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조성이 잘 되어있는 차카리아 수르꼬(Chacarilla, Surco)에 살았다. 이곳에 좋다고 소문난 몇몇 니도(Nido, 어린이집)를 추천받았는데, 운 좋게도 우리 집 바로 옆에(도보 1분 거리) 평가가 좋은 니도가 있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초 근거리 당첨이었다. 다섯 살, 큰 아이는 국제학교 입학이 바로 가능했지만 스페인어 현지적응을 먼저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국제학교 입학을 미루고 10개월 정도 니도(Nido, 어린이집)에 동생과 함께 보냈다. 아직 어린 나이기 때문에 영어나 국제학교 입학이 급하지 않았다.
페루의 니도가 다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Nido Arcobaleno(무지개 어린이집)는 작은 어린이 미술관에 온 느낌이었다. 입구를 지키는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들어가면 초록색 인조 잔디가 탁 트인 공간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기 충분했고, 교실 문이 활짝 열린 실내와 야외가 연결되어 답답함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발걸음이 지나는 곳곳에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작품이 니도의 안팎을 전부 장식하고 있었고, 지붕이 없는 하늘 위로 알록달록 우산들이 매달려 있었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서로 다른 반으로 배정되었지만 선생님들은 반에 제일 똑똑하고 야무진 친구를 옆에 붙여주고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생김새도 다르고 다른 언어를 쓰는 동양인 아이들이 신기했는지 먼저 다가와주고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금방 친해졌다. 페루는 한쪽 볼에 뽀뽀를 하면서 인사한다. 니도에 가면 '올라~ 서준, 수현'을 외치며 안아주고 볼에 뽀뽀하는 스킨십 때문에 좀 더 빨리 친근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반 선생님 (Miss. Angie)이 간단한 스페인어 단어와 문장이 쓰여있는 A4 종이를 건넸다.
'안녕, 잘 지내니, 내일 보자, 좋아, 고마워, 여기, 안돼' 등 간단하지만 평소 자주 쓰는 말들과 교실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적혀 있었다.
"여기 반쪽에 한국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발음을 써주세요. 아이들이 스페인어를 이해하지 못 할 때는 한국어로 해볼게요. 물론 발음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눈이 크고 예뻤던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헤어질 때까지 사랑을 듬뿍 주었던 그녀다. 아이들이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하면 한국어 발음을 적은 종이를 주머니에서 꺼내 한국어로 말해주었다. 이곳에서 처음 만났던 페루인들은 사랑이 넘쳤으며 무척 친절했다. 무엇이든 기꺼이 도와주고 알려주었다.
한국에서는 어린이집 문 앞에서 아이가 엄마와 헤어지면 아이는 대성통곡을 한다. 엄마는 아이가 더 힘들어할까 봐 도망가기 바쁘고, 얼마 뒤 선생님은 아이가 안정이 됐으니 걱정 말라고 메세지를 보내 안심시켜주곤 한다. 엄마가 어린이집에 들어와 앉아 참관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페루에서는 내가 외국인이다 보니 특별한 케이스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 어느 때든 아이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있던 없던 늘 같은 모습이었다. 처음 한 달은 선생님께서 내 스페인어에 도움이 될 테니 수업에 같이 있어도 좋다고 머물고 싶은 만큼 있다가 가고 싶을 때 가라고 했다. 덕분에 선생님이 쓰는 스페인어를 메모해 놓고 집에서 아이들에게 반복해 스페인어를 가르쳤다. 아이들과 나의 스페인어는 여기서 같이 성장했다.
나는 아이들이 Nido Arcobaleno를 다니게 된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얼굴,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르다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 반에 세 쌍둥이가 있었다. 한 명은 보통 아이들과 같았고, 한 명은 눈이 나쁜지 엄청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은 아주 느린 아이였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만 3세 반에 있지만 걷는 게 불편해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걷기도 하고 기기도 했다. 선생님은 자주 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수업을 했다. 불편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미소로 아이를 돌보고 아이와 장난을 치고 놀아주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박수를 치면서 그 아이의 걸음마를 응원해 주었다. 저 멀리에서 넘어질 듯 말 듯 빠르게 목표한 지점까지 뛰는 듯이 걸어왔다. 성공이었다. 선생님들 모두 환호하며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꼭 안아주었다. 친구들도 모두 달려와 아이를 안아주었다. 내가 지금껏 한국의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