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표현은 엄격 채식인, 비건인, 고기안먹는 자, 우유도 안먹는 인간 등 다양하다.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극단적인 혹은 유별난이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이 중 어떤 표현이 내게 정확히 들어맞는지 딱 하나 고르기는 쉽지 않다.
채식인이라는 말은 의미상 맞다. 근데 '채'는 채소를 연상시키고 채식 하면 열에 아홉은 잎채소만 먹는 사람으로 오인한다. 난 과일도 먹고 곡물도 먹고 콩도 먹고 견과도 먹고 먹는거 엄청 많은데 마치 박신혜 다이어트처럼 밥에 생배추잎만 곁들여 한끼먹는 사람으로 여겨지는것 만 같다. 게다가 웬지 좀 촌스럽게 들린다. (그냥 내 느낌적인 느낌)
비건인이라는 말은 다른 표현들과 달리 식생활 뿐 아니라 윤리관, 세계관까지 반영하고 있다. 식생활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동물이나 동물부산물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배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건적 사고는 인류의 과도한 육식 추구를 현재 지구환경변화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동물과 그 부산물을 소비없이도 인간이 충분히 건강생활을 유지하며 더불어 지구환경 변화를 최소화 할수 있다는 것이다. 내 세계관과 일치하는 용어이긴 하지만 건강적인 측면에서 만 보면 비건이라는 표현은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코카콜라는 순수 식물성 식품, 즉 비건이 이다. 그럼 오레오는 어떠한가. 미국의 오레오는 완전 비건식으로 어떤 동물 부산물(유크림, 유청, 버터)을 재료로 쓰지 않는다. (아쉽게도 동서에서 OEM으로 생산되는 우리나라 오레오는 유청을 사용해서 비건이 아니다.) 하루 콜라 1리터에 오레오 패밀리 팩씩 먹는 것이 과연 건강한 식생활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답은 명확하다. 비건은 윤리적 가치를 가진 말이지 건강한 식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리지널 오레오 - 비건식품
고기, 계란, 우유도 안먹는 인간이라는 표현은 어떠한가.
난 고기 계란 우유 그외 일절 동물과 그 부산물을 먹지 않으므로 말은 맞다. 하지만 비건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오늘은 우유를 안먹고 내일은 계란을 안먹고 하나하나 지우면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시작 당시 스스로 녹황색채소와 과일 섭취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졌고 식생활을 바꿔 건강해진 이들의 공통점을 쫏아 하루 한끼를 과일과 야채로 풍성하게 먹는 것으로 시작했다. 무언가를 하나씩 빼는게 아니라 이제껏 먹어 본적이 없거나 한달에 한번 먹을까 말까한 다양한 근거리 야채를 매일 추가해가며 먹거리를 넓혀 나갔다. 그렇게 먹는 양이 많아 지면서 굳이 내 건강에 도움을 주지 않는 정제 식품, 동물성 식품들은 배에 들어갈 자리가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면에서 이것도 안먹고 저것도 안먹는 사람으로 불리는건 웬지 억울하다.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한달을 두고도 다 못먹을 양의 잎채소(근대, 돌나물, 시금치, 치커리, 비타민, 상추, 로메인), 열매채소(가지, 애호박, 오이), 견과, 통곡물(수수, 현미, 흑미), 콩(백태, 검은콩, 강남콩, 작두콩, 밤콩)을 매일 거나하게 먹고 있는데 왜 나는 내가 먹지 않는 식품으로 불려야 하나 싶기 때문이다.
아침에 만드는 그린 스무디의 재료 도시락 - 그린스무디 잡곡박 찐 고구마와 밤호박 그럼 난 뭘로 불리고 싶은가
오르소렉시아
오르소렉시아(Orthorexia)는 건강식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상태를 말하는 용어이다. 아직 한국말로된 특정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오르소렉시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흔히 조미료, 합성첨가물, 살충제, 유전자 조작식품, 정제식품, 육류, 유제품, 건강에 나쁘다는 음식을 피하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이상적인 식사, 특히 채식 기반의 자연식에 집착한다.
헙... 이거 내 얘기 아닌가.
우선 내가 식단을 채식으로 바꾼것 부터가 더 건강해지고 픈 열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열망은 오래살고자 함은 아니었다. 좋은 거 먹고 백세 천세를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이 건강해지는 음식이 정신도 건강하게 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난 오래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집착이라는 말이 거슬리긴 한다. 집착이라는 건 보통 내 것이 아닌 동경의 대상에 대한 막무가내식 접근을 의미하는데 왜 정크 푸드 대신 주위에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친환경 자연식품을 선택하는 것이 집착으로 불려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일반인에게 이 오르소렉시아는 정신병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을 지울순 없지만 이보다 더 나은 용어를 찾을 때까진 나를 지칭하는 말로 써보려고 한다.
한국말로는 건강을 유별나게 챙기는 편식쟁이로 의역 할 수 있을 거 같다. 물론 고기를 안먹어서 편식쟁이가 되는 거라면 난 채식쟁이라는 표현이 더 좋긴하다 .
덧
완전채식(비건) 식단이 급격한 체중감소 목적의 다이어트 방식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많아서 완전채식한다고 하면 흔히 영양적 결핍이나, 식욕억제러 스스를 학대한다고 의심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 채식은 환경과 윤리적 목적이전에 건강의 추구가 먼저였다. 초반에 하루 한끼 채식을 시작해 식재료를 하나하나 추가해가며 내 몸이 긍정의 방향으로 변화하는 걸 확인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종의 일인 임상시험의 과정을 거쳤다. 결코 체중감소를 목적으로 하거나 건강을 배제한 순수한 이념의 추구였던 적이 없고 신체건강에 위협이 되는 식단은 그 어떤 이유로도 남에게 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고기와 유제품등에 대한 가치판단은 개인 각자의 몫이며 그에 대한 정보는 이미 온라인상에 산재해 있다. 난 채식기반의 식생활이 육류, 유제품을 소비하는 것과 비교해 단백질이나 열량 섭취에 특별히 손해 보지 않으며 심지어 더 다양한 영양분을 얻는 것을 직접 체험으로 얻은 경험과 여러 의학정보를 통해 확신을 가지고 현재까지 실천하고 있다.
내 글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내가 경험한 체험에 대한 이야기로 어떤 이를 비난하거나 폄하하거나 내 방식을 타인에게 설득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어느날의 저녁 한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