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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록 Jul 16. 2020

광합성의 날들

프롤로그

햇살받은 싱고니움 오레우스스킨답서스 무늬관음죽


 햇살은 자신의 항성을 떠나와 나의 집 창가로 와 있다. 파릇파릇한 싱고니움이 가장 먼저 볕을 쬔다. 다음으로는 오레우스 스킨답서스가 잎의 무늬에 햇살을 담는다. 나의 차례가 왔다. 정맥동맥을 물관과 체관으로 잠시 교체한다.  피부의 모든 표면을 열고 광합성을 하는 시간이다. 

 오레우스 잎의 무늬는 다 다르다. 초록으로 물이 든 것 같은 무늬가 볼수록 예쁘다. 만져보면 표면이 반질반질하고 광택이 난다. 오레우스는 스킨답서스답게 물을 좋아한다. 하지만 건조에도 강해서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아도 견딤이 있다.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으면 잎이 쳐지는데 만져봐야 알 수 있다. 약간 굴곡진 잎들이라서 보기만 해서는 쳐져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잎을 만져보았을 때 잎이 얇은 느낌이 들고 힘이 없으면 물을 주면 된다. 물을 주고 나면 잎에는 힘이 생기고 옅어졌던 광택도 살아난다. 물을 너무 자주 주면 잎이 노랗게 되어서 떨어졌다. 습하게 키우기보단 건조하게 키운다. 스킨답서스과답게  키우기가 순둥순둥하다.

 햇살이 몸에 도톰한 둔덕을 만드는 것이 참 좋다. 둔덕은 오래도록 따사롭다. 햇살을 좋아하는 나와 식물은 참 닮았다. 어릴 때부터 햇살이 좋았다. 하루라는 시간을 때우며 공간을 옮기는 햇살이 좋았다. 매번 주근깨를 얼굴에 쏟아놓고 갔지만 그래도 졸졸졸 따라다녔다. 시간은 흘러가고 시간에 따라 잎의 순간순간이 바뀐다. 살아있는 것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더군다나 식물이란 늘 모습이 변한다. 하루의 모습도 해가 뜰 때의 모습이 다르고 해가 질 때의 모습이 다르다. 한 순간도 같은 순간이 없는 식물과 사람은 참 닮았다. 피었다 지는 것도 닮았다.


분무해주기 위해서 모아놓은 식물들


식물의 고요와 나의 정적이 하나 되어 거대한 풍요를 만들고 풍요는 거름이 되어 식물들을 살찌우고 나를 키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고 진 잎을 떼어주고 물을 주며 식물이 자라는 동안 나의 마음도 조금씩 자라는 것을 느낀다.

 물을 주기 위해서 식물들을 바닥에 놓아두면 그대로 그림이 된다. 칼라데아 제브리나의 진한 무늬는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칼라데아는 무늬들이 다 선명하다. 프랙털의 일정한 패턴에 매혹되면 칼라데아는 다 예뻐 보인다. 칼라데아는 잎끝이 잘 마르곤 하는데 공중 습도를 잘 챙겨주면 잘 자란다. 물도 제법 좋아한다. 마란타 붉은빛의 잎 뒷면도 매력적이고 새로 난 잎의 무늬는 선명하지 않다가 점차 잎이 무르익을수록 무늬가 선명해지는 것도 볼만하다.     

 식물들이 쑥쑥 잘 커줄 때도 있지만 키우다가 죽이는 식물도 많다. 나의 결여는 식물의 죽음에서 발견되고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삶과 죽음이란 너무나도 빈번히 내 곁에서 일어나곤 한다.  죽음을 가까이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을 번번이 깨우쳐준다. 뿌리까지 그냥 녹아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고 흙으로 돌아가는 식물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안다. 오직 살아가는 일만 생각할 때보다 죽음을 한 번씩 마주하게 될 때 우리 삶이 더욱 진하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식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안부를 묻고 다듬고 채워주며 하루를 보낸다. 알로카시아 실버드래곤의 볼록볼록한 잎맥은 햇볕은 받으면 은빛으로 빛난다. 아직은 유묘의 작은 모습이지만 아기가 인간의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나듯 실버드래곤도 아직 작지만 실버드래곤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안부를 물었을 때 실버드래곤은 잎맥의 펄로 인사한다. 오늘도 안녕하다고 말한다. 나는 한번 스윽 쓰다듬으며 안녕에 안녕을 더한다. 함께 햇볕을 쬐는 광합성의 날들이 오늘도 흘러간다.


함께 광합성중인 알로카시아 실버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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