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리마에 도착한 것은 8월 중순쯤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 계속되었다. 1년 내내 비가 오지 않으니 우산도 필요 없다면서 하늘은 왜 만날 울상을 하고 있을까? 이국적이고 예쁜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보고 싶어서 각도를 달리해본다. 휴대폰을 들고 빙그르르 돌아도 본다. 전혀 예쁘지 않다. 카메라를 잡은 내 손도 문제지만, 화사한 풍경은 결코 아니다. 내일은 해가뜰까? 그러면 좀 예쁜 사진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리마의 7-9월은 1년 중 가장 우울할 때다. 특히 밤공기는 차갑고 으슬으슬 춥다. 목욕을 하고 나오면 욕실에서 시작된 습한 공기가 빠져나와 파우더 룸에 가득 찬다. 욕실과 주변은 사우나에서나 볼 수 있는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화장실 창문을 열어 두지만 크게 소용이 없다. 바깥도 습하기는 마찬가지다. 리마의 습한 겨울날씨가 낯설었다.
아이들 드레스룸에서 꿉꿉하고 쾌쾌한 지하실 냄새가 났다. 심하지 않지만 예민한 후각을 괴롭히니 자꾸 신경이 쓰였다. 원인을 찾으려고 코를 이리저리 킁킁대 보았다. 아무래도 아이들 방 화장실에서 드레스룸으로 이어지는 공간이 환기가 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어디서 곰팡이가 피었나 의심스러웠다. 아직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설마.
이삿짐을 정리하고 얼마 뒤, 아이들이 욕조에서 물놀이하고 싶다고 해서 물을 한가득 받고 신나게 놀았다. 장난감과 물총을 가지고 욕실이 물바다가 되도록 한참을 놀고 나왔다. 문제는 다음날 벌어졌다. 아이들 드레스 룸의 벽 아래쪽 바닥에 하얀 가루가 떨어져 있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벽의 일부분이 울퉁불퉁하게 변했고, 살살 만지니 페인트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오 마이 갓.
물어볼 곳이 마땅하지 않아 주재원 선배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벽에서 하얀 가루가 떨어져 나왔어요. 사진 보셨나요?"
"그거 습해서 그래요. 혹시 거실복도예요? 화장실 주변인가요? 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 그럴 수 있어요."
"아... 네. 아이들 화장실 나와서 드레스 룸이요. 아이들 방이라 신경 쓰여요"
"다 긁어내서 새로 페인트 칠해야 할 거예요. 새로 칠해도 다음 해에 또 그러니 저는 이제 귀찮아서 액자나 그림으로 가려놔요. 호호호. 드레스 룸에 제습기를 종일 틀어놔야 해요. 물통 한가득 찰 거예요. 아! 집주인한테 연락해서 관리인 보내달라 하셔요"
서둘러 한국에서 가져온 제습기를 돌렸다. 만만하게 볼게 아니었던 것이다. 몇 시간 만에 정말 물이 한가득 채워졌다. 한국 여름 장마 때도 제습기를 튼 적이 없는데. 관리인 말은 욕조와 맞닿아 있는 벽 쪽으로 누수가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그럼 부실공사인가? 이유야 어쨌든 그 뒤로 아이들 화장실에서 샤워와 물놀이를 하지 못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새로 칠한 벽이 또다시 울퉁불퉁 모양이 되었다. 나 역시 페인트 벽이 뜯어지는 것쯤은 익숙해질 때가 되자 예쁜 그림을 사다 덮었다. 이것 말고도 관리인 부를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리마에서 자주 쓰는 인사말이다.
"Hoy salió el sol?? - 오늘 해가 떴나요?"
해가 뜨면 우리는 기분이 좋다. 구름이 해를 가리면 좀 우울하다.
짧은 여름은 붙잡고 늘어지고 싶을 만큼 좋다. 우리는 해가 뜨거운 여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집에서 조금만 운전해 나가면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마음이 답답한 날엔 바다를 보러 미라플로레스로 갔다.
리마로 가시는 분들을 위한 Tip
미라플로레스(Mira flores)는 접근성이 좋고 예쁘고 아기자기하지만 바다에 가까워 해무가 심한 날엔 더 습합니다. 이국적인 느낌이 좋다 하시는 분들은 미라플로레스를 날씨와 상관없이 선호하십니다. 회사나 학교를 고려해 산이시드로(San isidro)로 가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습한 날씨를 피해 해가 더 잘 나오는 까마초(camacho), 라몰리나(La molina)로 옮겨 거주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쪽은 확실히 해가 잘 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