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추의 변신 -
차곡차곡 일상
여름이 되면 오빠네 텃밭의 싱싱한 채소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공수된다. 올여름도 마찬가지였다. 난 땀 흘리며 애쓰는 오빠를 도와주기는커녕 그냥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한다. 심지어 내가 일이 있는 날엔 일요일 교회예배 후 오빠가 집에까지 갖다 줄 때도 있다.
아무튼
그 덕분에 우리 집 밥상에 자주 올라오는 채소들이 있다. 바로 호박, 가지, 오이, 고추다. 그중 남편의 최애반찬은 풋고추다. 무침도 조림도 아닌 본연의 모습 그대로인 기다란 그것을 씻어 옆에 고추장만 놔주면 된다.
고추반찬의 장점이라면 음~
일단 때꺼리를 준비하는 내가 편하고, 아삭한 느낌과 소리가 시원하고 경쾌하며 영양가도 많다는 것. 아 또 있다. 남편이 생야채를 우적우적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순한 소나 말이 여물 먹는 느낌이랄까. 나이 육십에 느껴지는 천진난만함이 은근 귀엽다.
어제도 그랬다. 밥을 다 먹고 식탁의 고추꼭지들을 정리하려는데~가만!
끼리끼리 모여 앉은 모습이 영락없이 공깃돌같았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공기놀이 시작이다. 살짝 흩어놓고(원랜 반칙이지만) 앞에 놓인 녀석을 집어 1단계에 돌입했다. 물기 탓인지 실력 탓인지 올라간 것도 바닥에 있는 것도 내 손안에 쥐어지는 건 없었다.
어릴 적 오빠, 언니랑 쭈그리고 앉아 놀았던 공기놀이가 생각났다. 마지막 단계인 꺾기까지 못 가는 나로선 오빠, 언니 손등에 짝 달라붙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공깃돌이 신기했고,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형제들의 노련한 손놀림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그리고 이런 오빠언니는 언제나 나의 큰 자랑거리였다.
규칙도 모양도 변한 것 없는 이 놀이에 바뀐 게 있다면 멤버가 달라졌다는 것. 언제부턴가 남편과 아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바뀐 구성원 사이에서도 난 늘 깍두기다. 옛날에도 그랬던 것처럼.
식탁 위에 놓인 고추를 보며 형제와 가족에 대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나도 나이 들어 가나보다. 먹고 남은 고추꼭지를 치우다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는 걸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