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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앙카 Jan 18. 2023

[독서모임] 오후의 글쓰기/이은경 지음

 정해진 시간, 분량을 쓰고 계십니까?

 '인간은 모두가 다르게 태어났는데 왜 자꾸 다른 사람과 너를 비교하려고 하니? 너는 너야.

 눈을 아주 크게 뜨고 잘 찾아보면 너도 매력과 장점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고. 마흔이 넘어 잃어버린 너 자신을 찾아보겠다고 글을 쓰기 시작했으면서 왜 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니? 그래. 그들을 부러워하는 마음? 이해해. 그들이 대단해 보이는 것도 당연해. 화면으로 보니깐 얼굴도 예뻐, 글도 잘 써, 어머! 오늘 보니 말도 어쩜 저렇게 잘하니. 어딜 가나 인정받고 분명 아이들도 기똥차게 키우고 있을 거야. 너는 그렇지 못하다고 비교하며 자책하지 마. 존경은 하되 그만 쭈구리처럼 굴라고. 당당해지라고. 너는 너로서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고 너로서 충분히 예쁜 사람이니까. 자자. 알겠지? 다시 기억해! 너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거야. 거봐. 이렇게 키보드에 대고 뭐라도 두드리고 있잖아. 좋아. 아주 좋아. 이것이 바로 독서의 효과인가? 자기반성이 좀. 빠른데?'


 주걱으로 크게 3인분의 밥을 프라이팬에 때려 넣고 힘차게 웍질을 한다. 20분 안에 휘리릭 조리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치즈스팸김치볶음밥.

 스팸을 네모조각내고, 김치를 적당히 썰면서 혼자 생각하고 혼잣말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긴 버릇은 혼묻혼답이다(혼자 묻고 혼자 답하기).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낸다.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하는 쓸데없는 생각은 김치볶음밥에 모조리 볶아버리라고. 나는 나대로 괜찮은 사람이니까. 이제 시작한 내 10개 글들이 지금은 좀 흐리멍텅 구리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제법 향기도 나고 색도 선명해질 거라고.  



 

  '글쓰담' 독서모임으로 선정된 첫 책은 이은경 작가의 <오후의 글쓰기>였다.

 오늘 모인 인원이 대략 16명이었는데, 4명씩 나눠 소그룹을 만들어 분리했다. 발제자가 준비한 발제문을 토대로 나의 생각과 느낀 점을 돌아가며 말하는 방식이었다. 내 차례가 되었고, 누구든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처음 해보는 독서모임에서 카메라를 앞에 두고 말하기 쑥스럽기도 하고 말하는 내내 횡설수설했던 것이 많이 아쉬웠다. 다른 분들의 말재주와 뚜렷한 본인들만의 생각에 기가 죽어 내 심장은 쿵쾅쿵쾅. 머리는 뒤죽박죽. 결국 엉망으로 내뱉던 말들을 다시 주어모아 이 새하얀 공간을 빌려 말해보려 한다.

 이은경 작가와 카페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핑크색 포스트잇에 휘갈겨 쓴 메모 중 몇 가지만 골라 정리해 봤다.



 제가 고군분투하며 혼자서 스스로를 돕던 시절에는 캄캄한 새벽, 곤한 오후, 늦은 밤의 아주 작은 틈을 가리지 않고 썼습니다. 어수선한 주방의 식탁, 동네 도서관의 딱딱하고 낡은 책상, 사장님 눈치가 보여 한 잔 더 주문할지 말지를 수없이 망설이던 카페의 테이블, 달리는 기차, 비행기 안의 작은 받침대가 온통 서재였고요. (중략)                                                                                 -25p


- 오늘도 늦잠을 잤다. 토요일 아침 10시가 넘었고, 남편과 아이들은 이미 깨어있었지만 더 자고 싶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어쩌면 나는 이은경 작가의 4년이라는 시간 속에 스스로를 돕는 시간이 없이 하늘이 나를 돕기만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티브이만 틀면 나오는 유명인사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튜버, 인플루언서들이 현재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 스스로를 도왔던 무수한 시간들을 모른척한 채, 갑자기 하늘에서 번쩍 하고 내 눈에 나타났다고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드디어 입금을 확인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바로 그 돈이 내 통장에 있다. 무려 100억 원. 이제 이 돈으로 무얼 해볼까?                                                                    
                                                                                               오늘의 글쓰기 과제 -40p


- 부모님 식당 쉬시게 하고 해외여행 보내드리기, 호텔 레스토랑에서 외식하기, 양가 부모님들 맛있는 거 사드리고 실컷 쇼핑해드리기, 미용실 가서 머리하고 신발사기, 공부하러 유학 가기, 남편 일 쉬게 하기, 아이들 통장, 주식에 돈 넣어주기. 대출 갚기.

 100억이 생기면 무얼 할지 쓰고 나니 뭐 대단할 것도 없는 것 같다. 현실은 매우 쪼들리지만 꼭 100억이 아니더라도 알바 뛰고 여유가 생기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돈을 써도 써도 남는 상황이라면 좀 많이 다르겠지만. 그럼 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에 기록이 하고 싶은 것도 같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 사진첩만 들여다봐서는 그때의 내가, 그때의 상황이 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의 기억과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소통의 도구가 내 글쓰기 이유의 시작일 것이다. 돈을 시작으로 글을 썼지만 글 쓰는 것을 지속하는 힘은 돈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 것에 동의한다.


 글도 꼭 그래요. 블로그, 브런치, SNS 등에 글을 올리고 나면 궁금해져요. 묵직한 내용을 담은 긴 글이든 사진과 함께 올린 가볍고 짧은 글이든 내 손을 떠난 글의 안부가 궁금해 재차 살피게 됩니다.
(중략) 나도 내 글이 여러모로 부족함을 알지만 그래도 누가 좀 와서 잠시라도 읽어주기를 그간의 우리는 얼마나 고대했던가요.                                                          혹평, 긍정적인 증거 81-82P


 - <얘들아> 브런치 1기 동기들에게 감사하다. 내 글은 첫 합격글 '지구 반대편 김장이야기' 말고는 아직 폭발적 조회수를 올린 적 없이, 아주 작고 귀엽다.  <얘들아> 동기들이 읽어주는 덕분에 쓸 용기가 발행할 때마다 조금씩 더 생긴다. 나의 이 부족한 글들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 Daum에도 올라오고 조회수가 많아져 내 글을 향한 날 선 댓글에 상처를 받는 상상도 해본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는데, "오후 3시, 브런치 인기글', '에디터픽 최신 글'에 비앙카 님의 글이 올라온다. 나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 악플도 캡처 뜨고 싶다는 상상을 하며 혼자 실실거려본다. 아마 실제 상황이 되면 부들부들 떨며 남편을 붙잡고 와인을 2병은 거뜬히 까며 울고불고할지도 모른다.      



그냥 틈틈이 좀 썼어, 하고 무심한 척 놀라게 해 줄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어른 개구리들의 비밀스럽고 은밀한
글쓰기를 시작합시다.

 


- 애들 학원비가 모지라 블로그나 해서 30만 원만 벌어보려고 했더니 청개구리처럼 브런치를 하네. 1년이 지나면 분명히 오늘의 이 글 보다 좋아질 거라고 확신한다. 글이란 게 다이어트와 상당히 유사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고 했다. 다이어트는 살짝만 방심해도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거나 더 찌게 해서 사람 약 오르게 만들지만 글쓰기는 아무리 방심해도 예전으로 돌아가거나 더 나빠지지 않는다고. 성장만 있고 후퇴는 없다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때에 비하면 훨씬 더 잘 쓰고 있다. 브런치 첫 글보다 11번째 쓰는 이 글이 훨씬 빨리 잘 써지고 있다. 신뢰 가는 말이다.


 

 겨우 30분 먼저 일어나 식탁에 앉아 몇 줄 쓴 것만으로 이렇게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니, 더구나 이건 공짜라고요!    
                                                                           글로시작하는 묘한 느낌의 하루  134p


- 자금 사정이 여유로웠다면 복잡하고 답답한 마음과 밀려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예전처럼 골프, 헬스, 누군가와의 수다로 썼을 것이다. 운동을 하려고 해도 돈이 들고 누군가를 만나려 해도 돈이 든다. 장비를 사야 하고 회원권을 끊어야 하고 커피값을 내야 하고. 하지만 글쓰기는 공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고 노트북을 열고 쓰기만 하면 된다. 약속한 발행일을 지켰을 때의 기분은 돈을 쓰지 않고도 무언가를 얻어가는 그런 느낌이다. 위대한 일의 시작이라고 하니 기분이 좋다. 이 부분이 제일 좋았다. 글을 쓰고 책을 읽기 위해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키보드를 두드렸을 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자세히 하고자 애썼던 행동들로 내 기분이 달라지고 있다. 몇 날 며칠 스윙 연습하고 잔뜩 멋 부리고 준비해 라운딩 나가서 드라이버 굿샷을 날릴 때와 눈곱도 떼지 않고 부스스한 머리에 커피 한잔에 의지해 키보드에 다다다 글쓰기했던 날을 비교해 글도 써보고 싶다. 어떻게 다른 느낌인지.  




 

한 문장 한 문장 꾹꾹 눌러가며 읽었고, 작가와 마주앉아 대화해 본 첫 책.  



그런데, 오늘 모임에서 나는 왜 궁금했던 질문을 하지 못했을까? 이 부분이 제일 좋았다고 말하는 게 왜 그리 어려웠을까? <오후의 글쓰기>를 읽으면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달아날까 휘갈겨 쓴 핑크색 포스트잇을 가만히 쳐다보고 한숨짓는다. 다음번 모임땐 말을 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소심한 질문을 던져본다.


작가님은 정해진 시간, 분량을 쓰고 계십니까?




사진: pixabay와 내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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