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서막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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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부에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너의 발령 의도를 몇 번의 면담을 통해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다. 오너는 나를 통해 격변기에 회사의 성장을 위한 정책적 전환점을 만들려고 했다.


국회의원 4년은 길었다.

당신이 자리를 비운 공백기에 회사는 성장 동력을 잃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다시 동력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자리를 비운 당신 잘못이 컸다. 어쩌겠는가.

또한, 보수적이고 부패한 기존의 Opinion Leader에게서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아부나 잘하고 자기 것 챙기는 특기밖에 없는 이들에게서 뭐가 나올까.


회사는 ‘곳간 지기’가 자리를 비운 4년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었다. 별일 없이 조용한 시절 같으면 썩어있든 말든 드러나지 않고 지나갔겠지만, 격변기에는 금방 티가 나버린다.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임원을 제치고 나 같이 겁 없고 당돌한 부장 나부랭이를 당신 코앞에 포진시킨 것이다.


부임하고 매일 오너를 독대했다. 내용은 별것 없었다. “네 맘대로 지껄여 봐”란 식이었다. 당신이 소원하시는 대로 평소에 갖고 있었던 생각을 가감 없이 말했다. 쉽게 알아들으시라고 공식적 자리에서는 쓰기 어려운 시중의 언어를 주로 사용했다. 어려운 말 써봐야 4년을 놀다 온(?) 사람은 못 알아들을 테니까 말이다.


그 이후 나는 폼 잡고 어려운 말을 하는 기능을 잃어버렸다.

다소 상스럽게 들릴지는 몰라도 전달만 잘되면 장땡 아닌가.

말을 쉽고 단순하게 하자. 나의 근본 생각이자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게다가 오너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난장판을 뚫고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생리적으로 폼 잡는 걸 싫어했다.


회사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치졸하지만, 대안을 제시할 때 오너의 눈이 반짝였다.

오너와 난 죽이 잘 맞았다. 척이면 착이었다. 말씀을 안 하셔도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나는 알았다.

갈수록 ‘그래! 한번 해보자!’ 온몸에서 엔도르핀이 마구마구 품어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내 위로 층층이 박혀있는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들의 반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겐 오직 오너 한 사람뿐이었다.

외로운 여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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