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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Jan 29. 2020

신종코로나와 체르노빌의 유사점

인간이 초래한 각기 다른 두 재난


사스의 기억
 

2002년 벌어진 사스 사태는 공식집계상 6개월간 총 8082명이 감염되고 648명의 중국인이 사망한 가공할 위력의 감염병으로 기억된다. 유래 없는 바이러스 질환의 유행은 시작도 미스터리 했지만  빠르게 확산하고 진압을 어렵게 한 외부 요인의 기여가 있었다는 점도 특이했다. 외부요인은 다름 아닌 중국 정부의 정보 은폐였다.  중국 정부는 2002년 11월 첫 번째 괴질로 농부가 사망한 이후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조치가 시작될 때까지 WHO에 보고하지 않은 것은 물론 공식적인 상황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일반 미디어에서 조차 집계상황이나 사태 심각성이 공개되지 못하도록 막았다.

정보가 부족한 국민들은 우왕좌왕했고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루머나 괴담은 오히려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사스에 용하다는 입소문 덕에  생약추출물(Ban lan Gen)은 불티나게 팔리는 촌극도 벌어졌다. 중앙정부는 루머에 선동되지 말라며 자유 미디어를 꽉 막았고 정확한 질병유행상태까지 함구하니 결과적으로 국민은 마치 눈을 가리고 좀비 바이러스와 싸우는 듯한  감염의 공포감에 휩싸여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그 와중에 군의관 장언영(蔣彥永, Jiang Yanyong)이 정부에 의해 은폐되는 사스 사태의 전말을 고발하면서 문제가 드러나게 되었다. 세계 보건기구 WHO는 지속적으로 중국 정부에 상태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지만 계속 답변을 듣지 못했고 수개월이 지나고 WHO가 정확한 바이러스를 명명하고(SARS-CoV)  상황 수습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감염자가 2000명 사망자가 500명을 넘긴 상황이었다.


어찌어찌 감염병은 소강되었고 이후로 무려 17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스는 서서히 잊히게 되었다.

우리는 커다란 재난 이후 사회안전망에 구멍을 찾으면 이를 메꾸고 재발되지 않게 허술한 시스템을 강화한다. 추가로 2000년대 후반부터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는 폭발적으로 진보해서 개인의 의견들이 자유롭게 모이는 놀이터가 되었고, 자연재해에서 상황보고 기능과 감염병의 유행을 추적하는 기능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중국은 분명 유사한 감염병에 더욱 빠르고 신속한 대응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SNS가 진화하는 동안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에 상응하는 속도로 콘텐츠를 통제하는 노하우를 얻었다.  그 결과는 유사한 사태에서 어떤 결과를 보여줄까.



과거의 재현


사스가 기억에서 잊혀질때 불현듯 우한사태가 벌어졌다.
우한시에 치명적 바이러스 폐렴 환자가 발생했음을 중국이 처음 발표한 것은 12월 8일이었다. 질병 확산 초기 중국 정부는 1월 10일 북경대 호흡기질환 전문 왕광파 교수가 우한폐렴은 효과적으로 차단되어 확산 우려가 없고 감염은 경증이라 치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CCTV로 방송하며 대중을 재차 안심시켰다. 그런데 이상하게 질병이 계속 확산되고 치명적인 케이스가 발생한다는 루머가 인터넷에는 산발적으로 왔다. 심지어 국민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했던 왕 교수 스스로가 우한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식까지 들리게 되었다.

우한 현장에서 마스크를 썼음에도 안구 점막을 통해 감염되었음을 시인한 왕광파 교수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상황에서도 중앙정부의 검열 기능은 빛을 발했다. 중앙당의 가이드에 벗어난 루머성 글들은 열심히 지워졌고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특히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글쓴이를 연행 조사하고 이를 본보기 삼아서 다른 이들이 감히 진실을 표현할 용기를 품지 못하게 하였다.  동시에 우한에서는 질병이 더 이상 빠져나가지 않도록 잘 관리했다는 일관된 정보만을 흘러 보내고 있었다.  

(*우한폐렴의 공식 표시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 2019-nCoV 이지만 상황에 따라 이해를 돕기 위해 우한폐렴, 중국폐렴이라고 표현한다. )


그러던 중 1월 20일이 되어서야 우한시는 질병이 우한 밖으로 퍼졌음을 공식 인정한다. 하지만 이 발표가 나기 이전 이미 홍콩, 베트남, 태국 그리고 일본에서 각각 자국의 첫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표된 상태였다. 이를 두고 중국인은 신종코로나가 우한 밖 중국이 아닌 외국으로 먼저 퍼진 애국적인 바이러스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물론 바이러스가 외국인만 골라 감염시킨 것은 아니다. 중국 정부가 우한 밖으로 바이러스가 퍼진사실을 철저하게 감추다가 외국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전파 상태를 공개한 것이다.


심지어 우한시는 신종 유행병의 심각성을 인정하기 이틀 전인 1월 18일에는 40000명 가족을 초청해 집에서 준비한 13986 접시의 음식을 나눠먹는 단체 뷔페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같은 날 구정을 맞이 페스티벌을 기획하면서 우한 시민들에게 20 만장의 무료티켓 배부를  홍보하기도 한다.

해당 웨이보 행사안내포스팅에 좋아요 15000개를 받은 서글픈 ㅎㅎㅎㅎ(哈哈哈哈) 답글

위기상황을 감추려고 애써 '괜찮다 괜찮아' 주문을 외우다가 정말 위기가 아니라고 스스로 믿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억지로 꾹꾹 틀어막았던 감염자 상황 실태가 20일분수령으로 터져 나왔고 감염자수와 사망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9일까지 집계상 중국의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은 사망자 합계는 132명이고 감염 확진자는 6000명을 넘어섰다.  설상가상 영국 가디언 지는 감염자를  십만 명 정도라고 까지 추산했다. 현재의 중국 정부의 발표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누구나 처음 맞는 위기상황인 신속하고 합리적인 대응을 기대하기 어렵다. 감염병의 대유행 상황에서 애써 위기를 부정해가며 지역가족 행사할 정도로 행정자들의 감염병 위험 인지 수준은 유아기 수준이었다. 이들이 경험이 없어서 또는 의도적인 미숙한 상황 대처를 보였더라도 처음부터 감염 집계가 투명하게 공개되었더라면 아니면 적어도 일반인의 SNS 정보가 검열 없이 공개되었다면 감염병이 이 정도 수준의 국가재난으로 악화되었을까? 모르긴 해도 위기상황을 반전시킬 몇 차례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을 것이고 모두 다 묵살되었을 것이다. 중앙당이 원치 않는 목소리는 철저하게 은폐되는 사회에서 미숙한 위기 대응까지 합쳐지니  국가재난 수준의 감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지금 후베이성은 인구의 이동이 모두 차단되고 급증하는 환자로 인해 의료시설이나 구호물자는 부족해지고 있다. 안심하라는 말만 믿었던 시민들은 악화일로의 현상황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분노를 표출할 SNS에서는 여전히 민감한 단어가 모두 삭제된다. 중국의 언론통제는 일반인의 상상을 벗어난다. 우리의 instagram에 해당하는 weibo는 정치적 사회적 민감한 단어가 포함되면 포스팅이 자동 삭제되는 것이 예사다.


감정표출구가 차단된다고 그 감정이 사그라지는 건 아니다. 다른 방향으로 출구를 찾게 된다. 직접적인 단어 선택은 검열되고 삭제되기 때문에 이를 피해 중국인들이 고안한 방법은 바로 간접적인 표현이다. 시진핑을 트럼프라고 바꿔 말하는 방식으로 돌려 깎는 것이다.  


우한과 체르노빌의 평행이론


은유적인 사회비판의 표출구가 영화 리뷰 사이트가 된 건 매우 의외적이라 할 수 있다.

더우반(Douban.com)은  여러 영화에 대한 후기들이 올라오는 중국의 유명 영화 리뷰 사이트이다. 많고 많은 콘텐츠 중  유독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 (HBO) 페이지에 우한 관련 덧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1986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그린 2019년 HBO의 5부작 미니시리즈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최악의 인재로 꼽히는데 당시 발전소 책임자는 원전붕괴와 핵누출을 감지했지만 고의로 사고를 축소하고 대피를 막아서 피해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우한폐렴과 체르노빌 원전은 인간이 개입해 사고를 재난으로 키웠다는 공통점을 가졌고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상황이 체르노빌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는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何其相似,何其悲哀 : 둘은 어찌 이리 비슷하면서 또한 슬픈가

더우반의 체르노빌 페이지에서 여론이 터져 나오고 논란이 되자 역시나 이 사이트는 로그인해야만 볼 수 있는 비공계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튀어나오면 두들기는 두더지 때려잡기식 언론 봉쇄로 들끓는 민심을 달래기는 쉽지 않다. 여전히 트위터에는 이 우한과 체르노빌을 비교하며 정부에 대한 직간접적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우한과 체르노빌의 평행이론

비난의 통로를 그저 꾹꾹 틀어막기만 하면 얼마 못가 큰 파열음으로 폭발할 수밖에 없다. 이를 중국 정부가 모를 리 없고 일부 분노의 화살을 우한의 지방정부로 꽂히도록 허용했다.  우한의 시장인 조우샨왕은 인터뷰에서 통계발표에서 검열이 있었음을 시인했고 피치 못할 일이라고 변명하면서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은 우한의 미숙한 초기 대응에 비난과 분노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종코로나의 불길 역시 멈출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15년 메르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현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를 향해 "초기 대응 실패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국민보건안전체계가 이렇게 허술한 건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적 있다. 그리고 추가로 당시 대통령을 향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감염병의 대유행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이들의 심리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쉽다.  당시 정부에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이들에게는 매우 통쾌한 한방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공수가 교체된 상황에선 이전에 승리의 필살기가 역으로 방어하기 어려운 공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정치리더는 보건문제에서 전문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현장에 직접 나가서 마스크 쓰고 악수해주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장점검을 하던 왕광파 교수는 마스크를 쓰고도 결막으로 감염이 되었다.) 현장에 나가 있으면 지지도는 올라갈지 몰라도 리더가 감염병에 걸릴 리스크를 지지도와 맞바꾸는 건 누구도 원치 않는다.  

분명한 건 감염병의 위기상황에서 리더의 역할은 "저 놈 잡아라" 식의 책임추궁이 아니라 해당 전문가를 모아서 책임자가 바뀌어도 위험이 빠져나가지 않는 확실한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2015년의 메르스 교훈을 잊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외국 여행력이 있는 중증 호흡기 질환자가 생길 때 병원을 전전하며 의료쇼핑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또한 불분명한 공포심이 퍼지게 감염자 정보를 함구하기보다는 감염자의 감염경로, 동선을 공개하고 현재 감염자 상황을 실시간 업데이트하며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공개가 밀폐보다 더 효율적인 방어전략임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엄청 잘하는지 건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4명 확진 이후 감염자가 급증하지는 않은 걸로 보아 중국보다는 조금 나은 거 아닌가 한다.

 

중국이 수정자본주의를 취하여 여행이 자유화되고 교역이 활성화되어 아직 공산 국가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리고 감염병의 위기상황에서 새삼스럽게 중국은 의사표시도 자유롭지 못한 공산국가이구나를 깨닫게 된다. TV에서 대놓고 대통령을 욕할 수도 물러나게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한 우리나라 포털은 확진자 3번은 95명을 만났다더라 하는 자극적인 정보를 지금도  빵빵 터트리고 있다. 이는 정치적 공격을 위한 이슈라기보다 현 상황을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환부 노출이라고 보아야 한다. 감염병은 감추면 감출수록 속으로 썩어 들어가는 습성이 있다. 부끄러워도 민낯을 드러내고 대처해야 더 큰 화근을 막을 수 있다.



중국은 검열이 되고 감시당하는 반쪽짜리지만 그래도 외형상으로는 SNS가 있다.

검열할 SNS 조차도 없는 한 나라가 떠오른다.


이럴 때 갑자기 우리는 언론의 자유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경각심이 드는건  너무 나가는건가. 

역사적으로 보아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는 분명 공짜가 아닐진대.  


SNS도 없는 나라의 인권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혹시 이 자유를 거저 얻은 선물로 여기는 건 아닐지.

 

Freedom is not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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