 너무 커 다들 담당을 꺼리고 있던 품목을 맡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부장님, 원래 부장님은 총괄만 하시고 품목은 안 맡아요.”

“그런 게 어딨냐! 난 완전 초짜라서 PM의 경험이 필요해. 맡게 해줘.”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겨우 품목을 하나를 맡게 되었다.

(고생문을 스스로 연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나 알게 되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PC를 다룰 줄 모른다는 것이다.

쭉 영업 현장에서만 일하다 보니 필요성을 못 느끼고 배우지 않고 있었다. 이제 막 가정용 컴퓨터가 공급되기 시작한 시절이었고 회사는 일부 부서에서만 활용되고 있었다. 마케팅 부서에서 생존하려면 그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중년 이후 상당수는 아직 컴퓨터를 배우려 하지 않던 때였다.

누가 배우라고 강요하지도 않았으며 그것 모른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기들보다 사무 능력이 모자라는 부서장을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분명 속으로 무시하고 깔볼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이건 당연히 잘해야 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이 급해졌다.


하나하나 매일 S군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면서 일했다. 일과 함께 배우니까 빠른 속도로 실력도 늘어 얼마 지나지 않아 불편하지 않을 수준은 되었다.

품목 PM을 직접 맡고 있으니 부하들의 심정도 금세 이해하게 되었다.

마케팅 일도 할 만했다. 그냥 그대로 쭉 살아가면 불편 없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렇지...


15년 영업 경력은 나를 편안하게 그대로 두지 않았다.

성과를 내야 했다.

당시 나는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측정할 수 없다면 일을 안 하는 것과 같다는 똥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영업을 너무 오래 해 생긴 일종의 직업병인데 당시는 그게 병인 줄도 몰랐다.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받고 괴롭고 힘든 일을 여기저기에다가 만들기 시작했다.

‘이왕 온 마케팅부. 걸리버 발자국 하나는 남기고 가자.’

지금 돌아보면 참 겁 없고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돌도 깨 먹을 것 같았던 40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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