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기는 싫은 여느 평일 밤, 생각없이 티비채널을 클릭클릭 하다 특이한 단어가 스쳐 리모컨을 뒷걸음질했다. 돌외잎추출물 분명 건강정보채널같은데 돌외라니, 참외과인가? 분명가운을 입은 이는돌외잎 추출물을 얘기하고 있다. 돌외가 대체 뭔가해서 계속 봤지만 그저 체중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제품은 없어 대놓고 약을 파는 것은 아닌것 같지만 마치 진료실에서 치료약 설명하는 듯한 분위기다.
그러나'종편의 건강비법은 옆 홈쇼핑에서 판매중'법칙에 예외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다음 홈쇼핑채널에서 동시간대에 [돌외잎추출물] OO 다이어트 3개월 분을 팔고 있다.
돌외잎 +/- 다이어트
이들이 의사와 영양사의 입을 빌려 과감(?)하게 살을 빼준다고 외치는 당당함은 논문에 있었다. [Obesity 2014 Jan;22(1):63-71.]
호기심에 논문을 뒤적거리니 돌외잎추출물의 성분 액티포닌 (actiponin)과 에너지대사를 조절하는 AMPK 효소의 뜨겁고 긴밀한 관계가 지루한 생화학적인 용어로 설명되어 있었고 어려워서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결론은 비만(BMI≥ 25) 참가자 80명을 반으로 나눠 액티포닌과 위약(placebo)을 각각 3개월을 먹였더니 액티포닌 그룹에서 MRI로 복부지방면적이 줄었다였다. 강력한 항비만 효과는 다름아닌 영상에서 줄어든 지방면적이다.(500원 동전 3-4개 크기)
내가 이해 못한다고 논문이 학문적 가치가 없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가치가 OO다이어트 3개월 한박스 값인거 같지도 않다.
그도 그럴것이 액티포닌을 감싸는 화려한 과학적 근거는 한발만 뒤로 물러나서 보면 초라하기 때문이다. 뭔가 어마어마한 체중감소 같지만 몸무게 감소는 고작 1kg (평균 76에서 75)였고 허리둘레감소는 2cm 였다. 심지어 비교대상 밀가루약도 허리를 1cm 줄였는데 말이다. 40명이 액티포닌을 먹고 활력있는 Fit한 새 삶을 얻었는지 판단하기에 3개월은 너무나 짧고 1키로감소는 너무나 소박하다. 아무것도 안하고 간헐적 단식만해도 3개월에 2키로정도는빠진다. 요요가 올지 모르겠지만 그건 액티포닌도 마찬가지.
돌외잎사귀가 내미는 논문은 과학적으로도 인문학적으로도 살빠짐을 어필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과학이 보증하는 약인듯 판촉을 하고 사람들은 지갑을 열어 사주고 있다.
지금 난 왜 일면식도 없는 돌외잎사귀 다이어트약을 디스하고 있는가 싶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건 왜 나만이들을 불편해 하는가이다.
건강시장의 삼대 천왕
요즘 몸에 좋은 것 골라 먹는게 참 어려워 졌다. 구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주변에 훈수꾼들이 너무 넘쳐나기 때문이다. 건강한 음식을 알려주고 싶어 안달난 똑똑이들 중에는 의사, 식품영양학자 뿐아니라, 뉴스기자, 실제 몸짱이나 연예인들도 있다. 먹으라는거 다 먹다가는 밥보다 더 영양제를 먹게되고 골라 먹으려니 무한 결정장애가 유발된다.
이들의 플레이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건강 칼럼과 전문가 부대가 새싹보리에 엄청난 효능을 소개하고 홈쇼핑채널은 바로 그 새싹 보리 파우더를 파는 협업의 패턴. 그 이전에는 돼지감자, 브라질넛, 오메가3 였고 이제는 돌외잎이 되었다. 이런 반복되는 레파토리 덕에 크게 머리를 쓰지 않아도 밑에 깔려있는 숨은 플레이가 보인다.
결국 식품영양학의 전문가집단, 저널매체 그리고 이들이 뛰어들 판을 까는 식품산업, 이들이 바로 건강시장을 움직이는 메인 플레이어다.
이 게임의 강력한 무기는 바로 과학적 근거, 즉 저널에 실린 논문이다.
야채 과일 많이 드세요 했다가는 대중들은 지루해하고 전문가들은 돈을 못벌고 식품회사는 망한다. 하지만 당근에 베타 카로틴이 얼마나 강력한 항암효과가 있는지 연구결과를 기사로 쓰고 종편이 소개하고 홈쇼핑에서 추출물을 팔면 모두가 돈버는 상황이 된다. 그런데 정작 지갑을 열고 제품을 사먹는 소비자는 건강하고 행복해졌나?
만약 당연히 맞겠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연구 논문 결과가 실은 우리 건강과 아무 연관이 없는 공허한 숫자라면 어떨까....
그 숫자를 바탕으로 한 건강칼럼, 건강정보쇼, 홈쇼핑의 긴밀한 삼각 플레이는 교묘하게 짜여진 판촉활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비타민 D는 진짜 몸에 좋은데...
주변에서 무슨영양제를 먹냐 물어볼때 자연식 주의자인 나도 서슴없이 권하는것 비타민 D와 오메가 3였다. 먹어서 그다지 부작용이 없고 심지어 비타민 D와 오메가 3가 부족할때 생길수 있는 건강이상에 대한 '논문'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더 건강해지기 보다 결핍증은 막아야한다며 부지런히 먹어왔는데 결국 나의 신뢰도 결국 논문파워였다. 하지만 돌외잎추출물에 대한 연구가 실팍하듯 무조건 신뢰 했던 비타민D의 나름 '과학적' 연구결과도 그다지 견고하지 않았다.
햇볓을 받으면 피부에서 생성되는 비타민 D가 뼈건강에 중요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고 논문적 근거가 넘쳐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우리 몸의 거의 대부분 조직과 세포에서 비타민 D수용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연구들은 뼈건강에서 전신 건강으로 방향을 틀게된다. 이때부터 비타민 D가 심혈관계 건강, 면역기능, 암예방, 건강관련된 모든 것의 핵심이라는 결과를 겨냥한 연구가 주류가 되었다.
수많은 관찰연구들이 비타민 D레벨이 낮은것과 사망율이 높은 것, 심혈관질환과 암발생이 높은 것을 연결시켰고 심지어 코로나도 더 잘걸린다는 것까지 연관지었다.
하지만 이들 연구에서 통계적 정확성이 얼마나 높은지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놓치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연관성이 높은것과 진짜 원인이라는 것은 별개 문제라는 것이다.
누가 노인을 죽였나
알기 쉬운 예를 들어보자. 혼자사는 노인들의 사망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이들을 취재하던 기자는 독거노인 대부분이 비타민 D가 낮은것을 발견했다.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가 이제 부터 오래 살기위해서는 비타민 D를 먹어야 겠다고 코멘트를 했다면 어떨까. 말이 되는 듯도 하지만 헛점이 깔려 있다.
친구도 없고 무릎도 쑤시고 집 열쇠도 깜빡깜빡하는 독거노인이 과연 얼마나 밖에 나가 일광욕을 했겠나. 햇볕을 못 봤으니 당연히 비타민 D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낮은 비타민 D가 독거노인 건강이 불량하다는 지표일 수는 있어도 사망을 유발했다고 말은 아니다.
독거 노인의 죽음과 관련된 변수는 심장병, 뇌졸중, 암, 인지기능저하(치매) 등등 매우 다양하다. 또한 심장병, 암이 비타민 D가 낮아서 생겼다고 결론내기에도 근거가 없다.
정말 비타민 D가 부족해서 심장병과 암이 생겼다면 비타민 D를 먹은 사람들한테 암이나 심장병이 진짜 덜생겨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만명이상의 다수를 5년 이상 관찰한 공정한 연구(RCT)들은 하나같이 비타민 D보충제가 질병을 예방하지 않는다. 라고 결론 내렸다. [VITAL, D-HEALTH] 비타민 D 먹어도 질병발생을 줄이지 못한것이다.
이런 가장 설득력있는 연구데이터들이 계속 비타민 D 보충제를 먹는 것과 인간이 질병에 안걸리는 것과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비타민 D와 건강상태에 대한 연관성이 있다는 논문은 계속 나오고 있고 건강검진에서는 계속 비타민 D 피검사를 하며 건강증진을 위해 비타민D 보조제를 추천 받는다.
Bad Science
현대과학과 영양학의 불신자는 아니다. 내가 못마땅한 것은 현재 과학기술로 자연물의 모든 성분을 분리할 수 있고 성분을 합성해서 자연물의 효과를 재현할수 있다는 환원주의(reductionism)의 오만이다.
요즘 우리는 바나나라 쓰고 탄수화물 혹은 당분으로 읽는다. 하지만 과일중 젤 단순한 바나나마저도 성분이 수십가지가 넘는다.
조물주가 바나나를 만들때 넣은 수십가지 재료
과학적 분석이라며 자연물을 우리가 해석할 수 있는 영역까지만 가치의 전부라고 단정한다.
바나나가 이럴진데 토마토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에게 토마토는 그저 라이코펜 공급원이고 익히고 기름에 볶아먹으라고 강요받는다. 그리고 라이코펜을 먹으면 토마토 전부먹는 효과가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니 라이코펜 보충제를 먹였더니 오히려 폐, 위, 전립선암이 증가되었다는 의외의 결과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Clin Sci (Lond). 2002 Apr;102(4):447-56.] 라이코펜 보충제는 토마토가 아닐뿐더러 토마토 보다도 열등했다.
진짜는 조용하다
아무리 합성 성분이 자연식품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증거가 넘처나도 건강시장은 받아 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공장이 관여하지 않는 야채를 주력상품화 하기에는 식품회사가 챙겨갈 수익이 없고 별로 비싸지 않는 야채로는 소비자가 건강에 돈 쓴 보람을 못느낀다.
모든 플레이어를 만족시키는 가공추출물, 건강 보조제는 확성기를 켜고 종목을 바꿔가며 요란하게 팔아대고 있고 진짜 건강식은 스피커를 찾지 못하고 마트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게 현실이다.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공을 들여 생산한 알약 하나로 간편하게 건강해지고 싶은데 자꾸 손질하기도 어렵고 맛은없는데 부피는 많이 나가는 채소과일을 들먹이면 신뢰가 안가는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는 그 지루하고 고지식한 음식조언을 잊지 않고 챙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