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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앙카 Dec 30. 2022

언니! 너무 산으로 가는 거 아니야?

내가 가는 길

 인간관계가 어려운 내게 10년 넘게 이어온 모임이 있다. 이직을 하고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이다. 무시무시하고 괴팍한 부장을 와그작와그작 씹기 위해 똘똘 뭉치게 된 우리 다섯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주 돈독한 정을 쌓았다. (그 당시 일이 고되고 상사가 힘들게 할 때마다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항상 힘이 되어주었다. 멀리 페루에 있는 동안 안부를 자주 물어와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다.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모여야 안겠냐며 언제나 선두지휘하는 막내가 카톡방에서 말한다.

모임을 주선하는 이는 어디를 가든 꼭 있게 마련이다. 지영이는 식당에 앉아 휴대폰으로 메뉴를 주문하고 할인을 받고 서비스 메뉴까지 얻어낸다. 내가 모르는 영역이다. 직원을 부르지 않고 주문을 하다니. 신기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인지 대단히 궁금하지는 않다.   




 연말모임으로 오랜만에 모인 우리는 근황토크로 시작하여 내년 계획에 대해 서로 물었다. 제과제빵 자격증을 준비하고, 아이 초등입학을 위해 이사 예정이라고 한다. 누구는 회사에 새로 도입된 시스템 테스트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자연스레 내 차례가 되었다. '이 말'을 빼면 나는 아무 계획도 없는 꼴이 되는데 짧은 순간 고민이 많았다.  

'아, 은경 선생님이 주변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랬는데, 제발 링크 같은 거 보내지 말랬는데...'

입은 근질거리고 나도 뭐 하나쯤은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쩌지?라고 결정할 틈 없이 참을성 없는 입이 사고를 쳤다.   


"어... 브런치라고,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서 생각을 나누는 플랫폼인데, 나 브런치 작가가 됐어.  이은경 선생님 강의 중에 브런치 작가 프로젝트가 있었거든. 거기에 신청했다가 얼떨결에 도전했고 그 심사에 합격했어. 그래서 요즘 글 쓰고 있어. 1년 동안 100개 쓰는 게 목표야. 정말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는데 매거진으로 묶어서 꼭 완성하고 싶어 "

이왕 고백한 거 한 껏 포장해 근사한 걸 시작한 듯 말하고 싶었다.


내 말을 듣고 옆에 현정이가 물을 뿜을 뻔했다.

"언니! 글을 쓴다고? 대~박. 너무 산으로 가는 거 아니야?"


"브런치가 뭐야?"

"그럼 이제 작가야? 김작가? 어디 가면 네 글을 볼 수 있는데?"

"쓴 거 보내줘봐 봐~"


나는 맹세코 상처받지 않았다.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길이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할 뿐이니. 그렇다고 지금 나는 누구의 말 따위에 흔들리거나 상처받는 자아가 아니다. 아무리 나와 가까운 누구라도 내가 쓴 글을 좋아해 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은 혼자만의 착각일 뿐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브런치 프로젝트 강의를 듣고 같은 뜻을 가진 <얘들아> 동기들 덕분에 첫 글에 합격했다. 감격스럽고 기뻤다. 정말 오랜만에 무엇인가를 해낸 순간이었다. 나의 합격 소식에 남편은 무척 놀랐지만 축하해주고 기뻐해 주었다. 실시간으로 브런치에 접속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 한 편, 두 편 발행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심 그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자기야, 나 글쓰기 잘한 것 같아?"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남편은 입을 떼었다.

"현실적으로 공인중개사 시험공부가 더 낫지. 자기가 지금 브런치를 너무 좋아하니깐 말리지는 않겠지만 결과가 눈에 보이는 공인중개사 시험이나 다음 주재 나갈 것을 대비해 영어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깝지 않나?"


 이 반응도 이미 예고된 바가 있다. 예고된 그대로 흘러가니 솔직히 실망스럽다. 마음의 준비는 하였으나 반전을 바랐나 보다.


나는 정말 저 멀리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왜 다 아니라고 하지?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며, 학원 앞 아이를 기다리며, 청소기를 돌릴 때에도 계속 생각해 본다.


나는 아주 잘하고 있다.  잘못된 길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길이다.



오늘은 이렇게 확신을 하지만 내일 또다시 같은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수없이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봐~' 라며 물어오고 의심할 수도 있다.

 

그때 나는 나에게 질문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계속 쭉~살래? 너는 지금의 네가 마음에 드니?"


등산의 기쁨은 정상에 올랐을 때뿐만 아니라 정상까지 가는 그 길에 있다.
 - 크리스 보닝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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