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동 누나 Nov 07. 2023

그림 찾기를 해볼까!  런던 (1)

프리즈 런던 /  프리즈 마스터즈

2023년 10월 14일 


유난히 더웠던 여름 저녁,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게 딸이 말했다. "됐어!" 나는 "뭐가?"라고 물었고 딸은 "지원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잠시 숨을 몰아쉬고 남편을 불렀다. 그날 밤 남편은 딸이 결혼하는 날 마시겠다던 조니워커 블루를 마시며 말했다. "이제 부러울 것이 없네." 코로나로 합격이 취소되고 마음 고생했던 시간! 수 없이 지원서를 제출하고 실망했을 딸은 드디어 런던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힘든 시간이 지나고 거짓말 같은 순간이 왔다. 그리고 런던으로 이삿짐을 꾸리던 어느 날 딸이 내게 "프리즈 런던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고 말했다. 살면서 로또를 맞는 기분이 이럴까 싶었다. 딸이 지원한 회사에서 한 달간 아파트를 제공해 주었고 나는 2주 동안 딸과 런던에서 지내기로 했다. 10월 13일 히드로 공항에 내렸다. 커다란 밴을 타고 런던 시내를 지나 화이트채플 거리에 내려 회사 대행사에서 나와 숙소를 소개하는 젊은 여자를 따라 아파트 13층으로 들어섰다. 숙소는 깨끗하고 따뜻했다. 14시간 비행으로 지친 딸과 나는 저녁도 거르고 침대에 누웠다.


14일 아침, 어제의 비가 멈추고 화창한 날이 밝았다. 숙소에서 나와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프리즈 런던이 열리는 리젠트파크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초록의 아름다운 공원을 가로질러 천막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2000년 이전의 작품이 전시되는 프리즈 마스터즈를 먼저 보기로 예약했다. 약 130개 갤러리가 참가했다는 프리즈 마스터즈에 들어서니 하얀 천막 안에 갤러리들이 잘 정비되어 있다.


(프리즈 마스터즈 입구)
SKARSTEDT 갤러리 Andy Warhol의 Man Ray                      /       Camille Pissarro의 Charlotte Amalie

서울 프리즈 마스터즈에 작년에는 카우스의 작품을 올해는 윌렘 드 쿠닝의 작품을 선보였던 SKARSTEDT 갤러리에서 보석같은 작품을 만났다.

Pierre Bonnard  / Window in an Interior Courtyard

내가 좋아하는 피에르 보나르의 작품이다. 자신을 '마지막 인상주의자'라고 말했던 보나르는 일상적인 모습을 따뜻한 화풍으로 그렸다.

Gustave Courbet / Portrait of Mademoiselle Jacquet

수 많은 그림중에서 따뜻하게 마음에 다가온 그림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혹은 미술관에서도 보기 힘든 그림을 하얀 천막 안에서 찾아내는 즐거움이 힘들 때면 잠시 쉬어가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유명 갤러리의 이름을 확인하며 앤디워홀, 히에로니무스 보스, 피카소, 램브란트, 샤갈, 데이비드 호크니, 페르낭 레제, 앙리 마티스 등 의 거장의 작품들을 지나간다.  에곤쉴레의 자화상이 강렬하다.

                                  SCHIELE, EGON / Self Portrait (Male Nude)

강렬한 에곤쉴레의 작품 가격은 42,500 파운드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초판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70,000 파운드가 있다면!


프리즈 마스터즈에서 나와 2000년대 현대미술 작품과 생전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프리즈 런던으로 걸어가며 야외조각전시를 지나간다.


파란 하늘의 공원, 작품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


프리즈 마스터즈의 130 갤러리들의 작품을 둘러보고 리젠트 파크의 조각전을 둘러보니 몸도 마음도 내 것이 아닌 듯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다시 눈앞에 하얀 천막과 '프리즈 런던'이 다가왔다.


프리즈 마스터즈에 비해 설치작품이 많다.

실험적인 작품들 사이에 박서보 작가의 작품이 더 강렬하게 느껴진 것은 그날 박서보 화백이 타계하셨다는 뉴스를 접해서였는지 모르겠다.

박서보 / 묘법 (Ericture)


그림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그림과 마주하는 것 이상이다. 그림을 보고 나면 마음도 몸도 허기진다. 프리즈 마스터즈와 프리즈 런던을 하루에 본다는 것은 역시 힘들었다. 하얀 천막에서 마지막까지 그림 속 방랑자가 되어 돌아다니다 마감을 알리는 소리에 밖으로 나오니 공원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아쉬움에 하얀 천막을 돌아보았다.


런던의 리젠트 파크에서 열리는 프리즈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작년, 서울에서 열렸던 첫 번째 프리즈를 함께 여행하는 언니와 보았을 때도 행복했고 올 9월 두 번째 서울 프리즈 역시 좋았다. 그리고 서울 프리즈 한 달 만에 런던에 오는 행운을 얻었다. 오랜 시간 고생한 딸 덕분이다. 때로는 기대하지 않아도 선물처럼 다가오는 기쁨이 있다. 런던의 두 번째 밤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