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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앙카 Dec 12. 2022

내 친구들은 아무도 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았어(1)

처음 본 할머니와 동침

친구들은 아무도 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았어.

한신아파트에서 우리 할머니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깐깐하고 무섭기로 소문나서 경비 아저씨들도 꽉 잡고 계시거든.


남자 친구는 본인의 할머니를 뵙기 전에

내게 귀띔해 주었다.

자기 친구들 중 단 한 명도 할머니께

욕 안 먹은 친구들이 없다며.

심지어 희경이에게는 면전에 대고 '여우같이 생긴 년'이라고

했던 일화를 말해준다.

할머니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셔도

상처받지 말라고 당부한다.


남자 친구의 외할머니를 중국 땅에서 그렇게 처음 만났다.

유학하고 있는 손주 보고 싶어

중국 여행 패키지 상품으로 북경 여행을 오신 뒤,

하루는 손주 보러 빠질 거니

그렇게 알라며 여행사에 통보를  하시고

남자 친구와 내 앞에 나타나셨다.


아주 작은 키에 왜소하신 체격의 하얀 백발의 할머니.

강남 도곡동 할머니답게 옷가지 하나 흐트럼 없이

반듯하셨다. 연한 핑크빛 스카프에 하얀색 백바지를 입으시고 안경을 치켜올리시며  말씀하신다

"이름이 뭐라고?"



생각해보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주 여자 친구란 애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셔서 74세 할머니가

비행기를 타고 날려오신 게 아니었나 이제와 생각이 든다.



한국  샤브샤브를 좋아하신다니

북경에서 유명한 중국식 훠궈 집으로 식사 메뉴를 정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중간은 간다고 나는 최대한 물음에 대답만 하고  손주와 오랜만에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길 바라며 뒤로 빠져 있었다.

중국에 온 유학생들이 많이 가는 훠궈 집이 다행히 까다로운 할머니 마음에 들었다.  다 같이 먹는 큰 냄비에 끓이는 샤브샤브가가 아닌,  1인용 냄비에 본인 앞에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넣어 먹는 훠궈가 신선하고 직원들이 참하니 친절하다고 말씀하신다.


긴장된 식사를 마치고 들어가 쉬시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난 남자애 혼자 사는 애 방에서는 안 잘 거다.

네 기숙사로 가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아니, 지금 나와 자겠다고?

나와 주무시겠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학교앞 아파트 방3개 달린 집에서 살고 나는 외국인 기숙사 1인실  방 하나 화장실 하나인 작은 방에서 사는데

왜 나와?

아무리 남자 친구의 할머니지만

처음 본 할머니가 내 방, 내 옆에서 주무신다고

생각하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할머니와도

같이 잔 적이 없는데......


뭐라도 해주길 바랬던 남자 친구는  할머니 눈치를

살피더니, 내게 미안하다는 표정만 짓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디냐, 네 방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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