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돈을 많이 모으면 행복해질까? 과연 재벌이 되면 행복해질까. 권력을 쥐면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해질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다 가졌던 봉건 시대의 왕들이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물으면 모두에게서 다른 대답이 나온다.
돈, 권력, 건강, 배우자, 자식 등등 이런 것들은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닌 것 같다.
1911년생인 조부님은 유아기와 청년기를 일제 치하에서 보내셨다.
아무리 많은 것을 생산해 봤자 다 빼앗아 가는 구조. 초근목피로 연명하셔야 했다.
하루 끼니 먹을 것조차 부족한 환경에 의료혜택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던 탓에, 어린 나이에 고작 독감 따위로 아버지를 잃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당시 할아버지의 첫 번째 행복조건은 아마 먹을 것이었을 것이다.
밥이 아니어도 좋으니 하루 두 끼 식구들 입에 넣을 수 있으면 행복하다고 여기셨을 것이다.
궁벽한 촌에 사신 덕분에 징용은 면하셨지만 언제 끌려갈까 늘 불안에 떠셨단다.
당신 자신이 끌려가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이 없으면 식구는 다 굶어 죽어야 하니까.
해방이 되었다고 해서 나아질 것은 없었다. 오히려 생명을 지키기가 더 어려워졌다.
치안 부재에다가 좌우 격돌로 도망 다니기 바빴다.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주변의 애꿎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단다.
할아버지는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죽지 않아서 행복했다고.
그렇게 살아남아 식구들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1930년생이시다. 스무 살이 넘자마자 전쟁이 터졌다. 역시 살아남고 싶으셨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살아야 다음도 있는 거니까. 죽으면 그만이니까.
전쟁에 자원하셨다. 스무 살 청년이 숨을 곳은 군대 뿐이었다.
전쟁통에 큰 피해를 봤든 말든 역시 살아는 남으셨다.
전쟁에서 돌아오니 아무것도 없었다.
할아버지 때와 마찬가지로 행복조건은 별반 바뀌지 않았다.
생존과 세 끼. 바라는 게 늘었다. 두 끼에서 세 끼로.
그리고 훌쩍 뛰어 우리 세대. 굶어 죽는 사람은 줄었다. 아니, 없어졌다.
누가 와서 함부로 총질, 칼질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행복의 조건도 바뀌었다. 더는 생존과 끼니가 아니게 되었다.
세 세대가 바뀌고 드디어 그것들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1985년 퇴직하신 아버지는 노는 방법을 몰랐다.
전쟁통에 얻은 위장병으로 술, 담배를 못 배우셨고 더더욱이 잡기는 배울 틈이 없었단다.
한마디로 일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넘쳐나는 시간을 어쩔 줄 몰라 하셨다.
보기 딱할 정도로.
두 분 다 그렇게 사시다 돌아가셨다.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당신들이 가지셨던 최고의 행복조건을 달성하셨으니 어쩌면.
잘 모르겠다.
조건이 다른 우리 눈에는 의문 투성이다.
그렇다면 과연,
은퇴를 하고 할 것도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은, ‘너! 나!’는 행복한가?
그분들 보다.
혹여 말이다.
혹시나
우리는
행복의 조건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세대는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