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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靺鞨)

by 신화창조

옛 이름, 숙신, 읍루에 이어 한반도 북쪽에 살던 6~10세기 사람들의 무리를 이르는 명칭이다.


그곳 사람들이 자칭하던 이름은 아니며, 중국의 당, 송 그리고 한반도 남쪽 사람들이 그들의 미개함을 빗대어 사용하던 멸칭이었다. 현대의 “촌놈”과 유사한 뜻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들은 반유목, 반농경, 어업, 수렵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갔으며, 부족 연맹체 형태로 조직을 유지했다. 그중에서도 흑수말갈은 비교적 독립적으로 행동했으나, 대다수의 부족은 부여나 고구려의 하층 백성으로서 삶을 영위했다.


언어적으로는 퉁구스어와 알타이어를 혼용하여 사용했다. 흑수말갈은 인근 국가들에 저항했으나, 발해 시기에는 결국 복속되었다.

중국의 당과 송은 그들의 거친 전투력을 경계하며 늘 이이제이와 이간계를 활용해 말갈 내부의 통합을 방해했다. 이는 그들의 전투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방증하는 것으로, 후대에 이르러 말갈 후손들이(금, 청) 중국을 지배하기도 했다.


퉁구스 계통과 예맥 계통이 섞여 살아가던 이들은 부여와 고구려에서는 같은 민족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흑수말갈을 제외한 대부분의 말갈은 부여와 고구려에 충성하며 그들의 부흥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부여 계통(부여, 고구려, 백제)이 멸망한 뒤, 말갈은 발해로 통합되었고 발해 멸망 후에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부는 잔존하여 후일 여진의 선조가 되었다.


근대에 들어 말갈을 포함한 북방 민족의 정체성은 일본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왜곡으로 가치가 폄하되고 한반도의 역사와 분리하려는 시도가 있다.


그러나 말갈은 벽지에서 살아 문화적으로 뒤처졌을지언정, 분명히 한반도 민족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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