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최고의 루저 (the biggest loser)라는 미국 리얼리티 프로가 있었다. 초고도비만인을 뽑아서 30주간 살 빼기 도전을 시키고 마지막까지 탈락하지 않고 시작과 비교해 가장 높은 퍼센티지의 감량을 한 일 등 루저를 뽑는 설정이다. 사회문제가 되는 비만 이슈를 경합 오디션과 환골탈태 변신물로 풀어내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환골탈태 변신 오디션 '더 비기스트 루저' 시즌 8 참가자는 각자 팀과 트레이너를 배정받고 철저한 식사 제한과 고강도 운동 스케줄을 따르는데 매주 체중계에 올라서서 얼마나 몸이 깎여 나갔는지 확인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고된 몸으로 고강도 훈련까지 감당해야 하는 육신의 고통도 있거니와 살이 안 빠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과 이 고통을 왜 사서 하는지 하는 회의감까지 더해지니 정신적 소모도 큰 과정이다. 눈물 한번 안 쏟는 참가자가 없을 정도. 하지만 피날레까지 이런 육체적 정신적 수행을 견뎌내면 일등뿐 아니라 참가자 모두 핏한 바디와 자신감을 선물 받고 금의환향할 수 있다.
동화 속 신데렐라가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이들의 결말도 날렵해진 새몸으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그런 것일까? 일 년, 이 년 혹은 한참 지난 후 이들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한 번쯤 궁금해할 법한 최고의 루저들의 '근황'이 공개되었다. 그것도 무려 과학학술지에서 말이다.
미국 NIH 연구자인 케빈 홀은 TV쇼를 통해 강제적으로 야위게 된 참가자들이 프로가 끝난 후 어떻게 변하는 지를 연구하기로 맘먹었다. 그래서 The Biggest Loser 시즌 8(2009) 출연자들을 6년간 추적했다. 그리고 그들의 몸무게와 기초대사량 변화를 학계에 발표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지만 거의 모든 참가자가 쇼가 끝난 시점부터 슬금슬금 몸무게가 올라갔다. 그중 일부는 결국 쇼를 시작했을 당시 몸무게까지 원복 했고 세 명은 오히려 원래 몸무게보다 더 올라갔다.
6년간 체중(A) 제지방량(B), 지방량(C)의 변화 [출처: Obesity. 2016 Aug; 24(8): 1612–1619.] 위의 표를 보면 근육량(B)은 변화가 없고 체중 증가의 대부분은 지방량(C)이었다.
쇼가 방영되는 동안 참가자들은 끊임없는 코치의 채찍질과 동기유발, 시청자들의 환호라는 외적 아드레날린 덕에 식욕을 억누르며 심지어 고강도 운동까지 소화해 냈다.
하지만 커튼이 내려오고 각자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내 하루 일상을 지켜보지도 운동하라, 먹지 마라 간섭하지도 않는다. 운동량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고 눈앞에는 널려있는 음식을 참는 건 이제 오로지 개인의 의지력에 달려 있다.
이는 뉴욕타임스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나는데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매일이 식욕과의 전쟁이었다고 얘기했다. 언 듯 보면 다이어트 끝날 때 먹었던 그 양을 계속 유지하면 살이 더 안 찔 거라고 생각된다. 이보다 더한 혹독한 특훈도, 독한 절식도 다 이겨냈던 사람들 아닌가. 더 빼는 것도 아닌 그냥 현상 유지만 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식욕을 제어하지 못하고 마법에 홀린 듯 요요의 기차에 올라타는 걸까.
이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기초대사량의 변화와 의지력의 한계이다.
낮아진 기초대사량
몸은 운동하지 않고 가만히 숨만 쉬어도 기본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이를 기초대사율(Resting Metabolic Rate)이라 한다. 다이어트 전 참가자들은 각각 자신의 몸무게에 해당하는 기초대사율을 보였다. 하지만 다이어트가 끝난 시점에는 줄어든 몸무게로 예상되는 기초대사율 보다 하루에 600 내지 800칼로리 적었다. 기초대사량의 저하는 이들에게서만 나타난다기보다 단기간 다이어트할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급작스런 체중의 감소는 필연적으로 기초대사량의 감소를 가지고 온다. 이는 늘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려는 신체의 항상성 때문이다. 단기간에 체중이 감소하면 신체는 생존을 위협받는 위기상황으로 판단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긴축모드로 전환하는 것이다.
출연진의 기초대사율의 변화(우측) 출처: 뉴욕타임스
예를 들어 100킬로인 사람이 살을 빼서 70킬로가 되었다고 하자. 비록 원래 70킬로인 사람과 몸무게는 같아졌지만 기초대사량은 살 뺀 70킬로 인이 훨씬 낮다. 따라서 살 뺀 70이 원래 70이 먹는 양과 운동량을 동일하게 하면 같은 체중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더 살을 뺄 목적이 아닌 그냥 유지하려고만 해도 원래 70보다 덜 먹어야 한다는 결론. 물론 같은 양을 먹고 운동을 더해서 밸런스를 유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알다시피 운동으로 열량을 조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신체의 피로스 트레스와 식욕의 증가라는 변수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적게 먹어 대사량은 떨어지고
그 때문에 더 적게 먹다가
한순간 의지력이 다하는 순간
폭식하고 다시 살찌는 악순환
의지력의 고갈
의지력(will power)은 자기 통제력에 사용하는 무형의 에너지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의지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동기 부여를 하는데 이 의지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유전되는 건가? 의지력을 타고난 사람에겐 무한히 샘솟는 걸까?
전문가들은 어디서 의지력이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제한된 자원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말 그대로 쓰면 쓴 만큼 닳아 버린다는 것이다. 여러 실험들을 통해 의지력을 고갈시켜서 유혹에 무너지는 상황을 재연시켰다. 예를 들어 한 아이에게는 손에 쿠키를 쥐어주고 다른 아이는 냉장고에 쿠키를 넣어 두라고 하고 한 시간 후에 먹으라고 실험하면 누가 먼저 참지 못하고 먹어버릴까? 안 봐도 비디오다.
쿠키를 눈에서 치워버리면 의지력을 소모하는 시험에 들지 않지만 손에 쿠키를 들고 있으면 눈앞에 놓인 쿠키의 향과 예상되는 맛의 유혹에 끊임없이 의지력을 소모한다. 설사 이번엔 끝까지 참았다 하더라도 연이어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이미 한번 의지력을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아이는 훨씬 쉽게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최고의 루저 참가자들은 체중이 빠졌지만 같은 몸무게인 사람에 비해 기초대사가 600에서 800칼로리는 줄었다. 운동량과 별개로 먹을 수 있는 칼로리는 계속 낮게 유지해야 하는데 이전과 같은 음식을 먹으며 양만 줄여야하니 매 끼니 의지력이 엄청나게 소모되는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칼로리를 줄이면 여러 가지 지표로 몸에 이롭다는 영양 관련 논문이 무수히 많이 나와서 이젠 일반인도 적게 먹으면 질병에 안 걸리고 장수한다는 걸 상식처럼 알고 있다. 최근엔 하루 딱 300칼로리, 쿠키하나 만 안먹어도 체중도 빠지고 심장도 건강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겨우 하루 300칼로리 덜먹기가 뭐가 어렵다고.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야지 마음먹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쉬울까. 말은 쉬운 칼로리 섭취 줄이기의 현실 모습을 보자.
오늘부터 당장 하루 조금 덜먹기를 시작해야지 하고 결심한 A. 매일 간식으로 하나씩 먹던 초코 쿠키를 먹지 말야겠다고 생각했다. 식탁 위 쿠키 상자를 보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오며 가면 계속 눈에 띈다. 낮엔 회사에서 스트레스받고 저녁에 반찬이 별로라서 밥을 좀 부실하게 먹었다. 기분도 별로인데 자려고 누웠는데 자꾸 쿠키가 떠오른다. 그냥 자야지 하고 강하게 나를 독려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견뎌냈는데 다음날 동생이 마지막 남은 그 쿠키를 뜯고 있다. 그걸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돼 하고 가로채 버렸고 어느 순간 쿠키는 내입에 들어왔다. 혈당이 올라가자 뇌 속에 세로토닌이 촥 분비되니 행복감이 든다. 잠시 후 왠지 승부에서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아침을 안 먹으면 되지 하고 바로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전형적인 의지력 소모 게임의 단상이다.
A의 패인은 애초에 안 먹기로 했던 쿠키를 계속 눈앞에 두고 의지력을 소모한 것이다. 또한 적절한 영양소와 열량이 있는 식사로 기본적 허기를 충족시키지 않고 오로지 쿠키만 안 먹기에 집중하였다. 하지 말아야 해라는 강한 자극은 계속 그 대상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그 반복적인 생각은 쿠키에 대한 열망을 더 키운다. 결국 머릿속이 그 쿠기로 가득 차는데 해결책은 입에 쿠기가 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
또한 쿠키를 먹은 것보다 더 나쁜 선택은 쿠키 먹은 걸 다음 끼니를 안 먹어 보상하려는 것이다. 계속 굶주림 상태를 만들어 머릿속 쿠키의 맛을 더욱 신격화시키는데 일조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다음번 쿠키에 대한 유혹은 이번보다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몸을 마치 기계 엔진처럼 해석하고 입에 넣는 연료와 소모되는 열량을 맞추는 공식에 대입하면 잉여 칼로리(살)의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 흐름은 AI와 달리 제한된 의지력뿐 아니라 환경, 기분, 감정, 스트레스 등 여러 변수에서 돌발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결코 수학공식 같은 알고리듬대로 따라 움직여 주지 않는다.
단기간에 의지력의 불꽃을 태운다 해도 그 기간은 일 년? 길어도 2년을 넘기기 어렵다. 하루하루 식탐과 허기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야금야금 소모된 의지력이 결국 고갈되면 몸의 항상성에 굴복하고 흔히 말하는 요요를 겪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에 대한 고민
최고의 루저 경험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뭘까
한번 살찌면 끝이다?
살 뺀 사람은 앉은자리에 풀도 안 난다?
아직도 많은 다이어트 전문가들이 칼로리 제한이 다이어트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하루 500칼로리만 먹는 초절식은 연예인 성수기 다이어트라며 인정받고 있다. 칼로리 제한은 이론상 틀린 말이 아니다. 하루에 삼백칼로리 줄이면 열흘이면 삼천 100일이면 삼만 칼로리, 킬로그램으로 환산하여 3.8킬로 삼 개월에 4킬로 빼면 일년에 십키로가 문제겠는가. 이런 쉬운 다이어트를 못하는 건 오로지 내 의지력이 박약하기 때문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칼로리 공식은 인간의 항상성이나 의지력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백발백중 강력한 인간의 생존력이 만들어낸 요요를 예고 하고 있다.
내가 볼 때 강한 의지력을 요하는 칼로리 기반 절식은 단기간 체중감소 목적이면 몰라도 장기간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가 될 수 없다.
이제 다이어트 시장규모는 7조를 지나 10조 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체중감량에 성공했다면 다이어트 시장을 떠나야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마켓의 확장은 다시 말로 대부분이 다이어트에 실패해서 다시 회기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미지옥 같은 짜여진 미로에서 탈출하려면 실패를 보장하는 공식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그럼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는 무엇일까
의지력의 시험에 들지 않으며 영양과 열량을 충분히 섭취하는 다이어트?
그런 다이어트가 있을까?
적어도 포털에서 광고하는 수많은 다이어트 도시락이나 합숙 단식원은 절대 아닐 것이다.
이상적인 다이어트는 분명 존재한다.
다만 아무도 보려 하거나 투자 하지 않아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다음엔 이상적인 다이어트에 관해 이야기 해보려한다.
To be continued...
(수정 2019.07.25 1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