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Hammersmith & City 라인 지하철을 타고 6 정류장을 지나 Euston Square 역에서 내린다. 바람이 차다. 조용한 길 왼편으로 University of London(런던대학)이 보인다. 바쁘게 걸어가는 학생들이 멋지다. 젊음의 시간이 부럽다. 길가에 작은 서점에 들어가 본다. 대학가라서 그런지 전공서적이 많은 듯, 일반 소설도 있다. 대영박물관 투어 10시 예약이 아니라면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작은 서점을 둘러본 것으로 만족한다. 커피 한잔 들고 나온다. 커피도 좋다.
커피를 마시며 도착한 대영박물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아직 오픈 전이고 전 세계의 언어가 들려온다. 나는 가이드 투어를 예약했다. 2004년 가을, 당시 초등생이었던 아이들과 이곳을 방문했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만 기억나는 것은 엄청난 크기의 박물관과 로제타석 그리고 이집트 유물등. 이번에는 전문가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10시 오픈과 동시에 들어가 대영박물관 정면 8개의 기둥 중에서 맨 좌측기둥에 오늘의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였다. 아들 나이의 젊은 선생님이 익숙하게 우리를 인솔한다. 차분한 설명으로 2시간 30분 The British Museum을 돌아보았다.
람세스 2세의 이집트 유물들
이집트 19왕조 3대왕 람세스 2세 / 고양이 여신 Gayer Anderson Cat
Rosettastone (로제타 스톤)
지금의 북이라크와 시리아 레바논 지역 일대를 점령했던 앗시리아의 화려했던 문화유산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안에 있어야 할 조각들과 터어키에서 발견되어 영국이 가져온 네레이드 신전, 그리고 이집트의 미라들,붕대 없이 노출된 미라까지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나 피곤하게 누워있다.
라마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상상의 동물) / 네레이드 신전 (Nereid Monument)
Moai Known as Hoa Hakananai'a about AD 1000-1200
그리고 마지막 칠레 이스타섬의 모아이 석상까지! 전 세계의 유물들을 허락도 없이 강탈했다고 밖에 표현되지 않는 The Great Britain 박물관을 나선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열심히 공부를 했더니 배가 고프다. 뮤지컬 극장이 모여있는 타워스트리트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니 이름도 예쁜 'The Ivy'라는 음식점이 숨어있다. 고풍스러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래된 영화에 나오는 예쁜 식당이다. 친절하게 예약여부를 물어보는 직원에게 예약은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직원이 나를 가운데 Bar 자리에 안내했다. 의자가 높은 Bar에 앉아 둘러보니 모두 백인들이다. 내가 그들을 둘러보는 동시에 그들의 시선이 내게 다가온다. 쌀쌀한 날씨를 녹여주는 예쁘고 맛있는 호박 수프와 새우 아보카도 칵테일 샐러드가 눈도 입도 사로잡는다.
두런두런 일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레스토랑의 가운데 섬, Bar에서 혼자 열심히 맛있게 먹고 일어났다. 예쁘고 친절한 직원이 맛있었는지 묻는다. 웃으며 너무 훌륭했다고 말해주었다. 회사에 있을 딸이 생각난다. 딸과 다시 오기로 마음먹고 문을 나서니 비가 내린다. 우산을 들고 내셔날갤러리로 향한다. 내셔날갤러리 앞 트라팔가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넬슨제독 기념비 뒤로 빅밴이 보이고 빗속에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분주하다. 누구에게나 무료인 너무나도 훌륭한 영국 최고의 미술관 앞에 잠시 줄을 서고 가방 검사를 하고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들어선다.
13세기부터 1900년에 이르는 유럽 회화 컬렉션을 소장하는 갤러리이다. 조토(Giotto)부터 르네상스 거장의 작품들과 인상파 그리고 영국의 화가들에 이르는 미술사의 중요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작품들이 보석이다.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마음을 가다듬는다.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제단화 '그리스도의 매장'과 라파엘로의 교황 '율리오 2세의 초상화'부터 시작한다.
Michelangelo 'The Entombment' / Raphael ' Portrait of Pope Julius II'
베네치아 르네상스 천재 화가 티치아노의 '바카스와 아리아드네',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를 지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를 마주한다. 2019년 루브르에서 보았던 암굴의 성모와 다른 느낌이다.
(왼쪽 루브르 박물관 / 오른쪽 내셔날 갤러리 'The Virgin of the Rocks')
보고 싶었던 카라바지오의 '엠마오의 저녁식사'와 램브란트의 그림들 그리고 루벤스와 17세기 플랑드르 학파의 그림들을 본다. 베르메르의 아름다운 그림을 지나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찾아간다.
살아서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을 뿐 인정받지 못하고 외롭게 살았던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빈센트의 의자' 앞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고흐의 그림 맞은편에 쇠라의 멋진 그림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가 있지만 사람들은 반 고흐의 그림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고 사진을 남기느라 분주하다. 조금 멀리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고 있다. 태양을 사랑했던 고흐는 아를의 노란 집에서 고갱과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해바라기를 그린다. 해바라기 연작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그림. 두꺼운 물감으로 희망과 행복을 담았을 고흐를 상상해 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고갱이 떠난 후에 그린 고흐의 그림 '빈센트의 의자'는 그의 고독을 나타낸다. 빈 의자 위에 그를 상징하는 파이프가 있다.
Vincent Van Gogh 'Sunflowers'
Vincent Van Gogh 'Vincent's Chair'
이 미술관에서 그저 길을 잃고 싶다!라는 생각처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 안나와 성 모자' 그림을 찾다가 정말로 길을 잃었다. 다빈치의 성 안나와 성 모자 스케치 그림을 찾아가는 길에 보고 싶었던 그림을 지나가고 확인하며 길을 잃어도 행복하다. 터너와 끌로드 로랭의 마주한 그림을 오래도록 보고 싶었지만 오늘 일과를 마친 딸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내일을 기약하며 미술관을 나왔다. 트라팔가 광장에 비가 멎었다. 쌀쌀한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