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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앙카 Aug 24. 2023

생일 선물로 받은 안방 베란다 서재

나도 책상이 생겼다.

남편은 차르르 나비 커튼만 도착하면 베란다 서재 설치가 끝난다고 한다.  


이제 자잘하게 꾸미는 것은 나의 몫이다.

하얀 벽에 뭔가 있어 보이는 메모장을 걸어야겠다. 패브릭 포스터가 더 나으려나?  

책상 아래 작은 휴지통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지우개 가루 청소하는 지우개 청소기도 하나 사야 한다.

항상 아무 곳에나 내팽겨 치는 가방을 위해 '가방걸이'가 필요하다.  마우스 패드도 하나 깜찍한 것으로 바꾸고 싶다.





남편 기억에 따르자면,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어?"

"음... 내 책상? 으흐흐....."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편이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은지 물었단다. 내 대답은 '나만의 공간, 내 책상, 엄마책상'이었단다. 남편은 그것을 기억해 줬다. 아마도 기분 좋은 날, 술을 많이 마시고 술김에 내 책상, 내 공간을 갖고 싶다고 술주정을 했었나 보다. 아니면 평소에도 내 책상 하나 없다고 투덜투덜했던 것을 남편이 기억해 줬을지도.


식탁 한편 내 자리에 노트북과  읽다만 책들, 노트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매번 끼니때만 되면 책들과 잡동사니들을 소파 앞 테이블에 옮겼다 놨다를 반복했다. 결정장애를 가지고 있고, 뭐든 내 것은 잘 사지 못해 내 책상 하나 고르는데 몇 날 며칠이 걸렸다. 일단 구매 버튼을 누르고 나니, 책상을 놓기로 한 공간을 치우는 것도 조립설치하는 것도 빨랐다. 남편의 이번주 여름휴가는 반은 속초여행, 반은 와이프 서재 만드는 것으로 썼다.  





공간은 저마다 역할이 있다. 아이들이 쉬고 공부하는 침실과 공부방, 가족 모두가 함께 티브이도 보고 책을 읽고 대화하는 거실, 남편의 Bar는 아이들 재운 늦은 밤 와인 한잔 기울이는 부부의 공간.

안방 베란다에 있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짐들을 정리하고 나니, 하루아침 사이 내 서재가 생겼다. 몇 년째 버리지 못하고 구석에 박혀있던 책들을 책장에 꽂았다. 남편이 하나하나 조립해 준 책상과 의자, 예쁜 바닥 타일을 깔아준다고 뜯었다 붙였다 땀을 한 바가지 흘려 완성시킨 원목무늬 타일.

곧 도착할 커튼과 커튼레일.

결혼하고 곧바로 임신해 내 책상을 시댁에 보내고, 내 책상 대신 아이들 장난감과 책들로 채워졌었다. 11년 만에 내 책상이 생기니 감개무량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싶다.




오늘은 베란다 서재 완성 기념으로 늦은 생일 케이크, 내 생일 축하 파티를 했다.


"자기야, 여기서 이제 글도 마음껏 쓰고, 책도 편하게 읽어~"

"우와, 엄마 책상 멋있다!"

"엄마 책상 생긴 기념으로 무드등 선물이야."


이제 이곳에서 마음껏 눈치 보지 않고 내 시간을 즐겨보자.

불현듯 남편이 베란다 서재 만들어준 것을 후회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스친다. 하하하.

"엄마 8시 퇴근이다. 이제 이곳에서 안 나올 거야~"


뒤늦은 후회는 소용없습니다.

비앙카야, 마흔 너의 생일 축하해.


세월을 살다 보니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나를 드러내지 않았을 때 뜻하지 않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더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며느리 너도 너를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아서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었어.

너의 남편, 아이들에게도 "나는 이런 사람이고,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것을 잘한다"라고 가족들에게 표현하고 드러냈으면 해. 전업주부가 되고 나면 나를 드러내는 대신 가족을 위해 내 감정이나 생각은 표현하지 않게돼.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이런 사람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아.   

- 오늘, 8월 24일. 어머님과의 통화 내용을, 기억을 더듬어... 더 고급지고 멋진 표현을 해주신 어머님의 언어를 구현해 내지 못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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