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매일 낙지 비빔밥을 만들어서 그럴까. 아이에게 밥을 갖다줄 때면 쉽게 먹을 수 있는 계란을 비벼서 배달해 준다. "그러네, 오늘도 계란이네." 옆에 있던 아들도 누나랑 같은 생각이다. "아빠는 맨날 맨날 계란만 줘"
토요일엔 어린 두 녀석을 집에 두고 가게에 간다. 가기 싫다고 떼를 쓰고 울고불고 전쟁은 시간이 없는 부모의 패배로 결론이 난다. 안 가겠다는 녀석들을 질질 끌고도 가봤지만, 가게에선 더 지치고 힘들게 괴롭힌다.
"너희들 이야기했잖아. 아이들만 집에 있으면 경찰이 잡으러 온다고. 빨리 준비해." 좋은 말로 시작하지만 결국 끌고 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멋모르고 엄마 아빠 일하는 곳에서 노는 게 좋았던 아이가 크면서 가게는 재미없는 곳이 되었다.
아내랑 상의 후 점심을 빨리 끝내는 방법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만 집에 있으니 불안함 때문에 일하는 동안 서로 수십 차례 전화를 주고받는다. 무섭지? 배고프지? 과자 사줄게? 별 유인책을 다 써도 쉽게 넘어가지 않고 집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가게가 싫은 건 아닌데 유독 토요일은 집에 있으려고 한다. 점심은 집에 있어도 이상하게 저녁 장사는 따라나선다.
왜 그럴까? 귀찮은 건가? 아이들 신체 리듬엔 토요일과 일요일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데 부모의 일터에 갔으니 피곤이 누적되어서 그런가? 자영업을 하다 보니 어린아이들도 장사 해야만 했다. 토요일은 유치원에 가지 않으니 본인들도 장사를 쉬겠다는 건지. 대화해보면 싫다는 얘기뿐이다. 본능적으로 다른 친구들은 집에서 쉬고 있으니 우리도 집이라는 공간에서 쉬어야 한다고 느끼는 건가. 가게도 집이라고 말하면 거긴 집이 아니라 식당이라고 이야기한다. 엄마· 아빠가 일하는 곳이라고 정확히 설명할 때면 데리고 갈 수가 없어진다.
집에 있겠다는 아이들과 티브이와 유튜브는 금지라는 약속을 받고 한발 물러섰다. 아이들 점심은 배달해 준다. 식당을 하는데 아이들 밥을 먼저 챙겨줘야 손님들한테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루는 할머니에게 배달을 시켰다. 집에 다녀오시더니 도대체 얼마나 계란만 먹었으면 안 먹는다고 하냐고 말씀하신다. '계란만 줬나?' 아닌데··· 어떤 날은 김밥을 보냈다. "아빠 김밥이 맵잖아" 편의점에서 우리 먹으라고 사다 준 걸 아이들한테 확인하지 않고 보냈더니 난리가 났다. 계란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는데 김밥이 매웠다고 점심을 굶었다.
용케도 점심을 굶은 날 외할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밥 먹었어?" 물었더니 "아니요. 엄마가 밥 안 차려줘요" 당돌하게도 밥을 못 먹었다고 말해버렸다. 아내는 엄청나게 혼났다. 아이들 밥도 안 주고 일하는 게 무슨 소용 있냐고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 그날은 밥을 먹지 못했다. 배가 엄청 고팠을 텐데 배고픔도 참아지는지 밥 달라고 하지 않았다. 매운 김밥과 질린 계란밥이 문제였다면 난 조용해진다. 아빠가 밥을 가지고 오면 맨날 똑같으니까 제발 엄마가 와달라고 애원한다. 엄마가 갈 땐 확실히 다르다. 예쁜 접시, 매번 다른 반찬에 국까지 끓였고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천천히 오래 씹어" 한마디씩 하며 옆에 앉아 있어 줬다. 밥만 주고 갔던 아빠가 올 때면 둘이 먹는 쓸쓸한 밥상이 먼저 생각나서 밥맛이 떨어졌을 것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미역 줄기
오늘은 떡갈비를 구웠다. 아들이 좋아하는 미역 줄기도 준비했다. 영상통화를 하며 프라이팬을 보여줬다. 지글지글 굽는 냄새가 화면 너머로 보이는 딸은 " 아빠 좋아. 좋아. 맛있겠다" 펄쩍 펄쩍 뛴다. 떡갈비 하나 구웠다고 웬 호들갑을 떨까 생각과 어지간히 맛 난 거 한 번 안 해줬구나! 반성을 하게 되었다. 떡갈비와 미역 줄기, 밥 두 공기를 든 손은 여느 때와 달랐다. '미안함' 한 공기와 '고마움' 한 공기였다. 아빠한테는 계란밥이 질린다고 말하지 않았던 아이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맘에 두 공기는 너무 무거웠다.
맛나게 먹지 않는다
먹는 모습을 앉아서 지켜봤다. "천천히 오래 씹어야 해" 눈을 맞춰 줬다. 당황했는지 눈길을 피한다. 점심 장사를 하는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아이들은 한 공기를 다 먹지 못했다. 토요일 낯선 아빠의 모습이 부담되었는지 평소답지 않다. 이놈들이 먹다 남은 밥그릇을 들고 가는 손도, 마음도 가볍지 않다. 아빠가 오지 말라고 말했던 딸의 말뜻을 이제 알았다. 바쁘니깐 오지 말란 게 아니었다. 엄마의 손길을 기다렸다 . 엄마가 옆에서 밥도 먹고, 김치도 잘라주고, 떨어진 밥풀을 주우며 혼나는 게 그리웠다. 평범한 가족이 되고 싶었다. 아빠는 일을 하러 간 토요일, 엄마의 밥상을 기다린 것이다.
월요일에 유치원에 가면 친구들은 말했을 것이다. '아빠는 회사 가고, 엄마랑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게 평범한 가족의 토요일 일상이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토요일엔 친구들처럼 집에서 점심을 먹고 싶은 맘이 가게에 가기 싫다고 버텼던 이유가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