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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화선 Nov 08. 2020

나의 행복한 순간은 기록할 때

미래에 웃으며 행복했던 그때를 다시 본다면

"진짜 안 간다고?"


일요일을 기다린다. 내 몸을 쉬게 하는 고마운 날이다. 일요일을 기다리는 또 다른 사람은 아이들이다.

"아빠! 우리 가게 쉴 때 저기 가고 싶어" 두 녀석은 쉬는 날이 올 때면 어디에 가자고 서로 다투며 아빠를 찾는다.

 

이번 주에는 가까운 지인이 내장산에 단풍이 막바지라며 같이 가자고 했다. 아내는" 전 안 갑니다." 딱 잘라 말한다. 정말이냐고 물었다. 본인은 집에서 푹 쉬고 싶단다. 일요일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내 몸도 휴식이라는 달콤한 충전을 해줘야 한다고 말이다.


화가 났다. " 일요일은 아이들과 함께하고 우리가 식당에 묶여 있으니깐 쉴 때는 많은 곳을 보여주자며?" 집에서 쉰다는 말에 아내가 했던 말을 되짚으며 성질을 냈다. 가만히 듣던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난 평소에 아이들과 온몸으로 놀아줘요. 당신은 맨날 아이들 올 때면 책 보고, 공부한다면서 컴퓨터만 보고 있잖아." 일요일이 뭐길래. 좀처럼 다투지 않는데 싸우게 됐을까.


"뭐라고?" 육아는 본인이 다 하는 것처럼 날 배제하는 것에 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장산에 가자는 말이 터지지 않던 깊숙한 무언가를 건드렸나 보다. 그때 알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구나. 본인은 안 간다고 했지만, 아이들까지 가지 말라고 한 게 아니었다. 내 몸에 달콤한 충전을 해주고 싶다고 지친 몸을 쉬고 싶다는 표현을 한 것뿐인데 순간 내가 오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감정이 들기 시작할 때쯤.


"당신은 보여주려고 하는 거잖아." 블로그 올리고 어디 갔다 왔다고 관심받고 싶은 사람처럼 하는 거라며 식은 감정에 확 기름을 쳐 붓는다. 어이가 없었다. 누군가는 보겠지만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블로그를 쓰지 않았다. 그냥 우리들의 삶이 기록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이들과 소중한 순간 그때의 감정,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참 후에 같이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게 삶의 동화 아닐까 생각했다.


뭘까? 서운한 게 뭘까. 감정도 생각도 지치기 시작했다. 싸움은 일방적인 TKO로 내가 먼저 수건을 던졌다.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뭘 서운하게 했는지 패배의 수건에 그려보기 시작했다. 수건이 아내의 얼굴에 떨어지기 전에 답을 구한다면 아내는 훌륭한 경기였다며 패배가 곧 승리라고 안아줄 것 같았다.


모르겠다.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오히려 아내가 먼저 다가온다. 관심에 목맨 사람이라고 했던 게 미안했나 보다. 대단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닌데 '행복했던 그 순간'을 글 안에 붙잡아 두고 싶었을 뿐이었다. 일요일은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하루고 손님을 위해 헌신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로지 가족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함께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꼬맹이 때 아이들의 소중한 추억 속에 아빠만 없었기 때문에 안다. 내장산에 엄마만 없다면 우리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을 것 같았다. 주말여행을 다니며  군데군데 엄마가 없는 건 싫었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기록하는 걸 행복해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기록하는 순간도 같이 행복을 저장하고 있었구나를 깨달은 싸움이었다.


 '당신은 보여주려고 하잖아' 그 말에서 알았다.


'맞아. 보여주고 싶어. 미래의 우리에게'


우린 웃으며 페이지를 넘길 것이다.

어제도 오늘 열어 볼 수 있다. 오늘 보는 어제는 새로운 감동과 느낌을 줄 것이다.

그때 우린 얼마나 많이 느끼고 감동할까.


아내는 우리 가족만 원했다.

혼자만의 시간이란 가족의 시간을 말한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소비했던 헌신과 사랑을 오로지 아이들에게만 쏟아붓고 싶었던 것이다.

여전히 둔한 신랑에게 살며시 다가와줘 고맙다.


"일기이고 앨범이 되었잖아. 그냥 좋아. 아이들과 있었던 추억을 기록할 때 행복하거든." 아내를 포옹하며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 나의 행복한 순간은 아이들과의 시간을 글 쓰며 복기할 때였다.  우리 행복을 저축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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