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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앙카 Apr 05. 2023

하늘로 굿샷

알딸딸 부부가 급격히 친해지는 시간

'자기야, 역대급 라인업이야. 박인비, 유소연, 이정은, 김하늘이 친구였어? 넷이 같이 나와~ 박인비 대박이야. 엄청 웃겨. 시간 날 때 꼭 봐!'

새로 발견한 김하늘 프로의 '하늘로 굿샷'이다. 이름 한번 기똥차다. 하늘로 굿샷이라니! 듣기만 해도 벌써 설렌다. 회사에서 한창 일할 시간인 남편에게 유튜브 링크를 걸어 전송했다. 남편이 똥 누러 갈 때라도 빨리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주말이면 남편과 골프 방송을 찾아본다. PGA, LPGA 중계, 최근에는 김하늘 프로의 하늘로 굿샷, 최나연 프로의 나연이즈백, 김국진tv_거침없는 골프를 주로 보고 있다. 프로들의 완벽한 스윙과 하늘로 뻣어가는 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필드에 나가면 나도 저렇게 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내 머릿속은 푸르른 잔디밭에 하늘로 굿샷을 날리는 상상으로 가득하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 골프백에서 드라이버를 꺼내 거실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휘두르고 싶은 충동이 들면 남편은 뭐 하나 깨 먹겠다고 나를 진정시킨다. 어느새 남편을 넘어선 골프 중독 수준이 되었다.  



 남편은 계획이 있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골프를 평생 부부가 실컷 즐기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었고 나는 말한다. 남편은 골프 클래스를 끊어놓고, 골프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옷, 신발, 모자, 벨트 심지어 양말까지 다 준비해 놓았다. "짜잔! 이제 당신은 치기만 하면 돼!" 그게 골프의 시작이었다. 시작할 때 친구가 있으면 더 재밌으니 주변 친구들을 꼬셔보라는 둥,  내 마누라는 골프웨어도 찰떡같이 소화한다며 칭찬을 자주 해주었다. 진심 어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을 하니, 골프치마를 입고 있는 짧고 튼튼한 내 무다리가 어째서 조금 가늘어 보이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골프 치는 날은 휴가를 내서라도 아이들을 봐주고, 출근을 조금 늦게 해서 아이들 등교를 시켜준다. 마음이 편해야 공도 잘 맞는다고 아내 외조를 해주는 것이다. 이런 외조를 받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남편이 애들 등교시켰다고 하면, 남편이 회사 휴가 냈다고 하면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애들 걱정은 하지 말고 신나게 놀고 오라며 라운딩 전날 골프백 점검을 해준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골프공 하나하나 줄을 그어준다.  


 잔디밭을 걸어갈 때 우리는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간다. 아직도 손잡고 팔짱 끼는 게 좋다. 시원한 바람을 함께 맞으며 카트를 타고 달리기도 한다. 서로의 공을 찾아주느라 시선은 늘 앞을 향한다. 남편의 굿샷에 기뻐해주면 그의 양 어깨가 봉긋 솟아오른다. 미스샷이 나올 때 멋쩍어 껄껄껄 웃으면, 그럴 땐 이렇게 치는 거라며 남편 앞에서 뽐을 내다가 나도 삑사리를 낸다. 그럼 같이 크게 웃는다.   


 무엇보다 남편은 절대 훈수 두지 않는다. 공이 잘 안 맞아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소리를 절대 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한테 이 얘기 저 얘기 들으면 더 헷갈려. 지금 스윙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프로님께 보여주자. 오늘 라운딩에서 자꾸 이렇게 실수했다고~" 잘 못 친 날도 남편한테 잔소리를 듣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그래서 긴장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골프를 좋아하게 만들려는 남편의 작전이었고 수작이었다고 말한다. 친구, 동료들과 골프 치러 간다고 해도 바가지 벅벅 긁고 눈치 주는 와이프가 아니라, 웃으며 잘 갔다 오라고 손 흔들어주는 와이프가 되었으니 말이다.  


나와 당신, 둘만의 이야기


 부부가 공통 취미를 가지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가 들어 자식이 부모 곁을 떠나가면 결국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최고라고. 그래서 둘이 함께 하는 게 있으면 좋다고 말이다.


 나는 드라마,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남편은 드라마라면 질색팔색을 한다. 남편은 농구, 야구 등 스포츠 채널 보는 걸 좋아하는데 나는 지루하고 별로다. 남편은 무협지를 좋아하고 나는 달달한 연애소설이나 에세이, 자기 계발 분야가 좋다. 연애할 때부터 딱 한 번만 나와 클럽에 가달라고 조르고 졸라도 그는 춤이라면 절레절레 고래를 흔들었다. 음악은 같이 들어도 춤은 절대 같이 춰주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계획에 없던 아이를 연달아 둘이나 낳았다. 어느새 우리 부부의 화제는 아이들, 가족행사 이야기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나와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쏙 빠져있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없어서 함께 있지만 따로인 느낌이 들었던 걸까? 언제부터인가 공허했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서로 좋아하는 게 달라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걸 바라보고 있었다.


  관심조차 없었던 골프가 그렇게 좋았던 이유는 바로 '나'와 '우리'에 있었다.  연년생 육아로 지쳐있었고 나를 잃어갈 때쯤 받은 선물 같은 거였다. 채를 휘두르고, 공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온전히 '나'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남편과 골프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이야기가 생겨나니 서로 마주 보고 웃는 날이 많아졌다.


 



 남편이 등산을 좋아해서 내게 산을 권했다면, 지금 우리는 산을 타고 있을까? 서로 읽는 책의 취향이 비슷했다면 우리는 지금 같은 책을 읽고 있을까? 내가 보는 드라마를 남편이 좋아했다면 맥주에 오징어를 뜯으며 주인공 어떡하냐며 함께 안타까워했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너무 늦지 않게 우리 부부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할 뿐이다. 오늘도 그와 하늘로 굿샷을 날리며, 손을 잡고 걷는다. 오늘도 좋아하는 골프 채널을 틀어놓고 잔에 맥주를 따른다.   

"으아~저렇게 쳐야 하는데 말이야" 그는 프로의 멋진 스윙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스윙 연습을 한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에 웃음이 난다.



 그의 더 큰 그림은 아내, 아들 둘과 넷이서 라운딩을 나가는 것이란다. 어린 두 아들은 가끔 엄마아빠와 스크린 골프를 치러 가자고 한다. 그의 계획대로 그려질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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