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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화선 Jan 11. 2021

마흔에 책가방을 매다

마흔 이후의 삶이 부끄럽지 않다.


일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학교 때 책만 읽더니 글을 쓰고 있네 " 글을 잘 보고 있단다. '내가 책만 읽었던가? 지금 글을 쓰는 사람인가?' 전화를 끊고 머릿속에서 친구의 말이 맴돌아 좋아하는 술 약속조차도 잊어버렸다. 중학교 후반부터 마흔 전 삶은 과거의 난 누구였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나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기억하기 싫다.


마흔 이후 알게 된 글쓰기가 변화를 만들었다. 변화에 부응이라도 하듯 잘 쓰고 싶었다. 송숙희 작가가 쓴 <최고의 글쓰기 연습법, 베껴 쓰기> 책을 읽고 신문 칼럼을 베껴 쓰기 시작했다. 꾸준히 하지는 못했다. 작심삼일이었지만, 삼일 열심히 하고 며칠 쉬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내 맘대로 해석해버렸다. 가끔은 모든 걸 내 기준으로 생각해도 좋을 때가 있다. 그렇게라도 꾸준히 베껴 쓰기 하다 보니 특정한 분야를 베끼는 걸 발견했다. 노트엔 정치, 사회, 부동산 관련 칼럼들이 쌓여있었다. 세상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글쓰기를 잘해 보려고 무작정 시작했던 훈련법을 통해 내 관심사를 알게 되었다. "어떤 책이 가장 좋나요?" 물어보니 "신문이요" 라고 답한 글을 봤다. 나도 신문을 통해서 배워가고 있다.


가끔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부모님이 이혼했던 중학교로 간다면? 패싸움해서 칼을 맞고 병원을 들락 거렸던 고등학교라면?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다시 생각하지 말자며. 대신 쉰이 되었을 때 마흔의 내 모습을 생각하자고 굳은 다짐을 해본다. 마흔에 난 글쓰기를 시작했고, 칼럼을 베껴 쓰면서 훈련했다.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더디지만 발전하고 있는 게 보인다. 이제야 책가방을 맨 어깨가 으쓱거린다.


기초의원 선거 때, 현 도의원에게 군의원을 추천받았다. 내 관심사가 표시 났을까. 단체 활동이나 지역 모임을 하지 않는 날 눈여겨 봐준 그분께 감사했지만, 몇 번의 고심 끝에 추천을 반려했다. 깊은 공부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깨닫는다. 어떤 한 가지 주제를 건들면 얕은 지식이 드러나게 된다. 지인들은 찢어진 백과사전이라며 넓기만 하고 얕다고 약 올렸다. 공부가 필요함을 깨달았고 칼럼을 꾸준히 베끼면서 뭘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글쓰기를 잘하고 싶어 시작한 훈련은 좋아하는 걸 깊게 공부하라고 알려줬다. 오늘도 찢어진 백과사전을 붙이려 작심삼일을 외쳤다.


쉰이 되었을 때 내가 누구였는지 안다면 좋겠다. 지역사회와 세상일에 관심이 많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뛰어드는 사람이며, 부동산 개발업자로 살아가게 된다면 마흔 이후의 삶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릴 때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비록 어린 시절은 내가 누구인지 몰랐어도 괜찮다. 마흔 이후의 삶을 사랑했다고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돌아보게 될 거다. 3년마다 공부 주제를 바꾼 피터 드러커까지 바라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작심삼일일지라도 공부하고 있다면 만족스럽다.


꼴찌였던 내가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글을 쓰며 세상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누구라고 이야기가 들린다. 과거로 돌아가 내가 누구라고 귀띔해 준다면 삶이 바뀌었을까. 마흔의 난 서른을, 스물을, 학창 시절에 헛되게 보낸 시간을 용서한다. 쉰이 되었을 때 마흔을 가장 사랑했다고. 예순이 되었을 땐 쉰을 가장 사랑했다고 말한다면 내가 누구인들 상관없다. 자신을 사랑했다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있을 테니까. 지금까지 늘 유급생이었지만 마흔 이후는 다르다.


디자이너 친구가 다시 물어봐 준다면 좋겠다. "응, 그랬지. 책 읽는 거 좋아하고 글 쓰는 거 좋아해"  선생님이 된 선배는 늘 어려운 주제를 던졌다. '아무리 관심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휴~' 후배들이랑 대화 후 선배의 홈페이지에 적혀있던 글귀였다. 지금은 선배랑 대화가 가능할까? 얕은 지식과 관심 없던 세상살이에 대해서 이젠 선배에게 받은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줄 수 있을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 멈췄던 시간이 마흔에 깨어났다. 마흔에 선물을 받았다. 이제야 책가방을 맨 내 모습이 귀엽다.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8기/ 나는 누구인가?)

https://brunch.co.kr/magazine/findme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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