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변. 화.
"역성은 성공이 보장되지 않아요. 대부분 실패하고 낙담하고 부서집니다.
그래도 동참하시겠습니까?"
그때도 말했지만 나는 이승윤 가수의 팬이다.
한 번도 콘서트에 가지 않은 광팬. 이래서 못 가고 저래서 못 가고 늘 시간이 안 됨을 핑계로 삼았다. 이번에야말로! 를 외치며 8월 말 드디어 티켓을 예매했다. 물론 내가 한 건 아니지만. 손이 느려 아이가 PC방에 가서 대신해줬다. 그리고 꼬박 한 달을 기다렸다.
매일 콘서트를 손꼽아 기다린 이유 즉 이승윤가수를 좋아하는 이유!
10년의 무명생활을 거치며 만들어 온 그만의 색깔과 철학이 있어서다. (어쩌면 그 색깔이 너무 강해 무명이 길었을 수도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고 살짝 어려운 듯 하지만 진부하지 않은 언어에 광적인 똘끼(?)가 더해져 내 마음을 움직인다. 게다가 무심해 보이지만 유머와 소신이 섞인 그의 인터뷰 내용들은 겸손함과 특유의 겉멋이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준다.
아이의 재수시절 난 이승윤가수의 노래를 듣고 인터뷰를 보며 많은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그건 내가 무언가를 끄적일 수 있는 힘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번 콘서트의 주제는 "역성"이다.
긴 가죽코트를 휘날리면서 무대 위로 튀어 오르며 부른 '영웅 수집가' 노래에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모습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 무리하게 찬양하는 모습을 꼬집는 가사가 인상적이어서 참 좋아한다. 몇 곡의 노래를 연이어 부른 뒤 이어진 그의 울림 있는 말들은 며칠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세상의 이치나 흐름이 소리친다고 바뀌지는 않겠지만 소리에 담을 이야기들을 마음대로 뒤. 바. 꿔. 힘껏 소리 내어 보잖다. 또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는 건 거짓말 같지만 음악을 듣는 사람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단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음악을 하는 마음가짐이다라는 말까지. 역시 이승윤이다!
1, 2집 노래도 좋았지만 이번에 발매된 3집의 선발매 8곡은 더 뜨겁고 감동적이다.
폭죽이 터지는 순간 빛을 내보자는 '폭죽타임'~
자신만의 예술을 꿈꾸면서도 내 노래가 매진되기를 바라는 역설적인 가사를 담은 '솔드아웃'~
1분이라는 전주를 거쳐 6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폭포를 뒤엎으면 분수가 된다는 가사로 관성을 거슬러 보자는 주제를 담은 '폭포'~
24K의 순도를 넘어서 그 이상의 사랑을 해보자는 '28K 러브' 노래가 이어진다. 사랑노래가 이렇게 담담하고 진정성 있게 들리다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중 내가 특히 더 좋아하는 노래는 '검을 현'이다. 살다 보면 체스판 위에서 움직일 수 있는 칸으로만 다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실 밖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세상이 만들어 놓은 판에서 한 번 벗어나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노래로 해방감을 많이 느꼈단다. 내 인생의 체스판을 한 번 벗어나 보자는 한 번 바꿔보자는 가사가 참 마음에 든다.
굳이! 이제 와서! (잘 될 지도 안 될 지도 모르는 일들을) 왜?
요즘 종종 듣는 질문이다. 어제도 친구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다 ㅎㅎ. 머리도 잘 안 돌고 체력도 별로 좋지 않으면서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한다.
일본어 강의를 30년 했다. 이제 다른 모습으로 체스판을 짜기 위해 눈을 돌린다. 나만의 색깔을 만들기 위해서. 뭐 색깔을 못 만들어도 상관없다. 하고 싶었던 일들이니 그냥 go 할 거다. 다시 맨땅의 헤딩 정신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틀에서 그리고 판에서 벗어나 조금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 새로운 시도가 주는 두려움이 크지만, (아직은) 기대감이 일 프로 더 많다. 이미 닦여진 길도 길이지만 만들어 가는 것도 길인 것 같다. 신작로가 아닌 겨우 한 사람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이어도 길은 길이니까. 가 보지 않은 길이라 더 기대되는 요즘이다.
"넵"
이건 그래도 동참하겠냐는 이승윤가수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 오늘의 단어는 길 みち(미치)입니다.
P.S. 제가 더 좋아하는 두 곡을 올립니다~
'검을 현'이란 노래인데 가사만큼이나 사운드가 아주 강렬합니다.
https://youtu.be/fDjM8E5ksMo?si=XiMiWN8XmrFfEVLM
순도 높은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고 진정성 있게 표현한 '28K러브' 라는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