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으로 받은
아이들도 부모님의 소중함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짜증을 낼 때가 많다.
아이들도 담임의 소중함을 안다.
아니다.
담임의 소중함을 아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도
담임이 출장을 가면 아주 좋아한다.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을’이 된다는 점에서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은 같다.
해마다 4월과 5월이면 교생선생님들이 온다.
두 달 가까이 동고동락한 담임보다
이제 막 온 교생선생님을
아이들은 더 좋아한다.
일 년을 함께한 담임선생님하고 헤어질 때는
덤덤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아이들이
교생선생님과 헤어질 때는
울고 불고 편지를 쓰고, 선물을 건넨다.
그래도 교생선생님과는
한 달을 같이 보냈으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2박 3일 캠프를 가면
그곳에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젊은, 주로 남자 교관선생님들이 있다.
여학생들은 금세 사랑에 빠진다.
볼 때마다 환호하고
눈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리고 떠나는 날,
세상 서럽게 운다.
겨우 사흘을 만났을 뿐인데!
늘 보는 장면이라서
우리 교사들은 한 발짝 물러서서
웃으며 지켜본다.
사랑에 빠진 속도와 같은 속도로
잊을 거란 것도 안다.
또 다른 캠프에 가면
아이들은 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마음을 쉽게 옮기지 못하고
생각보다 오래 기억한다.
내가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받은,
무려 40년 전의 편지다.
「유현숙 선생님께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셔요?
진작에 편지를 올려야 하는데 죄송해요.
저는 전주 OO중학교에 다니는
1학년 3반 김연상이라고 해요.
선생님께서는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선생님을 잘 알아요.
저는 문에서 두 번째 줄 맨 앞에 있어요.
그래도 모르시겠다면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수업이 끝날 때마다
선생님 옆에서 장난도 치고
몸을 선생님께 기대었던 애예요.
선생님 우리 반 아이들 보면
누나도 있고 동생도 있는 애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누나도 동생도 없어요.
그래서인지 선생님을 누나라고 부르고 싶네요.
선생님.
선생님이 가시고 나니까
또 다른 학교에서 교생선생님이 많이 오셨어요.
과학 교생선생님도 오셨는데
그전 마냥 기분이 좋지가 않아요.
누나라고 부르고 싶은 선생님.
선생님이 우리들과 헤어지는 날
선생님께선 눈물을 글썽이셨죠.
저는 그때 막 울고 싶었답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섭섭한 마음 때문이겠지요.
인연이 있으면 언젠가는 또 만나리라 생각하고
이만 글을 줄이겠어요.
몸 건강하게 안녕히 계세요.
1986년 5월 22일 밤 8시 45분 19초
연상 올림」
시내의 규모가 꽤 큰 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었다.
담임은 2학년 5반,
수업은 1학년과 2학년 몇 개 반을 맡았다.
그때 1학년이었던 아이의 편지다.
우선 놀라운 것은
저 정갈한 글씨다.
웃음 포인트도 여러 군데 있다.
자신을 설명한
'저는 문에서 두 번째 줄 맨 앞에 있어요.'
이 문장에서
어김없이 웃음이 난다.
친하게 지냈으나 담임이 아니었으니
기억 못 할 수도 있다는 약간의 불안함이 있었을까?
그래서 더 자세히 자신을 설명한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수업이 끝날 때마다
선생님 옆에서 장난도 치고
몸을 선생님께 기대었던 애예요.'
이 대목에서는
아이의 얼굴이 또렷이 떠오른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서 나와 교무실로 갈 때까지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바라보며 함께 걷던,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을 만큼 작고
밤톨처럼 귀여운 아이였다.
신기한 것은
남자아이들은 편지에 시간을
몇 초까지 저렇게 자세히 쓴다.
「교생선생님께
창가에선 달빛이 도도히 흐르고
푸른 밤의 하늘에
별들의 노래가 은하수로 메아리치고
교생선생님의 투명한 모습이
허공에 나타납니다.
그동안 몸 건강히 잘 있었는지요.
저는 학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있었을 때는 심심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갔을 때에는 심심합니다.
교생 선생님이 가시는 날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그냥 눈물이 나올라고 했습니다.
5주간을 보냈는데 1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그 짧은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갈 줄이야 몰랐습니다.
전화를 하려고 해도 시간이 없어서 못했습니다.
편지도 하려면 생각이 안 나서 못썼습니다.
마침 스승의 날이라서 편지 쓰는 겁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몸 건강히 계세요.
1986년 5월 13일
근중 올림」
이 편지는
내가 담임이던 반의 학생이 쓴 것이다.
편지지를 펼쳐 놓고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는
중2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도입부는
어디선가 베껴 온 것 같기도 하고,
어설퍼서 오히려
직접 쓴 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편지지 사이에 끼워 넣은 나뭇잎 하나.
이 아이가 얼마나 감성적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다.
'선생님이 갔을 때는 심심합니다'는
'선생님이 보고 싶어요'겠지?
'안 좋았습니다', '... 읍니다'라는 표현에서
얼마나 오래전인지 실감이 난다.
'선생님하고 헤어진 지가 벌써 2일째 되지요.
... 이렇게 막상 우리들 곁을 떠나니
하루가 1년 아니 10년이 지난 것 같군요...'
사랑을 듬뿍 주고
한 달 만에 가버린 교생선생님.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허전하고 그리운 시간이었을까.
계산해 보니
이제 쉰을 훌쩍 넘겼을 나이다.
믿을 수 없다.
아이들의 나이도,
내 나이도.
막연하게
'살다 보면 다시 만날 날도 있겠지...' 하고 헤어진 뒤
다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지막 인사인지도 모르고
건넨 인사들.
'인연이 있으면 언젠가는 또 만나리라 생각하고
이만 글을 줄이겠어요.'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했으니
연상이와의 인연은 저기까지였다.
덕분에?
내 기억 속에서 아직도,
어쩌면 영원히
사랑스런 중학생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