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H Aug 01. 2020

유전자가 문제냐 내가 문제냐

운명과 선택

당뇨는 운명이야!


환자를 보는 친구와 최근 병원 이야기, 사는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가 병원식으로 화제가 넘어갔다. 친구 입맛엔 국의 간이 쎄다고 느꼈는데 입원한 당뇨환자가 자기 입맛에 딱 맞다며 싹 다 비웠다는 것이다. 바로 그 환자는 운동도 참 열심히 해서 체중을 많이 뺐다는 스토리를 들려주며 당뇨가 생긴게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당뇨가 왔으니 인생은 불공평하고 결국 당뇨에 걸리는건 개인이 조절하기 어려운 영역인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냥 수다떠는데 예의상 '응 그럴지도' 하고 넘어 가면 될일을 친구 말이 떨어지자 마자 난 그렇게 먹으니 당뇨가 온거 같은데? 하고 말해 버렸다.


친구가 한 말은 누굴 공격하려는 의도도 아니고 대부분이 공감할 만한 일반적인 의견이었는데 별거 아닌 이 대목에서 내가 너무 강하게 선언하니 분위기에 서리가 내렸다.  


분위기를 다시 띄우려고 친구는 당뇨가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잖아, 타입도 여러가지고 개인의 유전 성향도 모두 다른데.....라며 나의 단정적인 표현을 부드럽게 나무랐다.


물론 친구가 말하려는 바를 이해한다. 당뇨는 병태생리, 기전, 위험인자, 환경인자 온갖 무수한 변수에 의해서 발현 혹은 발병되는데 밑도 끝도 없이 먹는 걸로 당뇨가 결정된다하면 단순 무식한 주장같아 듣기 불편했을 것이다. 나 역시 당뇨의 학술적인 면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친구의 환자에게 당뇨가 생기게 된데는 여러 요소가 관여했을 것이고 짭짤한 국물을 싹 비우는 식사습관은 그 수많은 변수 중 하나다. (물론 당뇨와 상관 없을 수도 있다.)


나는 먹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걸 강조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나처럼 먹으면 모델 같은 몸은 모르겠지만 당뇨는 절대 안걸린다"는 FLEX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의도치 않게 건강자랑이 되어버렸는데 당뇨에 무적이라고 단언할정도로 내가 건강에 자부심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난 단호박

다른건 몰라도 먹는 것과 건강유지에 대한 신념은 매우 확고해서 내가 입에 밀어 넣는 것들이 내 건강과 체형을 결정한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확신을 가지기까지 무수히 많은 과학적 증거들과 여러 실제 사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직접 체험하여 얻는 산지식이다.  갑자기 떨어진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다.


다시 당뇨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소아 당뇨, 유전적인 당뇨, 후천적 췌장이상 등 드문 원인의 당뇨는 제외하고 주변에 흔히 보는 성인형 당뇨(2형당뇨)는 가장 밀접하게 식이와 연관된 질환이다. 물론 지금 그 밀접한 관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증거들을 나열할건 아니다.  친구와 대화 중에 내가 예민하게 반응한건 당뇨가 먹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는 가깝고 쉬운 원칙은 무시하고 자꾸 뭔가 멀리 어려워 보이는 유전자(다른말로 운명 혹은 신의 뜻)로 병을 엮으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운이 나빠서 당뇨에 걸렸다?

일세대 먹방 유튜버 밴쯔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먹는다. 예전 대학다니며 용돈벌려고 시작한 아프리카 BJ시절 라면을 한번에 10개씩 끓여 먹었고 삼백만 유튜버가 된 지금 좀더 고급걸로 바뀌었지만 기본 5인분 이상먹는건 똑같다. 물론 카메라 앞에서만 많이 먹고 나머지 시간은 웬종일 운동한다고 솔직하게 밝혔지만 일일일식하고 미친듯이 운동한다고 모두가 밴쯔처럼 조각같은 몸을 가질 수는 없다. 몸에 나쁘다고 그렇게 악명높은 정크푸드를 입에 쓸어 넣는데도 아픈기색은 커녕 오히려 엄격히 식사를 관리하는 사람보다도 눈에 보이는 건강(눈바디)은 더 좋아 보일때 노력은 살짝 거들 뿐 결국 타고 난게 다 아니냐는 한탄이 나올 수도 있다.


하늘을 찌르는 내 건강부심은 매일매일 먹는 음식에 정성을 들인 결과다. 아무 노력없이 본능대로 먹는데 (물론 엄청나게 운동하지만) 좋은 몸을 유지하게 하는 밴쯔가 곱게 보일리 없다. 그의 비결이 유전자 덕인거 같아 나도 부럽다. 남들 보다 좋은 유전자를 가진덕에 덜 노력해도 건강하다면 먹고싶은대로 먹는것 자체가 잘못된건 아니다. 밴쯔가 최근 물의를 일으킨 건 그런 타고난 면과 추가로 더 노력한 면은 쏙 빼고 그 공로를 자신이 파는 식품보조제에 밀어 준것 때문이고 그의 잘난 유전자는 죄가없다.  


친구의 환자와 밴쯔는 아주 다른 상황 같지만 많은 이들이 건강을 바라보는 공통된 시점을 대변하고 있다.

몸을 막 굴려도 건강한건 좋은 유전자 덕분이고 비슷한 상황에서 병에 걸리는건 유전자 잘못만난 탓이라는 것이다. 특출한 유전자가 살안찌게 해주고 혈당을 낮춰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살이 찌고 혈당과 혈압이 오르는 것이  모두 유전자가 책임져야할 몫일까?

 

병에 걸리지 않은건 잘난 유전자 덕분
병에 걸린건 못난 유전자 탓


운동 열심히 하고도 당뇨가 걸린 그 억울한 분의 얘기로 돌아가자. 난 정확히 그분이 어떤식단을 했는지 알지 못하므로 상상력을 좀 보태보겠다. 친구는 나처럼 자연식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그가 짜다고 하면 정말 간이 쎈거다. 그런 국을 맛있게 다 비운것은 평소 음식을 짜게 먹는 다는 뜻이다. 소금이 무조건 건강의 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짤수록 가공도가 높고 보관기간이 길며 에너지 레벨이 높은 음식이 많다. 신선한 과일 야채 보다는 육류, 가공식의 비중이 쏠려 있을 것이다.  식이와 운동이 8:2의 비율로 건강에 기여한다고 보는데 이 관점으로 그 환자를 해석하면 아무리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점수를 올려도 먹는것이 그것 이상으로 까먹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열심히 운동해도 당뇨가 왔다면 몸이 지금 먹는 음식을 견디지 못하니 좀 바꾸라는신호로 보이지 운동함에도 당뇨가 찾아온 운 없는 몸은 아닌것 같다. 건강한 음식으로 바꾸고 나서도 변화가 없다면 그때 다른 원인을 찾거나 유전자 탓을 해도 늦지는 않은데도 대부분은 제일 먼저 특혜를 받지 않은 유전자를 먼저 원망한다.

  

다른 예시를 들어 보겠다.

초등학교에서 친구들을 못살게 구는 아이가 있다고 치자. 그럼에도 선생님에게 혼이 나기는 커녕 칭찬은 받았다면 그 아이는 억수로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아이는 놀다가 화가나서 친구를 확 밀었는데 하필 그때 선생님에게 딱걸려서 혼이 났다면 그게 '너 참 운이 나쁘구나' 하며 아쉬워할 일인가. 친구를 괴롭히는 나쁜짓을 하면 안되는 거라는 교훈을 얻어야지 담엔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게 괴롭혀야지 하는 맘을 먹을 필요가 없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유전자의 효과는 내 몸에 이로울 때나 자랑하는 용도지 병에 걸렸을때  손가락질 할 대상은 아니다. 엄마 몸에서 10달을 유산없이 견디고 유전질환이 없이 태어나서 성인까지 성장했다면 그 자체로 그 유전자는 할 일을 다했다. 아주 특출난 기능이 없어도 기능이 고장난 유전자는 아니다. 인구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살며 몸에 문제가 생겼다면 가장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할 곳은 몸에 연료를 주고 이끌었던 내 자신이다. 성인의 몸은 평소 무얼 먹고 어떻게 관리했지를 보여주는 쇼케이스이다.


 


쓸데없는 아쉬움은 시간낭비 

나 역시 혀 끝에 기쁨을 주는 여러 가공식품을 어마어마하게 먹어도 살도 안찌거나 병도 없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가끔 난 왜 저런 유전자가 없을까 안타까워 할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표준편차에서 한참 벗어나는 상위 유전자를 갈망하면서 인생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인류의 대부분은 에너지 밀도가 높은 음식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으면 병드는 일반적인 평범한 유전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가진 보통의 유전자가 지구상 대부분 인류가 가지고 있는 보편타당한 우성 유전자다.

난 왜 전지현, 김수현 같은 얼굴, 몸이 아닐까 고민하는 건 누가봐도 바보같은 일이다. 같은 논리로 당뇨나 비만이 생기지 않는 특출한 유전자를 못가져 안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생각은 아니다.  맛있으면 0칼로리인 음식을 즐기는데 계속 혈당이오르거나 체중이 증가한다면 그건 내 보편타당한 유전자가 해결하지 못하는 음식일 가능성이 크고 어떤 음식이 몸과 마음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건강을 유지하는지 찾아나가는게 최소한의 노력이다.


요즘 미디어에서 보이는 다이어트, 명품 몸매에 대한 컨텐츠를 보면 자꾸 내가 가진 보편적인 유전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보다는 부러운 존재들을 부각시키고 그들의 특출난 상황을 모두에게 들이민다. 그리고 따라해도 안되면 내가 재수없고 운이 나쁘고 유전자가  불량해서 그런것만 같다.


푸드사이언스가 발달되어 내 입을 겨냥하는 음식이 넘처나게되면서 내 몸에 건강한 열량과 영양을 공급하는 음식을 맛으로 감별하는 것은 불가능해 졌고 입에 맞는 음식만 추구하다 범람하게 된 것이 현대인의 만성질환이다. 그러면서 대다수의 인간이 가진 보편타당한 유전자가 기능을 못하는 모자란 유전자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자꾸 남탓을 하고 싶어 한다.  살이 찌고 혈당이 올라간 것이 부모탓 조상탓 으로 올라가 결국 유전자탓 운명탓이 되었다. 유전자와 운명은 내가 바꿀수 없는 영역이지만 음식의 선택은 오로지 나만이 하는 영역이다.  상황이 바뀌고자 한다면 현상황의 주체가 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 탓이요는 자포자기가 아니라 상황을 변화시키는 시작이다.

작가의 이전글 대코로나 정신승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