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정말 지난 주랑 똑같이 먹고 다이* 쿠키 하나 더 먹었는데 이번 주 1킬로 쪘어요. 진짜 먹는 거 하나도 없는데... 난 살찌는 체질이에요"
갑자기 툭하고 다이어트의 어려움을 터트리는 B.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레퍼토리인데... 많이 먹는 스타일이 아닌데 찐다로 시작해서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 결국 뭘 해도 살찌는 운명이라고 결론 내는 이야기다.
찬찬히 듣다가 "그렇게 안 먹으니 살이 찌는 거예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눌러 삼켰다.
정말 물만 마셨는데 살이 쪘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적이다. 우선 바티칸 기적 조사관에 의뢰해서 교황청에서 승인을 받는 게 먼저인 듯 하나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덤벼드는 건 실례다.
B가 실제 뜻하는 바는 먹는 양(부피)에 비해 살이 찌는 정도가 비정상적이라는 억울함이다. 물론 모든 하소연이 문제 해결을 바라는 건아니다. 나에게도 답을 달라고 말 한건아니라 곧바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하지만 난 그를 아끼는 마음에서 스스로에 대해 가지는 오해를 풀어 주고자 다각도로 B를 분석해 보았다.
자기실현적 예언
자기실현적 예언이란 '상황에 대해 잘못된 판단이나 정의를 내려 다음 행동들이 처음의 잘못된 생각을 현실화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고상하게 설명해서 바로 이해가 바로 안 가지만 예를 들면 아~ 그거 할 것이다. 이번 시험은 망할 거 같다고 공부 시작 전부터 반복적으로 되뇌다가 진짜 시험 죽 쑤는 경우가 바로 부정적 예언 실현의 예이고, 반드시 성공해서 부자가 될 거야라고 매일 같이 주문을 외우다가 정말 성공한 경우가 긍정적 예언 실현의 예이다. 미리 예측한 상황이 우연히 실현된 것 같지만 실은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임을 뜻하는 말이다.
잘 알려진 유명한 예가 바로'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오히려 그 노력이 신탁을 현실화시켜버린 오이디푸스의 신화다.
갑가지 신화까지 들먹인 건 B가 살찌는 게 두려워해서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을 부정적 미래를 향해 한칸한칸 밀어내며 예언을 실행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B가 스스로 건 부정적 주문을 현실화하게 해 준 일상의 장치와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B는 빵, 케이크, 과자, 치즈와 유제품 그리고 가공육을 좋아한다. 스스로도 본인의 기호식이 흔히 말하는 살이 찌는 음식이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포기한 삶은 상상도 하기 싫어서 먹긴 먹되 조금만 먹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침엔 베이글 반쪽에 크림치즈를 발라서 먹고 커피는 저지방 우유에 설탕 넣지 않은 라테, 그리고 점심은 훈제 닭가슴살 한 덩이와 샐러드 그리고 저녁엔 스시 딱 두 점을 먹었다. 그 외에는 안 먹는다고 말했다.
머리를 파묻어도 숨길 수 없는 게 있다.
정말 그것 말고는 안 먹어?
CCTV로 그를 24시간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주위 정황은 B가 나에게 말한 것과는 좀 달랐다.
우선 B의 집안 곳곳에 과자와 사탕이 있다. 물론 남들 보는데서 그 과자들을 먹지 않는다. 단지 주위 사람에게 항상 과자를 권하거나 발견되게 만들고 유혹에 넘어간 친구가 개봉을 하게 되면 살짝 한 조각 시식을 했다. 그렇다고 같이 막 많이 먹는 건 아니고 강한 자제심으로 배가 안고파서 하며 더 안먹는다. 재미난 건 그다음에 방문하면 항상 다른 과자들이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입이 심심할 때마다 하나에 5칼로리 정도 남짓 눈깔사탕을 자주 까먹었다. 과자 한 조각이나 눈깔사탕 먹어서 살쪘다네 하고 매도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물만 먹는 건 분명 아니라는 점이다.
살찌기에 두려움을 가질 때 흔히 하는 선택이 칼로리 미분하기다. 한 번에 먹는 섭취량을 자잘하게 줄이면 지금 먹는 건 먹는 게 아닌 맛보기가 된다. 적어도 맛만 보는 건 섭취가 아니니 살찐다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맛보기가 수 없이 이어진다면 그건 더 이상 맛보기가 아니라 그냥 가늘고 길게 먹는 것이다.
비슷한 방식의 눈속임으로는 최근 유행하는 제로 칼로리 오일 스프레이가 있다. 모두 자연(all natural?) 임을 강조하는 팜스프레이의 뒷면을 잘 살펴보면 제로 칼로리를 보장하는 1회 제공량이 1/3초간 분사라고 쓰여있다. 딱 칫~0.33초 찰나의 순간만 뿌리면 오일 0.265g이 나오고 이를 칼로리로 전환하여 소수점 이하를 잘라내면 제로 칼로리가 나온다. 물론 치이이잇~ 하고 3초를 뿌리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거다.
비결은 0.33초
마트 시식코너도 그렇지 않은가. 말이 시식이지 식품코너를 그랜드 라운드돌면 한 끼 식사다. 머리는 계속 맛보기라고 주장하는데 다이어트를 위해 식사 때정량을 먹지 못해 허기진 몸은 잘게 나눠 머리를 속이고 열량을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유혹을 통제하는가 유혹에 끌려다니나
집안 곳곳에 발견되는 간식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음식 앞에서 자기 절제를 시험하기 위한 챌린지 목적이 첫 번째이다. 그러다 다른 이가 음식을 발견하여 먹는 모습을 보면 상대의 먹방에 대리만족도 느끼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나의 절제력이 높아 보이기 때문에 만족감이 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절제력을 확인하려고, 대리만족을 느끼려고 했던 이 모든 장치들이 사실은 계속 의지력을 소모시키고 금지된 음식에 대한 열망을 높이고 있음을 B는 알지 못했다. 자기 통제력을 느끼려 한 시도들이 사실은 자청해서 하루 종일 유혹에 시달리게 만든다. 다른 중요한 가치에 대해 고민해도 부족한 소중한 하루가 '안 먹어야지', '참아야지' 같은 음식과의 전쟁으로 꽉 찬다. B의 의지력이 원래 낮은 게 아니라 이렇게 쉼 없는 게임으로 의지력이 계속 깎여나가도록 설계한 것이다. 결국 의지력은 바닥이 나고 그사이 반복된 맛보기로 한층 커진 음식 갈망이 훅 치고 들어오면 어느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진다. 정신 차리면 손에 과자 빈 봉지가 들려 있는데 오늘은 치팅데이(cheat day)라며 급조된 상을 준다.
B는 스스로를 강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삶의 곳곳에 음식 덫을 놓고 스스로를 낚아 올리고 있었고, 스스로 식욕을 조절하는 자기 제어 상태를 원했지만 사실은 이미 머릿속이 먹고 싶은 걸로 뒤덮여 식욕에 끌려다니고 있었다.
의지력을 평생 불태울 수 없다 결국 식욕과 의지력이 맞붙는 음식 덫(food trap)에서 벗어나야 한다.
에너지 효율 일 등급인 음식들
비록 맛보기가 많다고 해도 B가 먹은 양은 분명 절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럼 왜 그다지 많지 않은 음식에도 살이 빠지기는커녕 야금야금 체중계는 올라가는가. 이럴 때 보면 내 몸은 입으로 들어온 에너지원(음식)을 어디 허투루 버리는 것 없이 꼬박꼬박 저축하는 알뜰 살림꾼 같다.
B의 몸이 경제적으로 바뀐 건 소량의 식사를 부정기적으로 찔끔찔끔 먹어 장기적 굶주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몸은 이런 상황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겨울 같은 위기로 인식해 긴축모드로 전환된다. 경제 불황에 지갑이 열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초대사량을 확 낮추어 버리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하다고 느끼게 해 불필요한 움직임도 줄여버린다. 동물에 비유하면 동면기라고 할 수 있다.
먹은 칼로리를 차곡차곡 쌓아서 긴 혹한기를 살아남으려 하는 것이다.
거기다 추가로 B는 좋아하는 음식마저 에너지 효율이 높다. 아니, 음식이 무슨 순도 따지는 석유화학 연료도 아니고 갑자기 에너지 효율이라니.
이는 자연식(whole food)과 가공식(process food)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가공식은 대부분 자연 식재료를 건조, 분쇄, 추출 등의 과정으로 섬유소를 제거하고 순도를 높여 정제한 백색, 백밀가루, 오일을 원료로 만든다. 거기에 향미 증진제, 첨가물이 더해져 식감과 맛을 높여 정상적인 식사량 그 이상을 하도록 만든 음식들이다.
오일과 아몬드는 둘 다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이다. 같은 120 칼로리의 오일(14g)과 아몬드(20g)를 먹는다면 둘 다 내 몸에서 120 칼로리로 전환돼버릴까? 글쎄...
아몬드가 에너지 밀도가 높긴 하지만 8% 정도의 섬유소와 그 외 다른 미량 성분들에 지방이 엮어있는데 아몬드가 가진 모든 지방성분을 우리 몸이 다 뽑아내기 위해서 위장관이 부수고 으깨고 녹이고 하는 소화 운동이 필요하며 개인차가 있지만 일부는 다 추출되지 못하고 몸 밖으로 배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일은 이미 몸에 바로 흡수되는 형태로 정제되어 있다. 오일 한 스푼 퍼먹으면 120칼로리가 복잡한 과정 없이 흡수될 수 있는 거다. 그런 면에서 견과가 원유라면 오일은 가솔린이며 대부분의 가공식들이 이런 에너지 효율 높은 재료로 만들어 졌다.
B가 늘 난 적게 먹는 데, 먹는 것이 없는데 하는 데 나보다 많이 먹는 사람이 뭘 먹고 있는지 한번 볼 필요가 있다.
같은 칼로리 다른 음식
위 그림의 왼쪽은 치킨 너겟이고 오른쪽은 퀴노아 콩 수프(잡곡 영양죽?)로 둘 다 230칼로리다. 이 둘은 뭐가 다를까. 딱 봐도 부피가 다르다. 치킨너겟은 딱 두 조각 20그람 정도 손바닥 반도 안되는데퀴노아 볼은 무려 430그람으로 국그릇 한가득이다. 게다가 콩수프에 다양항 영양소나 섬유소가 그저 치밀 고지방 고단백인 치킨너겟에 비해 월등히 높다.
B는 죽어도 난 치킨너겟 파다. 그래서 두 조각 먹고 잠시 행복한 다음 다음끼니까지 허기와 싸운다. 우리 몸은 230칼로리나 먹었으니 그만 배고파하라는 머리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포만감은 특정 칼로리를 채워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위와 장이 풍부한 볼륨으로 늘어나는 기계적 자극에 연달아 생기는 연동운동의 종합적인 신호전달을 통해서 생기는 것이다.
극단적인 비교지만 많이 먹고도 살이 안 찌는 사람은 에너지 효율은 떨어지고(낮은 칼로리 밀도) 영양은 풍부한 자연식을 먹고 있다. 많이 먹기 때문에 살이 안 찐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다. (흡수장애로 먹어도 살 안 찌는 사람은 제외)
B는 절대 물만 먹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 종일 먹는 것만 생각나도록 몰고 갔고 먹는 것은 대부분 칼로리로 전환되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효율 높은 가공식으로 채웠다. 장기간의 굶주림으로 기초대사량은 낮아진 한껏 경제적인 몸에 순도 높은 연료를 넣어주니 자연의 법칙에 따라 체중이 높게 형성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B는 적게 먹어서 살이 찐 것이다.
이전에도 말한 대로 다이어트라는 개미지옥을 벗어나려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다이어트 법칙을 뒤집어엎어야 한다. 얼마나 먹고, 몇 칼로리를 먹느냐를 재고 따지며 체중계에서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악순환을 끊어주는 먹으면 먹을수록 이로운 음식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