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은 이제 일 주 지났다 -
차곡차곡 일상
172, 우리 엄마와 아부지의 나이를 합친 숫자.
14, 현재 두 분이 살고 계시는 아파트 층수.
그런데 비상이 걸렸다.
엄마아부지는 6년 전 이곳에 오셨다. 연세도 드시고 살 던 곳이 재개발에 들어간다 하여 언니네 옆으로 이사 오신 것이다. 이 아파트는 딸아이가 7살 때까지 내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한 번 오면 부모님도 뵙고 언니도 만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추억이 있어 나에겐 따순 곳이지만 (아파트) 연식이 있다 보니 두 분에겐 마냥 따뜻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여기저기 손이 많이 간다. 그래도 "사람도 몸뚱이 오래 쓰면 고장 나기 마련인데 집이라고 뭐 다르겠냐."라고 말씀하시는 아부지의 긍정멘트에 늘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문제가 좀 다르다!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를 한단다. 기간은 한 달이고 어르신들은 잠시 다른 데로 이동하시거나 여의치 않으면 3층마다 계단에 의자를 놓을 테니 쉬엄쉬엄 가시라는 알림이 붙어 있다.
아부지는 매일 출근을 하셔야 하고 엄마는 허리통증과 골다공증이 심해 어르신용 유모차를 끌고 다니시는데 이를 어쩐다... 한 달 전부터 우리 삼 남매는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았다.
"엄마아부지 오빠네든 우리 집이든 가시죠. 오랜만에 같이 살아보게"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근데 엄마랑 그냥 여기 있을란다"
...
교체공사가 시작되고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결국 두 분의 고집을 우린 꺾지 못했다. 아부지는 14층을 오르내리며 계속 출근을 하시고 엄마는 집에 계시고. 어르신들은 집을 떠나 있는 게 편하지 않으신가 보다. 우린 엄마가 답답하실 것 같아 시간 될 때마다 가보기로 했다. 그날도 전화를 드렸다. 괜찮으시냐는 나의 질문에 아부지 왈
"이제 삼 주 밖에 안 남았다" 역시 우리 아부지다.
근로자의 날 남편과 같이 두릅을 사들고 갔다. 집에서 내가 점심준비를 하려 했는데 두 분이 밖에서 드시고 싶단다. 50이 넘은 막내딸 솜씨를 아직도 믿지 못하시는 눈치다. (내가 뭘 준비할까 봐) 두 분이 재빠르게 옷을 챙겨 입고 현관문을 나서셨다. 난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심정으로 불안불안했으나 이미 계단에 발을 디디셨네 그려. 굳건한 의지가 발걸음에 배어 있다. 마치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계단 난간을 꽉 잡고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내려가신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를 반복하며. 거의 다 내려왔을 때 '거봐 나(엄마)도 할 수 있지'라는 듯한 뽀글 머리 김여사의 당당한 뒷자태가 너무나 자랑스러워 사진을 찍었다. 도중에 엄마가 미안해하며 먼저 내려가라 하셨지만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봄바람을 같이 느낄 수 있어 마냥 행복했다. 엄마도 그랬겠지~
1층에 다다르자 아부지와 남편이 완주에 성공한 엄마에게 박수를 쳤다. 엄마는 쓴웃음(?)으로 화답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드디어 음식점에 도착했다. 엄마는 갈비탕으로 아부지는 돼지갈비와 소주로 긴장되어 있던 몸과 마음을 푸셨다. 엄마는 직원분에게 14층에서 걸어 내려온 이야기를 풀어놓으셨고 그분은 그걸 진심으로 들어주셨다.
엘리베이터 교체공사에 대한 야속함이 엄마의 영웅담과 아부지의 소주잔 안에서 조금씩 옅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