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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Mar 24. 2020

대코로나 정신승리

코로나가 바꿔버린 우리 삶

별일 없이 살던 삶

난 전쟁없는 시대에 태어났고  커가면서 혁명이니 내란이니 하는 사회적 혼돈도 따로 겪어 본적 없다. 이전 세대의 눈엔 복받은 세대일지 몰라도 복받은 자의 눈에는 삶은 그냥 단조로왔다.  물론 전쟁이 없고 기아가 없다고 세상이 평화로운 건 아니다. 인간의 재미난 점은 호환, 마마, 전쟁 같은 물리적 역경, 적과의 투쟁에서 해방되면 그 상태로 멈춰 평화를 즐기질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소련과의 냉전 종식이 평화의 시작일거 같았지만 곧이어 이슬람 극우세력과의 전쟁이 이따랐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듯했지만 보란 듯이 자국내 보수와 진보가 피터지게 싸워댄다. 누군가와 투쟁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이유일까? 내 눈엔 적들이 끝없이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싸우려고 적을 일부러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적을 만들어서라도 투쟁을 해야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전 이미지 from Wiki image

지구환경에 관심이 많고 변화에 예민해서 생존환경이 서서히 악화된다고 느꼈지만 다행히 이 땅에 전쟁과 기아같은  물리적 고난과 역경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조카가 살아갈 미래는 척박할거라 걱정되긴 했지만 적어도 내가 눈뜨고 있는 지금 누리는 것이 부족해질거라곤 상상 안했다. 사람들과의 어울림, 자유로이 들이마시는 공기 따위는 심지어 그 누리는 것에 포함하지도 않았다.

  

몰랐다. 당연한 것이 소중하다는건 없어봐야 안다는 걸

 


예상치 못한 감염병의 공격


2020년 연초부터 중국에서 감염병이 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바이러스 폐렴인데 병원에서 치료도 하기전에 죽었다더라, 수산물시장에서 옮았다더라로 시작한 이 우한의 폐렴은 삽시간에 우한시와 호북성을 초토화시켰다. 그리고 거의 한달 후 1월 20일에야 중국당국은 바이러스가 그 지역을 빠져나갔다고 공식 시인했다. 그때까지만해도 그저 해외 뉴스토픽일뿐이고 남의 나라 불구경같았지만 사실 바이러스는 1월 19일  이미 우리땅에 상륙해 있었다. [케이스연구 확진자 1번 ] 한국내 첫 환자는 1월 21일에 보고된 우한에서온 중국여성이었다. 이 후 띄엄띄엄 감염 확진자들이 뉴스에서 들리고 확진번호는 계속 올라갔지만 그 숫자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환자로 미어터지는 병원, 비명을 지르는 환자, 복도에 널부러진 시체의 영상에서  중국의 역병은 흉흉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에 비해 고요한 우리는 뭔가 대단히 잘하고 있고 바이러스를 꼼짝도 못하게 억누르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안일한 건 우리 만이었다.  아무리 중국이 바이러스를 쉬쉬해서 자연감염병을 인재로 키웠지만 순식간에 퍼지는 염과 의료마비를 초래하는 중증환자의 급증을 모두 언론의 탄압을 탓하기엔 정도가 심했다. 이에 코로나가 감당하지 못할 감염병이라는걸 직감한 나라들은 중국을 향해 일제히 문을 걸어 잠궜다.

우리나라는 안일하면서 생각도 너무 많았다. 면전에 대고 문을 잠그면 상대가 얼마나 기분나빠할까. 기분나빠서 보복당하면 어쩌지? 이러면 아님 저러면 어쩌지?  백만가지 생각하다 결국은 우한만 막기로 했다. 우한지역인들은 이미 우한을 다 빠져나가고 사실 우한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사람도 없지만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뭐든 막았다고 하면 뭔가를 한거 같은 느낌을 준다.


때까지 우리에게 호흡기감염이라 함은 열, 콧물, 기침이 생기고 그 다음이 바이러스 전파였다. 그래서 이 싸움에서 예상되는 상대는 열 콧물 기침을 보이는 자 혹은 병원에서 바이러스 검사로 확진된 사람이라 여겼다. 애초에 피아식별에 오류가 있었음을 몰랐다.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진 비밀무기는 다수의 건강한 감염자다.  아무증상이 없는 이들이 우리 아군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퍼나르는 적군임을 알지 못했다. 드문드문 감염자가 발표될때도 적은 아직 멀리 있다고 자신했고 우한에 비해 우리는 잘 방어한다고  자축했다. 뭐 한것도 없이 칭찬받은 느낌이지만 굳이 부인하지도 않았다.  


한국전이 발발한 6월 25일은 아무도 전쟁을 의심하지 않는 평화로운 일요일이었던 것 처럼 2월 20일 즐거운 연회가 있던 날 첫 코로나감염증 사망자가 나왔다.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2)는 '니들이 나에대해 알긴아냐'고 비웃듯이 포문을 열고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영화 트로이 목마

엄밀히는 이미 바이러스는 다 퍼져 있었다. 병원에서 확진판정을 받지 않고 증상도 없는 건강한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버스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바이러스를 퍼나르고 있었다.  바이러스는 특정공간에 그들의 밀도가 높아질때까지 그리고 그 공간 안에 약한 숙주들이 들어올때 까지 존재감을 숨긴채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피아식별도 제대로 못한 인간이 긴장을 풀었을때 트로이 목마를 타고 적진에 깊이 들어온 코로나는 일시에 건강약자들에게 집중공격을 시작했다. 한꺼번에 증상자를 쏟아져나오고 중증, 치명 환자들이 예고없이 밀어 닥치자 한정된 의료자원은 금세 고갈되기 시작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처럼 코로나 감염병은 한반도 정중앙에 버섯구름을 피우며 도시를 전율시켰다. 위태롭게 방역의 외줄타기를 하던 우리사회는 그 한방으로 한번에 뒤집히고 말았다.

꽤나 선전한다고 믿었던 대중들은 당황했고 코로나도 그저 감기라 하던 당당함을 잃었다.  열만나도 기침만해도 코로나 같아 너도 나도 진료실로 몰려들었다. 바이러스 증폭지가 되었던 어느 밀집 예배실에서집단감염은 결국 도시를 집어 삼키더니 근접지역까지 번져갔다. 한번에 중증환자들이 밀어 닥치자 지역 의료센터는 속수 무책으로  무릎을 꿇었다. 암이나 유전병처럼 치료가 어려운 난치병이 아니라 그저 별거아닌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였다. 심지어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도 적시에 산소와 기계호흡기를 써서 환자가 버티게 해준다면 회생의 찬스가 높은 병이다. 하지만 이미 치료여력이 고갈난 지역 병원에서 환자를 소화하지 못해 타병원으로 이송하다가 구급차에서 사망하는 경우도 생겼다.


하루에 100명씩 200명씩 신규 감염자가 증가하더니 급기야 909명을 찍었다.(2월29일) 코딱지 만한 우리나라는 세계지도에서 진한 빨간 색으로  존재감이 커지더니 어느새 너도 나도 오지 말라며 국경을 걸어 잠구는 기피대상국가가 되어 있었다. 어려울때 친구를 꼭 껴안아주었는데 정작 내가 어려움에 처하자 그 친구마져 문을 걸어 잠그고 대못을 박았다. 너희는 어떻게 이럴수 있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유치해 보여 잠자코 있었다.

우린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너도 이만큼 해줘바'라고 우겨댈만큼 뻔뻔하고 천하지 않으니깐.  고생한 김에 좀더 하지 뭐 하는 무슨 고상한 희생정신 같은 것이 우리 DNA에 있나 보다.




코로나가 바꿔버린 세상


핸드폰이 쉴새없이 요란하게 울려댄다. 친구 메시지가 아닌 빨강색 안전 안내 문자다. 우리 동내 확진자의 동선 뿐아니라 이젠 남의 동네 확진자가 우리 구로 침범한 동선안내까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데 어떨땐 심사가 뒤틀린다. 이 경고의 폭격은 왜 동의없이 내 일상에 예고없이 헤집고  들어오는가.


그렇다. 우리나라가 이태리보다 코로나로 덜 죽은건 이 미친 핸드폰 알람 덕 일 수 있다. 이 험한 시기에  정부가  원치 않아도 시도 때도 없이 정보를 뿌려주면  고마워해야지 그게 욕할문제냐 하면 할말은 없다. 중국은 한술더떠  드론까지 띄워  개개인의 일탈을 감시하고 있다.[드론검열] 거기다 국가의 보호를 위해 우한이라는 지역만 지도에서 파 버린것처럼 손절해 버리지 않았는가. 중국이 질병초기에 안일하게 대응해서 사태를 키웠으나 이내 공산주의 특유의 전체주의 관리감독으로 일사 분란하게 개인의 자율성을 억제하고 신규감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공익과 개인의 자유를 양손에 쥐고 즐길 수는 없겠지만 어디까지가 허용가능한 인권의 침해인지는 결정하는건 쉽지 않다.


드론 경고 "할머니 마스크 없이 나다니면 안됩니다."

드론을 통해 할머니에게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지 말라고 훈계하며 집에 들어가라고 명령하는 모습을 보면 조지 오웰의 소설1984이 연상된다.  소설에서 개인의 모든 일상을 Big brother 라는 독재자의 감시하에 둔다.  

그런데 섬뜩하게도 이 드론 감시체제가 효과적 감염병 억제의 바람직한 예시가 되어 버렸다.  6천만명의 자유 이탈리아에서  13억 중국의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를 능가했다. 22일 집계상 누적 사망자 이탈리아 5,476명, 중국 3,261명이다.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체계가 때로는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우리도 드론까지 쓰면 지금보다 더 효과적으로 바이러스를 억제할수 있을까하는 어설픈 호기심도 들지만 드론이라는 판도라 상자가 열리면 민간인 감시라는 인권침해가 따라나올게 뻔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뒤섞인다.  뭐 드론없이도 감염자, 접촉자의  행동반경 세부동선이 모조리 공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인권 보호는 공익에 밀린지 한참 오래된 상태다.

 


놀라운 정신 승리


신규환자 수는100명 언저리까지 떨어졌지만 감질나게 150, 60 슬쩍슬쩍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사이 여러번 우리 방역의 승리를 치하하는 뉴스가 들렸왔다. 더 나쁜 나라와 비교해서 그나마 코로나를 붙잡은게 어디냐며 우리식 방역의 승리라고 한다.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게 뭐!


 우리가 정말 잘 싸운건가? 승리의 기분을 낼 상태인가.  방역의 수장은 초기 방역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마치 문익점이 목화씨 들여오듯 중국에 다녀온 우리국민이 바이러스를 가져왔다고 해명했다. 그런 위악은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이젠 중국인들이 코로나는 한국 신천지에서 들어왔을지 모른다고 주장하는 음모론의 먹이가 되었다.

이미 시간은 흘렀고 과거의 상처를 되새김질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초기 아쉬움을 뒤로하고 잊는다고 해도 우리가 승리를 기뻐할만큼 온전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위로가 될진 모르겠지만 유럽과 미국의 사태를 보면 아무리 유난을 떨어도 바이러스는 결국 전세계적으로 퍼지게 되어 있었다. 다만 어짜피 맞을 이긴 한데 특정 교회에서의 폭발적 전파(overshoot) 덕에 짧은 시간에 죽을 만큼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것.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 미국처럼 우리보다 더 힘들게 코로나와 싸우는 나라들이 많긴하다. 하지만 판데믹으로 바이러스를 막을수 없는 상황에서도 적절한 초기 대응으로 전파속도를 낮춰 피해를 최소화한 일본, 싱가포르 같은 나라도 분명 있다.  

편하게 올수 있는 길을 이고 지고 시달리며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끝의 시작


코로나의 싸움은 얼마나 오래갈것인가.

바이러스가 종식되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되는것

여름이 되어 바이러스가 자연 약화되는것

모든 국민이 코로나에 걸리고 집단면역(Herd immunity)을 획득하는것


그런데 백신은 한 일년은 기다려야한다하고 코로나가 계절적 약화가 생길지는 불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온 국민이 집단면역을 획득을 위한 적극감염도 폭발적 전파없이 천천히 완만하게 일어나야하는데 그 속도를 조절하는건 불가능하다.


고로 단기간내에 우리는 이 싸움을 끝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지금 일별 신규환자가 100명이하라고 우리가 대코로나전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인활동 억제를 통해 사력을  다해 코로나확산을 억누루고 있을 뿐이다. 초반에 2주를 기약했던 사회적 고립은 3월 22일 다시 연장되어 4월 5일 까지 더 철저하게 하자며 격려 받았다. 말이 권유지 살기 위해서는 따르지 않을 수도 없으니 명령에 가깝다.   


이제 마스크없이  민낯으로 다니면 온통 나만 처다보는것 같은 피해망상이 생겼고  일주 내내 일회용 마스크에 싸매고 살다보니 애기들 엉덩이 기저귀발진처럼 얼굴엔 마스크 발진이 일어나려 한다. 바이러스 신규 감염자수가 0명이 된다고 당장 거리로 나가 사람들과 부대끼며 활보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한동안 아니 상당기간동안 마스크는 제2의 얼굴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코로나와 같이 사는 삶에 익숙해질때이다. 지금 우리는 외출도 못하고 피씨방도 못가고 학교도 못가고 회사에서 동료들과 손벽을 치며 깔깔될 수 없다. 친한 친구와 영화를 볼수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호프집에서 편하게 술을 마실수도 없다.  우리는 예전처럼 반갑다고 친구와 고개를 맞대고 반가워할수도 찌게에 숟가락을 담궈가며 밥을 나눠먹던건 오래전 추억이 되어버렸다.  


아장아장 걸어가는 꼬맹이들은 모르는 친구들과 코뭍은 얼굴을 부비며 뒹굴고 놀수 없다. 조카는 이제 어린이집에도 못가고 하루종일 엄마와 집안에서 견디며 안네 프랑크 일기 실사판을 쓰고 있다.

 

서로 다른 인간의 숨결에 노출되는 것도 피해야하는 그런 디스토피아의 세상

그게 코로나에 승리한 우리의 서글픈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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