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H Apr 05. 2021

나도 채식할 수 있었는데...

채식을 가로막는 안타까운 허들

채식인이며 심지어 비건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뭔가 자신의 식단과 내 식단을 걸고 배틀을 하고 싶어 한다. 굳이 배틀을 피하지는 않지만 짧은 시간내에 채식이 건강에 좋다고 설득은 커녕 채식만하면 병약해진다는 강한 두려움을 깨는것만도 벅차다. 채식만 해도 사람이 죽지 않는다로 시작해서 매우 건강해지는 부작용이 올 수도 있다는 데까지 가려면 옆에서 삼박사일을 쉬지 않고 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랑도 30분이상 대화하기 어려운 현대사회에서 이건 불가능한 미션이다.

마음이 열려있지 않으면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굳이 듣기 싫은 이야기를 억지로 붙잡고 할 필요가 없게 채식에 대한 흥미를 자연스럽게 유발하는 영상물들이 많이 늘었다.  대표적으로 What the Health(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Forks over Knives, Cowspiracy 같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들은 채식하면 시금치나물만 떠올리는 일반인들에게 채식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해준다. 


이웃집 찰스같은 현실 채식인(나)을 매일 보는것 보다 넷플릭스의 영상을 한시간 보는게 채식의 이미지 변화에 더 큰 기여를 한다. 심지어 몇년을 옆에서 채식을 하는데 눈한번 깜짝 안하던 잡식(omnivore) 친형제도 노랑머리 외국인이 야채과일 스무디 먹고 건강을 되찾는 다큐멘터리 하나 보더니 채식이 참 "어메이징하구나" 하며 눈을 번쩍뜬다. 또 한번 나의 미천한 영향력을 실감한다. 



넷플릭스의 힘

회사에서 다시한번 넷플릭스의 위대한 업적을 목도하게 되었는데 얼굴만 아는 회사동료가 "게임체인저 보셨어요?"라며 캔틴에서 생각없이 밥먹는 나에게 급작스런 말을 붙였다. 


나는 이 회사에서 유일무이 비건인간인지라 사무실의 일상 대화에 공통화제를 찾기어렵다. 

예를 들어 연인과 고급레스토랑에서 입에서 살살녹는 스테이크를 먹었다는 주제로 가벼운 담화하려해도  "정말 맛있었겠어요, 오 부럽다"같이 맘에 없는 추임새를 넣어주지 않으면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물론 내가 엄청난 비건 베이커리를 발견한 경험을 격하게 동감하며 들어줄 상대도 없다. 둘 중 하나는 대화를 즐기는 척 해야한다. 이렇게 공감대가 별로 없는 내게 거리낌없이 먼저 대화 거리를 던진걸 보니 주제가 내쪽인 것이 분명하다. 

 

게임체인저 공식 트레일러


예감은 역시나 맞았다.  게임체인저는 채식만으로도 강한 근력과 스피드를 내는 운동에 손해를 보지 않으며 심지어 더 이롭다고  말하는 프로 운동선수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이 게임체인저를 본 그는 선입견과 달리 완전채식을 하는데도 죽지않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능가하는 근육, 힘, 스피드를 낼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되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신선한 감동을 '그쪽 세계사람'인 나와 나누고 싶었던 것인데 아쉽게도 나는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바로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어떤내용인지 감은 왔지만 사실 매일 식물성 식단을 하지만 별일없이(병없고 건강하게) 사는 나로서는 그런 영상에 그다지 신선한 감동을 받지 않는다.  반면 채식이 저열량 다이어트 식이고 단백질 결핍유발 식단이라 여겼다면 지축이 흔들리는 상황일 수 있다. 


감동에 휩싸인 그가 채식을 다시보게 되어다는 간증 마치더니 "나도 거기에 나오는 것처럼 맛있는 콩요리만 있으면 채식을 잘할 수 있는데" 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 말속엔 내가 채식을 못하는 건 주위에 채식이 맛없는 샐러드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원망이 감춰져 있다.

그러면서 맛있는 채식요리를 알려주는 채식 공식 싸이트를 물어보았다. 이런 특수식단법은 채식단체가 인정하는 공인요리법사이트가 있는게 당연하고 내부자들만 공유하는 맛있는 콩요리법이 분명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듯 했다.  


영상에서 먹음직 스럽게 보았던 콩요리를 구할 수 없어 채식인이 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그에게 난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했다.  수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휘젓는 사이 그는 점심 맛있게 먹으라며 일방적인 대화를 종료하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렇다. 애초에 그는 나에게 무슨 답을 원한게 아니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채식은 안되"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상대가 바라지도 않는) 긍정의 변화를 유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분주히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채식이 그리 어려운게 아니라는걸 저절로 깨닫게 될까. 

채식에 대한 눈은 떴지만 감히 시도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적인 방해물이 무엇인지를 내가 구구절절 설명해도 와닿지 않을 테니 그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는 동일한 상황에 던져 주는 게 어떨까? 


상황이란건 바로  내가 다시 고기를 먹기로 마음먹고 그에게 상의한다는 설정이다.

내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넷플릭스에서 고기영화를 봤는데 고기만 먹는 운동선수들이  엄청나게 근육질 몸에 엄청 운동잘하더라구요. 고기를 먹어야 건강해진다는거 영화보고 처음알았어요.

그는 당황하며  당연한걸 어떻게 지금 알았지?! 기초적인 영양지식이 없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차마 말하지 못할것이다. 

한번 해보고 싶은데 고기요리법을 알려주는 공식 육식사이트가 있나요?

마음속으로 이미 이렇게 소리칠것이다. 그런 사이트가 어디있어! 그냥 후라이팬에 소금쳐서 굽기워먹어도 되는데 뭐 얼마나 어마어마한 요리를 하려고

난 누가 고기요리를 잘해준다면 평생 고기만 먹을 텐데 너무 아쉬워요..

마음을 숨길수 없는 그의 눈빛은 이미 이렇게 말하고 있다. 허허 그걸 말이라구, 집에 요리잘하는 부인만 있으면 누구나 매일 집밥 먹을수 있지! 그건 모두의 로망이잖아!


가상의 상황에서 상상해본 그의 반응은 사실 내가 그와의 대화에서 느낀점이다.




채식을 가로막는 벽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채식이 얼마나 우월한지 모른다고 비아냥거리고 싶은 것도 아니고 모두가 완전채식을 해야한다는 인생 미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채식에 대한 오해를 풀었음에도 직접 시도해보지 않고 불가능한 이유를 먼저대는것이 자기 합리화 패턴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채식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지만 감히 시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대표적인 두가지 장벽은 바로아닌 요리사와 요리법 이 두가지이다. 


해주는 사람이 없어 못먹는다

내가 식단에 대해 상담해줄때 채식이냐 육식이냐 문제를 떠나 가장 안타까워하는 점은 음식만들기를 천한 일이라 여기는 것이다. 하루에 소비할 에너지를 공급하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기분까지 책임지는  것이 바로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고 그 음식을 만드는 일은 당연히 존중받아야한다. 어떤 재료가 들어가고 어떤 상태인지를 알기위한 최고의 방식은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이 최선이고 음식을 해먹을줄안다면 그건 당당하게 드러낼 능력이다. 

어린이 시절이야 내가 가장 믿는 엄마가 먹을걸 차려주는게 당연하다 쳐도 다 자란 성인이 끝까지 엄마(등골 뽑아먹는) 밥에 백퍼 의존하는 것은 큰 자랑이 아닐것 같은데 그게 자랑인 사람이 생각외로 많다.  비슷하게 하늘이 내린 부인 덕에 무한 집밥을 먹는 행운아도 있다. 경제와 가사를 부부간 상호합의하에 분리하여 식사준비를 한쪽이  전담할 수 도있다. 하지만 가사전담자가 식사준비를 해줄수 없는 돌발상황이 생길때 제 손으로 차려먹지 못해 무조건 시켜먹거나 곰국, 카레로 연명하는 요린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평생 자기 먹는 밥을 만들줄 몰라도 되는 사람이 있긴 있다. 국왕, 대통령, 독립운동가 혹은 기업회장 ? 그 정도 된다면 밥만드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대단한 일을 하시기 때문에 평생 전용요리사를 두는게 유별난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일반인들 대부분은 국왕도 대통령도 아니고 독립운동을 하지도 않는다. 

대단한 일이 하지 않아도 업무가 너무 바쁘고 요리할새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바쁜사람은 어쩔수 없이 끼니를 사 먹어야 한다는걸 인정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끼 아님 일주일에 한끼정도도 시간이 안될까? 제일 간단한 밥짓기는 삼십분도 안걸리는데 말이다. (간장, 참기름, 흰밥 이렇게 먹어도 참한 채식한끼다.) 


 식사를 직접 준비하는건 인간의 기본 스킬이다. 채식을 하고 싶은데 누가 안해 줘서 못먹는다는 것은 적절한 변명이 아니다.  정상적인 성인의 기본자질을 익히지 않았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요리 레시피를 몰라서 못먹는다. 

내밥은 내가 해먹을 줄 아는 사람중에서도 채식은 엄두가 안난다는 사람이 있다. 그럴때 난 백선생을 떠올린다.  우리나라 요린이들을 정상적인 성인으로 키워준 은인이 바로 집밥 백선생이다.  백선생과 나는 지향하는 식단의 결이 다르지만 그가 대단한 이유는 바로 요리를 어려움에서 친숙한 대상으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핵심 치트기인 설탕, 기름(돼지기름), 맛가루(MSG, 새우가루, 멸치)를 이용해 흔한 식재료에서 사먹는 음식 맛이 나게하여 요리가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우쳐주었다. 요리가 처음인 많은 사람들은 백파더의 요리수준에 만족할 것이고 아니면 스스로 더 연구해서 맛있게 보완하거나 아니면 그이상의 음식은 밖에 나가 사먹는 선택을  할것이다. 


채식도 마찬가지다.  비록 채식계의 백파더가 없는것이 아쉽지만 백파더의 치트키는 채식에서도 쓰일 수 있다. (재료만 바꾸면 된다. 식물성기름, 설탕, MSG) 게다가 채식은 절반정도가 요리 없이 먹는 다는 점에서 이미 절반은 거저 먹은거다.


입분자 레벨에서 가장 먼저 권하는 것은 아무 조리 없이 생야채과일을 하루 한접시 먹기부터 하는 것이다. 밥으로 먹거나 간식으로 먹거나 갈아서 스무디를 만들던 그냥 깍뚝썰어 먹던 상관없다. 한번에 여러 야채과일을 섞어 먹을수도 있고 오늘은 오이하나 내일은 사과하나 이렇게 매일 혹은 일주일 단위로 바꿔가며 먹을 수 있다. 그냥 먹기 심심하다면 오리엔탈 드레싱(간장, 식초, 설탕, 마늘) 혹은 웨스턴드레싱(올리브오일, 발사믹식초)을 뿌려먹으면 된다. 물론 우선은 마트에서 시판제품 사먹고 여유가 되면 집에서 만드는 것도 쉽다. 


중급자 레벨에서는 곡물과 콩류를 익혀서  만드는 진짜 요리를 시도해 볼수 있다.  대표적인 익힌 곡물/콩요리라고 하면 밥짓기라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쉬운요리인가. 흰쌀이 비중을 줄이고 콩, 수수 팥, 율무등 잡곡을 늘여 18시간 물에 불린다음 물에 익히면 어느 반찬에도 어울리는 핵심요리가 완성이다. 채식이라고 엄청 특별난 요리만 떠올리는데 난 늘 먹는 밥을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무수한 콩들을 넣어서 지어도 특별한 요리라고 본다.  

그 다음 레벨의 콩요리로 한식요리에 고기대신 삶은 콩을 집어 넣어 보는 건 어떨까. 

미역국과 완두콩

마늘, 참기름, 간장, 미역만으로도 진한 미역국을 만들 수 있다 거기에 완두콩을 같이 넣으면 완두의 고소한 맛을 같이 즐길 수 있고 영약적으로도 단백질을  보완해 줄 수 있다.


더 현란한 요리라면 콩을 넣은 스튜? 외국 비건들이 유튜브에 많이 올리는 요리다. 인터넷에 콩(Bean) 스튜 치고 올라오는 여러 레시피를 보고 흉내내어 많이 시도해봤는데 최근에는 이국적인 맛보다 고추가루와 고추장을 넣어 매콤한 한식 칠리 스타일이 좋아졌다. 

고추장 콩스튜


 첫 도전에 다 입에 맛는 요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라면 끓일줄 아는 레벨이라면, 고추장찌게 끓일 정도의 레벨이라면 재료만 채식으로 바꿔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 내입에 맞는 맛을 찾아 갈수 있다. 


현란한 맛을 내는데는 역시 기름(참기름), 고추가루, MSG, 올리고당(설탕) 그리고 시판 드레싱, 양념을 못따라간다. 백선생의 요리가 당당하게 맛의 치트키를 사용하여 요린이를 주방으로 불러모으듯 채식재료를 요리로 소환시킬 수 만있다면 너무 양념을 깐깐하게 볼필요 없다.  치트키가 채식을 오염시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외국 콩요리만 있으면 채식을 하겠다는 그 분에게 내 솔루션이 별로 일 수 있다. 채식이 거창한 요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단계 한단계 즐기면 좋겠지만 그게 맘에 안든다면 다행히 맛있는 채식레스토랑도 있다. 현란한 채식버거, 리조토, 커리라이스, 랩... (네이버, 다음 검색에 줄줄이 나옴)

남이 해주는 요리가 더 맛있긴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