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살고 있다. 시간은 보이지 않는 공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인가 하면 어느새 저녁이 되고 겨울이 가면 봄이 찾아온다. 재미있는 공연이 시작되면 어느새 끝나는 시간이 된다. 시간은 쉬지 않고 공간을 변화시킨다. 시간과 공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우리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을 느끼고 바라보며 잠시 동안이지만 다른 공간의 이동을 통해 자유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둥실둥실 떠 있는 배 위에서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듯이 불가시적으로 흐르는 시간과 공간을 감지하고 그 위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흥미로울까?
인간은 일정한 공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공간적 존재이다. 공간은 모든 생명체, 특히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고 근원적으로 조직화된 체계의 하나라고 한다. 방에서 잠을 자고 한 장소에서 일한다. 공원에서 산책하고 도시에서 여러 공동체를 이룬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동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들은 늘 존재하고 있어서 쉽게 인식되지 않는 순간이 더 많은 공기와 같은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거기에 일정한 제한이 가해지면 갑자기 느껴지지 않던 그것들이 의식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벗어나고 싶은 강한 압박과 속박을 감지하기도 한다. 마감일이 정해지면 급하게 원고를 쓰려고 고심하게 되고 갑자기 외출 금지가 내려지면 더욱더 자유롭고 싶은 욕망에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물속에서 여유롭게 헤엄을 치던 물고기가 낚시꾼의 낚싯바늘에 걸려 물 밖의 테두리를 경험하게 되면 사정없이 파닥거리는 것처럼.
지금 내가 사는 공간은 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좁다. 마음은 편하지만 공간적으로 느끼는 답답함은 어쩔 수가 없다. 자연스레 도서관이나 카페 등 밖에 나가는 일을 자주 갖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장기화된 코로나 대응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로 격상되어 점점 활동무대가 좁아져 갑갑함은 더 커지고 있다.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경계의 금이 그어지니 제한된 테두리가 없을 때 느끼지 못했던, 그 선을 넘어서고 싶은 욕구가 분수처럼 솟구치다. 어쩌면 인간은 규제가 생겨야 만이 자유로움을 꿈꾸게 되는지 모르겠다.
시간의 경우도 동일하다. 시간이 많이 있을 때는 열심히 하려는 의지를 갖기 어려운데 제한된 시간이 주어지면 더 부지런해진다. 시험 10분 전의 집중력과 시험이 일주일 남았을 때 그것의 차이처럼. 서글프지만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사람의 시간과 한 번도 생의 마지막을 생각해 보지 않고 사는 사람의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게 느껴지는 것처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시간과 공간에 댈 것도 아니게 너무나 작은 내 존재는 그렇게 제한이 가해질 때만 그것을 아주 조금 인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들이 좁혀져 와서 갑갑함이나 고통이 감지되지 않으면 그 안락한 공간을 떠날 엄두를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억압된 공간에서 해방되었을 때의 감사도 모르는 것 같다. 늘 익숙한 곳을 떠나기 쉽지 않고 설령 떠나려고 하면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때문이다.
며칠 전 자가격리 통지를 받았다. 내가 있던 장소에 코로나 확진자 1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이지만 2주 동안은 코로나 의심 대상자이므로 의무적으로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자가격리 앱을 핸드폰에 깔고 계속 실행시키고 있어야 했다. 실시간 통제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스스로 열 체크와 건강상태를 진단하고 결과를 앱으로 보냈다. 수시로 보건소와 콜센터에서 확인 연락이 왔고 심지어 새벽에도 격리 지역을 벗어났는지 확인하는 알림이 실행 중이던 앱을 통해 울렸다.
공무원들도 많이 애를 쓰고 있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고 코로나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확산을 막으려는 여러 사람들의 노고는 알지만 시간이 지나자 통제를 받는 심한 압박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나의 공간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고 자유롭게 외출할 때 느끼지 못했던 갑갑함이 더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누르고 있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 솟아오르는 욕구를 자제하려니 우울하기까지 했다. 창살 없는 감옥같이 느껴졌다. 자신이 헤어나고 싶은 공간에서 그러지 못할 때 느끼는 눌림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제한된 공간의 무거움이 나를 억눌렀다.
자연스럽게 공간과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그것들은 꼭 필요하지만 동시에 압박하기도 하는 거 같다. 그래서 인간은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공간을 끊임없이 떠나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또 멈춰있는 것을 답답해하고 무언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떠나기를 동경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떠나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익숙한 곳을 떠나려고 하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어렴풋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공간에 매여 있는 존재이다. 공간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아주 가끔 어렵게 용기를 내어 떠나기를 시도해보고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경험하는 것 같다. 그때 공간의 자유를 조금씩 누리는 휴식을 얻는 것은 아닐까 싶다.
격리 마지막 날이 되니 한결 마음이 가뿐해졌다.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나고 격리 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날 오전 시간은 그 전날 오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편안했다. 상대적으로 시간도 빨리 지나갔다. 마지막 한 시간, 마지막 10분, 마지막 1분, 드디어 자가 격리 해제되었다. 마침내 자유, 자유롭게 외출했다. 밖에 공기는 상쾌했다. 차갑지만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맑은 하늘을 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유의 기쁨을 만끽했다.
어쩔 수 없는 통제, 좁아진 공간의 답답함, 고통의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움은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내 존재에 대해 더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사는 공간은 늘 존재하지만 나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다가 그 공간이 좁아지게 되면 결국 그것을 느끼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를 간절히 바라고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존재라는 것, 그래서 제한도 없고 측량할 수도 없는 넓은 하늘을 바라보게 되고 거기서 편안을 느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