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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 본 Nov 24. 2020

삶의 상호작용

김밥 집 가는 길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여주인공 데이지가 교통사고로 발레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그녀가 사고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만약에 발레 연습을 마치고 신발 끈이 끊어진 친구를 기다리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녀를 사고 낸 택시 기사가 손님을 내려주고 커피를 사지 않았다면,
만약에 배달 트럭이 그 택시를 막아서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 택시가 신호등에 걸려 서있는 동안 데이지가 친구랑 발레 연습하고 나오지 않았다면,
등등. 만약에 여기서 단 한 가지 만이라도 달랐다면,
데이지는 발레를 그만두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것이 '삶의 상호작용'이라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는 삶의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간다.
지난여름 어느 날 , 삶의 한 순간만 비켜 갔으면 좋았을 사건이 있었다.

만약, 한 가지 일만 달랐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10여 분 정도 되는 곳으로 김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날도 더운데 집에서 저녁식사 준비하며 땀 흘리는 것보다 그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했다.
반바지를 입으려고 보니 빨래가 설말랐는지 눅눅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청바지를 입어보았다. 두꺼운 청바지와 삼복 더워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청바지를 벗어던지고 아직 덜 마른 반바지를 입었다.
보송보송하지는 않더라도 그런대로 입을 만했다. 어차피 갔다 오면 땀나서 다시 빨아야 할 테니까.
집안의 후덥지근하고 눅눅한 공기에 비해 밖에 공기는 덥지만 상쾌하게 바람이 불어 좋았다.

고개를 젖히고 우러 본 가로수의 눈부신 신록과 저녁 햇빛의 오묘한 조화가 나도 모르게 힘차고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게 했다. 얼굴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분도 덩달아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약간 기분이 고조되어 달리고 있었다. 이 더운 날씨에 앞에 가고 있는 두 사람이 두 손을 꼭 마주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사귄 지 얼마 안 되는 연인 같았다.
코너길에서 나는 그들을 지나쳐 가려고 속도를 내어 달렸다.
그렇게 코너를 접어드는 순간....
아~ 미쳐 보지 못한 계단들이.....
이런 속도로 가면 분명히 저 계단에 넘어질 것 같았다.
순발력 있게 급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바닥이 미끄러워 순간 중심을 잃어버리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사람들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아주 작은 순간, 순간까지 기억한다고 한다.
쓰러지면서 무릎이 먼저 시멘트 바닥에 심하게 긁히고 동시에 미끄러지며 나의 모든 무게중심이 두 손바닥에 몰려서 안 넘어지려고 바닥을 세차게 짚었다.
얼굴까지 긁힐뻔했지만, 다행히 그동안 연습해 온 '차투랑가' 자세(두 팔과 두 다리 근육운동 요가 자세) 덕분에 팔 근육이 생겨서 더 큰 상처는 면 할 수 있었다.
다친 무릎과 두 손바닥의 통증 때문에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내 몸의 모든 신경세포들이 다친 부분으로 몰려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욱신욱신거리다가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내속에 감추어 있던 열기가 상처가 생기자 인화 물질을 만난 것처럼 훨훨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 아픈 와중에 더위에 달궈진 바닥에 앉아있으니 엉덩이가 따뜻해져서 좋다는 모순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웃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통통 부어오른 무릎의 통증은 용해되어 나는 쾌적한 웃음소리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거기서, 한참을 엉덩이를 뭉개고 앉아서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생각했다.
만약에 집에서 밥을 해 먹었더라면,
만약에 자전거를 안 타고 집 근처에 있는 김밥 집으로 갔다면,
만약에 덜 마른 반바지가 아니라 두껍다고 벗어 둔 청바지를 입었더라면,
만약에 코너 길 앞에 연인들이 나의 시야를 가리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들을 앞지르지 않고 천천히 자전거를 탔다면,
코너를 돌면 바로 계단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바닥이 미끄러운 것을 알았더라면,

무릎이 깨진 아픔과 두 손바닥이 아린 아픔을 겪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삶의 상호작용' 우연이든 고의든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한다.
어떤 모양이든 아픔이 우리에 찾아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기까지 크고 작은 시간이 필요하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상호작용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건의 주변에 벌어지는 일들을 함께 보며 여유롭고 유머스럽게 넘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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