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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Dec 14. 2021

나도 살쪘다

자기포식을 시도하다

교만해진 비건의 최후

비건이 된 계기는 더 건강해 졌으면 하는 이기심이었다. 지구생태계와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을 위해 내 건강을 손해볼 마음은 '1'도 없었다. 그저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도시인간은 순수 식물성 식단을 할때 태어났을때 받은 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기자 미련없이 '육식과 동물 부산물 먹기'를 포기할 수 있었다.  무한 경쟁사회의 구성원으로 남들 보다 먼저, 더 건강하고 싶다는 경쟁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뭐 이런 이기적인 맘으로 채식을 해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면서 자만심이 커져 갔다. 영양학적, 도덕적으로 완벽한 식단이라는 맹목적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기위해 살아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먹기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했다는걸 인정한다.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동안은 긴장감으로 에너지를 얻지만 달성하면 오히려 삶이 허무해졌는데 먹는 것은 달랐다. 먹는 순간 바로 지친 몸을 달래주고 다음 먹을때를 생각하며 버틸 힘을 얻을 수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 없는 미미한 존재로 느껴질때 달콤한 고구마 한입이면, 땅콩 한 주먹이면 별거없는 삶도 즐거워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어느 순간부터 이들로 부터 얻는 안식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  

  

내가 순수 채식인(비건)이라고 하면 주위에서 먹는 즐거움이 없는 금욕적인 삶을 산다고 측은하게 본다. 아무리 설명해도 안 믿을수 있지만 음식으로 느끼는 즐거움은 상대적이다. 일반인이 고기나 치즈에서 얻는 쾌락을 나는 두부나 땅콩버터에서 느낀다.  그렇다고 땅콩버터가 주는 식도락이 치즈보다 고상한 것도 아니고 똑같이 적절한 조절(중용)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난 자연에서 나는 식물성 음식은 끝없이 즐겨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거라 믿어 의심치않았다. 아마도 내 쾌락이 더 고상하다는 교만 때문인지 모른다.    


식단은 철학이 아니다

지구상 생명체는 생존하기 위해서 어떻해서든 다른 생명체로 부터 에너지를 얻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식단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 영양분 섭취행위이지 종교나 철학이 되어서는 안된다. 비건을 추구하다가는 굶어죽기 딱 십상인 몽고인의 육식을 한국에 사는 내가 도덕적인 잣대로 평가하면 안된다. 또한 식물은 동물과 달리 생명체가 아니라는 주장도 근시안적이다. 사슴이 풀을 뜯는 것과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 둘 중에 무엇이 옳고 그른가. 둘 다 옳은 일이다.  


머리는 이렇게 멋지게 정리하지만 가슴은 기이한 생각을 품었다. 채식은 도덕적으로 영양적으로 이상적인 식단이라 자연채식을 하면 자기절제없이 맘껏 먹어도 늘 날렵하고 이상적인 체중을 유지할거라는 것이다. 초반에 운동을 열심히 할때는 이런 착각을 깨달을 수 없었다. 그런데 줄어드는 활동량이 강해지는 식탐과 결합하자 어느순간 몸은 균형감을 잃고 저장버전으로 기울더니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식사량도 많아졌지만 절대량의 증가는 고구마, 감자, 온갖 과일 그리고 견과같은 간식에서 왔다. 특히 호두, 마카다미아 혹은 아몬드 같이 우리나라에서 나지도 않는 외국계 견과를 한번에 한 주먹씩 먹었는데 거의 한달에 두 봉지(1kg)이상 직구로 사야 감당되는 양이었다. '건강한 간식'은 0칼로리라 굳게 믿으며 잠자는 시간 빼고 시간마다 먹었다.   

그 결과 내 몸무게는 올해 3월 시즌(?) 대비 11월 5kg이나 상승했다.

나도 살이 찐 것이다.


변화의 시작은 현실인정

조금씩 뭔가가 틀어져간다는 것은 매일 아침 옷입을 때 마다 느끼고 있었다.  바지가 조금씩 끼더니 억지로 잠궈도 앉을때 숨이 막히고 허리선 위로 살이 머핀탑처럼 흘러내릴 태세를 취했다. 체중이 100그람씩 슬금슬금 올라갈때 빠지기 쉬운 방어기제가 바로 현실부정이다. 세탁해서 바지가 줄었다는 둥,  그린 스무디를 많이 먹어  부었다는 둥 기발한 변명으로  자기 합리화했다. 거기다 체중으로 나를 평가하기를 거부한다며 체중도 안 쟀다.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 거부하고 도망치던 중 현실과 딱 맞닥드린 날이 왔다.

캔틴에서 얼음물을 마신다고 고개를 젖히고 물을 마시는데 갑자기 들어온 사무실 동료가 "앗, 배 나왔네? 운동많이 하는줄 알았는데 의외야" 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나와 반대의 성별이고 나이도 많았다. (참고로 회사에서 이성의 외모를 지적하는 것은 의도와 상관없이 법적인 문제가 될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 상황에서 난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흔한 반응은 두가지다

1. 동료의 배를 언급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정색하고 난 적정체중이라고 자기 주문을 건다.

2. 나온 배를 들킨 것을 부끄러워하며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다 체형(체중) 관리를 못한 내 잘못이라며 자책한다.


과거의 나라면 위 두가지 중 하나의 방어기제를 썼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본인이 원치않는 오피스 매너를 억지로 알려주고 마음상할 필요도 없고 남의 배가 나왔다고 굳이 알려주는 언행은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 내가 에너지를 쏟아가며 감정살풀이 할 일은 아니다. 내가 당황하고 화가 대상은 생각나는대로 말한 그가 아니라 그가 상기시켜주기 전까지 알면서 깔고 뭉갠 나였다.

진실을 마주하게된 불쾌감을 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태워버리기 보다는 팩트를 담담하게 인정하고 빨리 상황을 수습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으로 승화하기로 했다.


'앗, 배 나온거 들켜버렸습니다.' 라는 코멘트를 남기고 사라지면서 난 내 미션을 하기위해 빨리 자리로 향했다.


비건은 살 빼주는 식단?

"비건식하면 살빠져요?"라는 질문에 난 '이유없이 살빠지는 음식은 독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고도비만이 아니고서야 단순히 음식만 바꿔 똑같이 먹는데 체중이 빠졌다면 그 음식이 뭔가 해롭거나 열량 영양분이 결핍되었을 수 있다.  채식은 과도한 체중증가나 비만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살을 빼주는 식단이 아니다. 비건이라면 과자를 먹어도 살 빠질거라 생각은 잘못된 기대일 뿐이다. (식이섬유가 같이 튀겨져도 튀김은 튀김이다.)

물론 나는 '비건'소라형과자만 먹지만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먹지 않는다.

내 입으로 건강한 식단이라 정의한 비건음식으로 시간마다 급식을 했으니 몸이 비옥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우습지만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며 끊임없이 많이 먹고선 비건이라 날렵한 몸, 군살없는 몸을 기대했다.  나도 모르게 가졌던 식단에 대한 그릇된 맹신을 버릴때가 되었다.


차가운 칠면조처럼 버리다

하루아침에 담배를 딱 끊거나 나쁜 습관을 버릴때 영어로 cold turkey 라고 표현한다.

그 어떤 표현보다도 지금 내가 취해야할 전략에 딱 들어 맞는 말이었다.   

6개월에 5키로 늘었으니 "1년이내 의도하지 않게 체중의 5%이상 급격한 증가함"이 급찐이라 내맘대로 정의했다.  과학적 근거는 없으나 많은 다이어트 전문가가 급하게 찐 살은 급하게 빼는게 효과적이라고 말하니 나도 실행을 서두르기로 했다.


일단 급빠를 진행하기 앞서 마음부터 단속하기로 했다. 배가 나왔다는 팩트는 인정하지만 그걸로 스스로에 대해 수치심이나 분노를 가지지 않는게 중요하다. 배가 나온건 표면에 드러난 현상에 불과하며 그 아래 크게 자리잡은 진짜 문제는 바로 일상에서 불편을 느끼는 체형으로 변하게 한 나의 생활과 식사 패턴이다. 진짜 문제를 대응하기도 벅찬데 외모에 대한 자괴감, 자기비하로 정서적 음지에 숨어들어 효율을 떨어트릴 필요는 없다.  


나의 차가운 칠면조는 쉬지않는 섭취 그리고 과도한 견과섭취였다.  

최근 몸이 무거워 진다며  14시간 금식과 10시간 식사의 14:10 간헐적 단식이란걸 하고 있었다. 아침 10시에서 저녁 8시까지만 먹는게 굉장히 절제력있는 단식이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실상은 이시간 아니면 못먹는다는 긴장감에 아침 10시에서 저녁 8시까지 10시간 동안 내리 먹었다. 어설프게 따라한 간헐적 단식은 사람들이 농담처럼 말하는 간헐적 폭식에 더 가까웠다.


간헐적 단식의 핵심은 금식 시간을   최소 16~18시간 이상 지속하여 인슐린 분비를 지속적으로 낮추어 몸에 저장된 지방을 태우고 자기포식(autophage)을 유도해 노후되거나 기능을 하지 않는 노폐물이 쌓인 세포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자기포식/자기소화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칼로리를 계산하거나 저칼로리식을 하지 않는 것이 간헐적 단식의 장점이지만 먹을 수 있는 6~8시간 동안 식사(M)사이에 간식(S)을 줄이면 섭취량이 일부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섭취량 감소보다는 금식시간이 체중감소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 16:8보다는 18:6 혹은 20:4 나 1일1식(OMAD)이 더 효과적이라고 하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 간헐적 단식의 작동원리도 모르고 어정쩡한 시간동안 끊임없이 먹는 것을 간헐적 단식이라고 했던 것이다.  


거기에 견과는 건강하다며 한 주먹씩 무제한으로 먹었는데 견과는 대부분이 지방으로 에너지 밀도가 높은 식품이다. 참고로 간헐적 단식의 짝꿍인 키토식에서 많이들 착각하는 것은 지방을 먹어서 지방을 태운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지방을 많이 먹는 것이다. 아무리 키토식이라도 먹는 지방의 종류가 제한되고 적정량이라는 것이 있다. 키토식 혹은 저탄고지는 인슐린 분비를 유발하여 지방으로 저장되는 탄수화물 대신 몸에서 바로 에너지로 활용되지만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지 않는 지방으로 열량을 공급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몸에 필요한 이상으로 섭취하면 아무리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은 지방이 탄수화물 보다 더 높은 효율(>90%)로 몸에 쌓이게 되고 체중감소효과는 둔화된다. 내가 키토식을 한건 아니지만 체중을 조절하겠다면서 과도한 열량을 계속 몸에 넣을 이유가 더이상 없었다.  


견과나 씨앗류는 건강한 지방공급원이지만 식물의 씨앗으로 두꺼운 껍질안에 들어있는 고밀도 에너지원이다. 자연의 섭리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식품은 그만큼 적게 먹으라고 해석하면 대부분 맞다. 그런 피라미드 상위 음식을 쌀밥 먹듯이 한달에 몇봉씩 먹었으니 몸이 다 털어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급찐급빠 솔루션과 중간결과

 맘먹는게 어려웠지만 굳은 마음으로 먹는 시간을 아침 9시에서 오후 3시까지로 제한하고 금식을 18시간으로 정했다. 아침 오전 9-10시 점심 오후 12-2시, 필요하면 가끔 간식한번 이렇게 아침 점심 두끼, 2MAD(2meal a day)로 정했다. (왜 많은 이들이 하는 점심 저녁 2MAD가 아닌지는 다음에 심도 있게 다루려고 한다.)


아침은 스무디, 과일, 고구마 등 싸가고 점심은 약속이있으면 일반식(비건옵션 예시- 회 없는 회덮밥, 고기/계란 뺀 야채비빔밥)으로 먹고 약속없으면 잡곡밥, 두부 등을 먹었다. 먹는 양은 그대로 유지하고 식사 사이에  짧게 두유, 과일, 혹은 구황작물로 간식을 넣어 허기지지 않도록 했다. 단 저칼로리 간식(뻥튀기, 강냉이...)을 곁에 두고 계속 집어먹는 것은 삼갔고 견과는  최대효과를 위해  '딱 끊었다'.

견과가 몸에 나쁘다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도 비만, 당뇨환자가 아닌 경우 지방을 섭취량을 줄일때 체중감소 효과가 클 수 있다. 물론 과자를 못끊겠다는 사람은 과자를 견과로 바꾸는게 먼저다.  

11월 18일에 급찐급빠 솔루션을 시작하여 지금 3주가 지난 시점에서 체중은 3.6kg 감소했다.   

12월 초반 7일간 체중 변화

평균 하루 100그람, 일주일에 대략 1키로 속도로 감소했다. 계속 먹는 습관과 과도한 견과섭취를 버리니 몸이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지방을 내려놓기 시작한 것이다. 반신반의로 시작했지만 효과를 눈으로 보니 내가 더 놀랐다. 정말 간헐적 단식과 자기포식(Autophage) 이론이 통한 것이다.

간헐적 단식은 한끼 식사량을 줄이지는 않지만 사이사이 간식으로 먹던 견과나 고구마 뻥튀기를 안 먹으니 평소보다는 적게 먹는게 맞다. 그럼 살이 빠진게 적게 먹어서 그런건가? 그렇다면 하루 500~700칼로리 적은 양을 균일하게 나눠먹는 저칼로리 다이어트도 같은 효과를 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적게먹어 살빼는 다이어트는 늘 실패한다.

  

섭취하는 칼로리와 몸이 태우는 칼로리(대사량)는 서로 독립된 인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2000칼로리에서 1500으로 줄여 먹으면 몸은 이전처럼 2000칼로리를 태우지 않는다. 딱 줄어든 칼로리만큼 적게 태운다. 내 월급이 줄때 내 소비가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전과 같은 칼로리 연소량을 맞추려면 500칼로리만큼 운동으로 소모해야 한다. 500칼로리를 태우려면 달리기로 40분이상이다. 매일 적게먹고 40분 운동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해본 사람은 안다. 게다가 운동을 하면 식욕이 치솟아서 매일 적게 먹기가 불가능해진다.


간헐적 단식의 장점은 한번 먹는 식사량이 이전과 비슷하기 때문에 몸의 대사량의 큰 감소를 유발하지 않으며 긴 금식기간으로 내 몸을 축내는 자가 포식(오토파지)을 활성화해서 먹는 양 대비 효과가 크다는 점이다.  매일 저녁 찾아오는 허기도 저칼로리 다이어트에 비하면 매우 가볍게 지나간다.


아직 목표로한 올 3월의 몸무게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결과로도 다시 바지를 입을때 힘겨움은 훨씬 줄었고 몸은 가벼워졌다. 더 만족스러운 것은 하루종일 허기지거나 영양결핍으로 머리가 빠지지도 않는다는 것.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식욕을 채우려 아침마다 간식싸는 시간에서 자유로와진 점이 가장 맘에 든다.   


내 급속 다이어트에 이름을 붙이자면  9-3(18:6) 간헐적 금식,  저지방 다이어트 쯤 되겠다. 다만 난 음식을 성분으로 먹지 않기 때문에 저지방식을 먹지 않았고 그냥 견과류 제외 다이어트가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번 급찐 급빠 자가포식 프로젝트를 하며 재미있는 사실을 많이 알게 되어 공유하였다. 사람 몸은 처한 상황과 식성,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한가지 다이어트법이 모두에게 동일한 효과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다이어트의 기본원칙은 자기절제, 즉 적당한 배고픔을 매일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자기몸으로  여러방식으로 실험하는 실생활 다이어터들에게 내 경험이 좋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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